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도 ( 출40:36-38) 말씀: 이상준 목사님
어제는 “하나님의 임제”가 나타나는 [구름]에 대하여 말씀드렸고,
오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까?“를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의 임재]가 중요할까요?
그것은 언제나 [임재]가 [인도]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제]가 있어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40장의 맨 마지막 구절로, 36-38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여정 동안에 구름이 성막 위로 뜨면 떠났고,
구름이 뜨지 않으면 뜨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그 여정 동안, 여호와의 구름이 낮에는 성막을 덮고,
밤에는 불이 구름 속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출40:36-38)
여기에 [구름]과 [여정]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십시오.
여기서 “구름을 따라가는 인생으로 산다.”는 말을 [불신자]가 들으면,
“뜬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믿는 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구름을 따라가는 여정”을 계속 이어 갔습니다.
[구름]은 잡히지도 않고, 우리가 구름의 방향을 미리 알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름]은 신비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구름]을 따라 갈 수는 있지만, [구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단순한 교훈이고, 단순한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그것은 “구름이 뜨면 가고, 구름이 없으면 가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GO and Stop] 이것은 “[주행]과 [정지]“입니다.
이것은 자동차의 기본 기능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아주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주님이 가면 나도 가고, 주님이 멈추면 나도 멈추는 것“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도]와 [순종]입니다.
[리더십]에서는 [인도와 순종]이 ”아주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 오늘은 먼저, ”하나님은 인도하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는 춤추는 원리와 같은, [영적인 동행]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광야에서 그냥 떠나는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선지]도 알려 주셨는데, 그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에 나도는 소문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구름의 방향”을 보고, 그 방향대로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언제 떠나는가,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를 [훈련]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주님을 따라가는 훈련”인 것입니다.
[롯]의 가족처럼, 머뭇거리거나 멈추면 안 되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세속적인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40년 동안 “떠나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떠나라“는 명령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맘대로, 자기 생각대로 떠나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면 머무르고, 계시지 않다면 떠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황을 탓하지만, 그건 [변명]입니다.
사람들은 힘들을 때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지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즉시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은 “구름이 뜨고, 안 뜨는” 것이 “하나님이 임재 하는 자리인가,
하나님이 없는 자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다가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공항]이 생각났어요.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출국장]인가? 아니면 [입국장]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출국장]에 있으면서, [입국장]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지금, [출국장]에 서 있으면, 사람과의 헤어짐이 너무 아쉬워도 떠나야 하고,
만약에 내가 [입국장]에 서 있으면, 거기서 머물면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는 것” 입니다.
[발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발권]은 ”사람이나, 조직“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제 얘기를 간단히 하면, 온누리교회에 온지 21년차 사역을 하는데,
사역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낍니다.
벤쿠버에 3년차에 있을 때, [꿈]에서 한국행 티켓을 손에 들고 있는데,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자동차가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는 [꿈]이, 연속해서 두 번이나 [꿈]을 꾸었어요.
그러면서 계속 ”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예전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에 ”청년들을 품어야 한다.“고 [청년사역]을 하던 때라,
머리를 베컴과 같이 머리를 올리고 있었는데, 얼마간 지내다가 ”머리 좀 내려라“해서 머리를 내렸더니,
그 후에, 양재 [성인사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를 갈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여러분의 [의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다윗이 광야로 들어갈 때, 사울 때문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광야로 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길도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38절을 다 함께 읽으십시오. ”이렇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그 여정 동안,
여호와의 구름이 낮에는 성막을 덮고, 밤에는 불이 구름 속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출40:3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상징]입니다.
40년간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추울 때는 불기둥으로 녹여주신 그 섬세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뭘까요?
그들이 결국에 가나안 땅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그런 것이 다 필요 없게 되었어요.
결국에 가나안 땅에 도착하니까, 더 이상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구름기둥]이 필요 없어 졌어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공간상의 [방향감각]은 필요 없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방향감각“이 필요했어요.
중요한 역사의 이정표에는 이런 방향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날, 인간의 유물론적인 물질세계에 빠져 있으니까, 스스로를 [미로] 안으로 갇혀 살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신이 만든 [미로] 안에, 가두어 놓고 살아요.
[메이즈 러너]가 쓴 소설로, 과거의 기억을 삭제당한 채,
거대한 미로 속에 감금된 소년들의 생존과 탈출을 그린 작품으로,
한 쪽에서는 ”그곳을 빠져 나가야 산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냥 머물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세주의]에 안주하고, [쾌락주의]에 빠져 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가 좋으니까 여기서 살자“고 합니다.
