하나님과 나 떨기나무의 경험 (출3:6-12) 말씀: 이기원 목사님
오늘은 모세가 부르심을 받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출애굽기 3장 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고는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자기 얼굴을 숨겼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출3:6)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그를 불렀는데,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힘을 빼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힘이 있는 40세에 부르지 않고, 힘이 빠진 80세의 나이에 그를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희 교회는 [은퇴 장로]를 [사역 장로]라고 부릅니다. 장로님들이 70세가 되면 은퇴하게 되는데,
은퇴해서 그곳에 가면, 거기서는 제일 막내가 됩니다.
거기에 가면, 오래 되신 장로님이 막내에게 하는 말이 ”힘을 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하나님도 모세의 힘이 온전히 빠질 때, 그를 사용하기 위해 그를 불렀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말씀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너희를 어떻게 이끄셨는지?’,
어떻게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를 시험해 너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희가 그 분의 명령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셨음을 기억하라.“(신8:2)
▶왜, 모세를 [광야]로 부르셨을까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야로 그를 불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광야로 부르신 것입니다.
[광야]는 “내가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길“입니다.
[광야]는 ”전능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전능자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곳이니까,
그 광야에서 하나님이 ”나의 요새“인 것은 알고, 그 하나님이 ”전능자”라는 것을 깨닫기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그곳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광야]는 “섬기는 곳”이지, “자기를 내 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의 주장을 모두 다 내려놓고, [겸손]과 [순종] 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계급장을 모두 떼어 버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편 91편 1-3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비밀스러운 곳에 사는 자는 전능하신 그분의 그늘아래 머물게 되리라.
내가 여호와를 ”내 피난처요, 내 요새시며,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리라.
참으로 그분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구해 주시고, 죽을병에서 구원하실 것이다.“(시91:1-3)
[광야의 삶]은 사냥꾼이 올무와 같은 고통 속에서 구해 주는 것과 같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병에서 구해주는 것과 같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요새이시며,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은 그 하나님을 “모세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1) 첫째로, “고통 속에서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들이 감독관들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출3:7)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났을 때, 모세는 미리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모세는 그곳으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그 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80세에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찾아 오십니다.
하나님은 먼 하늘에서 그냥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어려울 때 찾아 오십니다.
목사인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그것을 잘 압니다.
그 때, 제 몸의 증상은 호흡이 가빠지고, 맥박이 높아지고,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 심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목사도 [공항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증상]이 한 동안 계속되어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시편의 말씀을 읽다가 한 순간에 없어졌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사냥꾼의 올무에 걸렸다가 풀려난 기분이니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오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분을 느끼셨겠지만, 모세에게 그렇게 찾아오셔서, 모세와 [인격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그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이상하게도 불이 붙지 않아요.
▶왜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이끌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는 들판이므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경험을 광야에서 느끼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광야]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리”입니다.
그 때 모세는 떨기나무 속에 “불타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떨기나무]는 사막지역에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떨기나무]는 ”모세“를 의미합니다.
그 [떨기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같아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찾아와서,
”너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겠다.“고 말해 줍니다.
[지도자]는 (= 그 당시에 지도자는 교회의 장로)로 이렇게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모두가 다 [허상]입니다.
모세는 그 [불꽃]으로 다가가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질병가운데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물질이 어려울 때, 그런 때에 하나님은 찾아 오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럴 때에,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때에는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 모세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태어났지만, 히브리 사람인 그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모세는 이렇게 헷갈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11절 말씀에서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제가 도대체 누구라고 바로에게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다는 말씀이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출3:11)
모세의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왜, 바로에게 가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왜, 하필 나입니까?“라는 말이니까, 나는 이집트에서 도망 나온 사람이니까,
”나는 또 다시 그곳에 가기가 싫다.”는 말 입니다.
▶모세가 계속 질문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당시에 모세는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동안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었으니까,
과거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사람이므로, ”애굽으로 가라.“는 것은
”불구덩이로 들어가라”는 의미로 받아드렸습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까,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치유]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러야 치유가 일어 납니다.
[치유]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과거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치유]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때, 치유가 일어 납니다.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바로 보다 더 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너를 치유해 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길 원하십니다.
[애굽]은 모세가 가고 싶지 않은 땅 입니다.
모세는 바로를 만나고 그러나 모세는 바로 왕을 만나러, 애굽 땅에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짐 에리어트 선교사가 남미의 에콰도르에 있는 아오카 족이 사는 밀림으로 자원하여 갑니다.
그것은 아오카 족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아오카 족의 창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순교를 당한 1년 후에, 아내가 남편이 죽은 아오카 족에게 다시 들어갑니다.
거기에 가서 알았는데, 아오카 족은 남자는 죽이는데,
여자는 죽이지 않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호사인 아내도 정성껏 4년을 그곳에서 봉사했더니, 추장이 그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우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도와줍니까?“
그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였던 [5명의 청년] 가운데 한 명이 내 남편이고,
나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전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입니다.
그녀의 고백은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라는 책에서 기술하기를,
”하나님은 고통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 속에서 나를 만나 주셨어요.
바로 이런 하나님과의 [만남]이 필요하고, 내가 죄악의 구덩이 속에 있을 때,
나의 곁에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선교사가 고통 가운데 붙잡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고,
그녀는 전능하신 그늘 아래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에,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입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분명히 너와 함께할 것이다. 네가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고 나면,
이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인데,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다는 표적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3:12)
결국 모세는 이집트로 가서 바로 왕을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어요.
여기서 이 산은 ”호렙산“이고, 이 산에 와서 그들은 예배를 드렸어요.
그러나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그
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기로 작정을 하시고,
결국에는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해 주시는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 말씀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신다.“는 뜻입니다.(마1:23)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세가 계속해서 질문을 합니다.
▶”내가 거기 가서, 너를 보낸 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3가지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①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과
②문둥병 환자가 깨끗이 낫게 되는 기적과
③나일 강에서 물이 피가 되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은 바로 ”어린양의 죽음“을 예표 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에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셨어요.
이 말씀에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①-첫째는, [현재형]으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의 [절대성]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써 독자적으로 계시는 분이시지, “사람들이 있다 없다 하여,
있어지고 없어질 분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②-두 번째로, [미래형]으로 해석하면,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를 미래에 너의 삶에서 보여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는 말을 <현재형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미래형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읽은 시편 91편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으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비밀스러운 곳에 사는 자는 전능하신 그분의 그늘아래 머물게 되리라.
내가 여호와를 ”내 피난처요, 내 요새시며,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리라.
참으로 그분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구해 주시고, 죽을병에서 구원하실 것이다.“(시91:1-3)
전능자의 그늘아래에 머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새이고, 반석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냥꾼의 올무에서 구해 주시듯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떨기나무의 [불]을 경험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불]을 보아야 합니다.
병들고, 어렵고, 힘들 때, 마지막까지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저는 이 찬양이 생각났어요.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가운데 너를 지키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너ㅡ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내 여호와라.”
이
찬양의 가사를 음미하시고,
복되고
좋은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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