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작은예수 40일 특새 3일 2019.12. 11

다이나마이트2 2019. 12. 11. 11:24

특새-3  하나님의 보호  믿음의 탈선 (창12-10-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개입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40일 [특새]를 통해서, 이 땅에서 열려진 [하나님나라]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믿음의 여정]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분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내가 익숙한 습관과 사고방식에서 떠나는 것이 [분리]이고, 믿음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내가 익숙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오래 몸 담고 있는 “익숙한 문화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들을 떠나가게 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이나, 습관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려고 고집합니다.

 

▶현재 우리들의 [믿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만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고, “자기주장”이고, “자기 확신“일 뿐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런 생각으로, 오늘 아주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던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건,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러나 ”거기를 떠났다“고 [믿음의 삶]이 다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추적하며, 그가 믿음에 이르도록 그를 지켜 주십니다.

 

이것은 마치 어리 아이가 발걸음을 시작하는 것을 옆에서 엄마가 지켜주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여정을 지켜보고, 격려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개입하셔서, 견고한 믿음이 되도록 그를 이끄십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에, [믿음의 탈선]이 벌어집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 도착하여 정착하려고 하였으나,

그 곳의 원주민들이 그를 받아드리지 않았고, 발을 붙여 살기가 어려웠어요.

그냥 [여행객]처럼 지나가다가, 갑자기 중요한 일이 벌어졌어요.

이것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12장 8절에, ”거기에서 그는 벧엘 동쪽에 있는 산으로 가서, 장막을 쳤는데,

그 서쪽에는 벧엘이 있고, 그 동쪽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여호와를 위해 재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12:8)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재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에 비해, [가인]의 삶은 가는 곳마다 [성]을 쌓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란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 올리며

그를 따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따라가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예배를 통하여 알고, 교감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지루한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험]을 통해, 자라납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 성적이 자라나듯이, [믿음]도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시험]을 주십니다.

 

그 첫 번째 시험이 [믿음의 출발]이라면, 점점 하나님을 알아가던 때에,

아브라함이 도착한 땅에 흉년이 들어서 무척 살기 어려워졌어요.

우리들의 삶속에도 이런 [자연현상]은 모두 다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어요.

 

그 땅에 기근이 오니까, 하나님은 이들을 훈련시키는데,

아브라함은 갑자기 ”아내를 빼앗길 위험이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취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아내를 누이“라 부르며,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보십시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이 믿음의 사람으로 합당한 처사입니까?

 

▶왜, 이런 [믿음의 탈선]이 나타났을까요?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모든 게 해결 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행동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당시에 애굽의 문화 자체가 안전한 나라가 아니고, 위험한 지역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의 생각에는 ”자기 아내의 용모가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기 때문에“,

불안해져서 위험을 느낀 겁니다.

 

▶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했을까요?

 

그 당시에 결혼 문화가 친족끼리 결혼을 했으니까, ”이복 누이“이기 때문에,

이 말이 반드시 틀린 말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 때문에, 이런 거짓말을 하고, 아주 큰 위험에 빠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사람인데,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깨뜨리십니다.

 

문제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말에는 ”자기 생각“ 뿐입니다.

아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 만 존재해요.

하나님은 이런 세세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놔두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무서운 생각을 하나님이 개입해서 해결해 줍니다.

 

▶아브라함의 무서운 생각은?

”[나]를 내세우는 마음”입니다.

”나 중심의 생각“에 빠져서, 아내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의 생각에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젖어 있다 보니,

 

남편이 아내를 여러 명을 두는 [일부다처제]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를 움직여서 아브라함을 구출해 주십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부르셨기에,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그를 보호하고, 깨닫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위험에 빠진 졌지만, 17절에서,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인해,

바로와 그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창 12: 17)

 

▶왜, 아브라함을 보호해 주셨나요?

 

아브라함과 사래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까지 찾아가셔서, 추적하여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에도 개입하여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래, 이 두 사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부르신 게 아니고, 그 [가족]을 선택하셨습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아주 무서운 죄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는 여정을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므로,

바로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위험에서 구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믿음]이고, 그런 [믿음]을 우리의 마음속에 갖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창조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평가]는 가장 가까운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제일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 책망하십니다.

 

18절에서, “그러자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 그녀가 네 아내라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창 12:18)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깨닫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두 부부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드십니다.

 

베드로 전서 3장 7절의 말씀을 남편만 읽으십시오.

 

“남편들이여, 이와 같이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인 것을 알고, 그녀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할 사람으로 알아, 귀하게 여기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벹전 3:7)

 

“우리의 믿음”은 [부부 관계]로부터 시작됩니다.

“믿음의 역사“는 가장 가까운 [부부]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탈선]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여 깨닫게 만드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탈선했을지라도, 더 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중동지방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시고,

[믿음의 탈선]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게 만드시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혹시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는 없습니까?

우리를 스스로 둘러보게 하시고, 반성하게 하옵소서. 

세상 문화에 휩쓸려 있는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서 ”가족 중심의 문화“로 새롭게 정착되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려 주시고,

하나님의 정결한 생각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의 생활이 참된 믿음의 생활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