1998년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어요.
거기에도 어차피 [출구]가 없으니까, 이 [미로] 안에서 “누가 더 치즈를 더 얻느냐?”가 중요해요.
사람들은 그곳이 [미로]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가 더 강해질 것인가?” 만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역사적인 수수게끼가 숨어 있어요.
인생을 살다보면, 미로 안에서 어떤 노력을 해도, “[미로] 안에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미로] 안에서 돈을 많이 벌든, 학문을 많이 쌓아도, 결국에는 [출구]가 없으니까, 다 소용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출구도 없는데, 그들을 탈출시키실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는데, “왜, 그랬을까?“
가나안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엑소더스]를 시켰을까요?
하나님은 [전능자]인데, 그곳으로 이끄신 것은 “더 풍요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나안 땅에는 하나님이 임재 하는 구름이 성경에는 나오지 않아요.
구름이 사라진 것은 더 이상 “이끄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가나안 땅에는 그런 [구름기둥]은 없지만, “은혜의 단비”와 같은 [비구름]을 주셨어요.
약속의 땅에서 [구름]으로 인도하지 않지만, [비구름]을 바라보고 사모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셨으니”, 역시 [하나님]은 대단하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36절에서, “여정 동안에”라는 단어가 나오고,
38절에도 ”여정 동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여행하는 중에도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도 어디에 도착했다고 여정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도 계속해서 일들이 벌어지고, 계속해서 여정이 이어집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나요? 그렇지 않아요.
목적지에 도착해도, 잠시 머물다가, 또다시 갈 곳이 생겨, 떠납니다.
[우리의 인생]도 여전히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뜻을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가면, “다 이루어진 것인가요?”, “결혼만 하면, 거기서 끝나나요?”
“집을 장만하면, 끝입니까?”, “직장만 구하면, 성공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요.
과연 그렇게 하는 태도가 [정상]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약속의 땅”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간 거예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의 구름을 사모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걷어 가신” 거예요.
우리들도 도착한 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곳이니까,
거기서 안주하고, 세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떠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어디를 가나,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가나안 땅]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그 자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종착지가 “아들”이 아니듯이, 25년 동안 기다리던 자식을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아브라함의 종착지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땅]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도 [하나님]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도, “출구가 없는 [미로]”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설계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속인 것도 아닙니다.
[출구]가 없는데, “출구가 있는 [미로]“라는 것은 출구가 없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대학만 가면, 결혼 하면, 직장만 구하면, 돈 만 벌면, 내 인생이 다 끝난 게 아니고,
거기서부터 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인생] 이예요.
[인생의 여정]에서 완벽한 [출구]는 없어요.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지 말고, 거기서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시방이 꽉 막혀 있어도, 위를 바라보면, [하늘]은 열려 있는 법입니다.
종점에 도착하더라도 거기가 끝이 아니니, 실망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세요.
▶왜, 내가 그걸 몰랐을 까요?
내가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몰랐던 것예요.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천국]이 있으니, 매일 그곳을 묵상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시편 84편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뜰을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지쳤습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시84:1-2)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편할 것 같아도, 그곳이 “마지막 종착지“가 아니고,
그들이 가야 할 곳은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입니다.
결국, [땅] 목적지가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목표로 한다면,
그곳이 광야이든, 궁궐이든, 어디를 가든, 변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내가 가야 합니다.
[광야의 길]은 ”무계획의 계획“이듯이, [무계획의 여정]입니다.
[크리스천 영성]은 ”무계획의 계획“입니다.
저도 [시간 계획]을 철저히 하여, 대학생 때에는 5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분이 떠나시면 나도 떠나고, 그분이 계시는 곳이면 나도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입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행]은 ’돌고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여행]이 즐겁고, 두렵지 않은 것은 돌아 올 집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올 집이 없다’는 것은 [여행]이 아니고, [방황]이다.“
결국 ”우리가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곳이 [천국]인데, 우리는 [천국]에서 와서,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 다시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고향은 [천국]이니까, 우리는 잠시 시간 속에서 여행하러, 여기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예수 40일 특새19 2019.12.31 (0) | 2020.01.01 |
---|---|
작은예수 40일 특새18 2019.12.28 (0) | 2019.12.31 |
작은예수 40일 특새16 2019.12.27 (0) | 2019.12.28 |
작은예수 40일 특새15 2019.12.26 (0) | 2019.12.27 |
작은예수 40일 특새14 2019.12.24 (0) | 2019.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