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14:22~33) 2019.11.24

다이나마이트2 2019. 11. 24. 21:13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14:22~33)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까지 자유 본문으로, “물 위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두 부분으로 말씀드립니다.

1. 첫째는 ”홀로 기도하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2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 후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건너가게 하시고,

무리를 집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14:22)

 

여기서 그 후라는 말은 개역 성경에서 즉시라는 말로 기록되듯이,

방금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이후를 말하고, 무리를 집으로 보내고,

혼자 남아서 산에서 기도하려고 올라가십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요한복음 615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와서 강제로 자기를 왕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6:15)

 

여기에 예수님이 산에 오르신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예수님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눠준 떡에 취해 있습니다.

 

마가복음 652절에도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빵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6:52)

 

무리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들떠 있는 상태에서 주님과 함께 가는 여정을 망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제자들도 무엇을 해야 할 찌를 모르고, 초점이 흐려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23절에, “무리를 보낸 뒤,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가

날이 저물기까지 거기 혼자 계셨습니다.”(14:23)

 

23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혼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혼자> 아무도 없는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산에 가셨을까요? 그것은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인기가 있을 때 떠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기 있는 사람이 그 환호성을 뒤로 하고

떠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혼자 산에 오르셨다.”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처형당하신 것을 알고, 예수님도 많은 생각에 잠겨서,

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질문이 생겼어요. 예수님은 무슨 기도를 하셨기에,

▶한 밤중에 그렇게 오래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사람이니까 착잡한 심정으로, 겟세마네 기도처럼 힘겨운 기도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예수님도 두렵고 어려웠겠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얘기하지 않고,

혼자서 한 밤중에 기도하셨다.“고 한 줄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도 두려웠을 거예요?

물론 주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지만, 예수님도 그 시간에는 두려워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갈릴리 호수는 한 밤 중에도 높은 파도가 일어나는 호수이기에, 밤에 항해하기가 어려운 장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제자들을 생각해야 하므로, 어려운 호수를 탓하거나,

제자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 둘째로, 그런 상황에도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25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6:25)

 

▶”이른 새벽”이라니, 언제입니까?
개역 성경에는 밤 사경이라고 했으니, 아주 이른 시간으로,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를 말합니다.

제자들은 저녁 7시에 배를 타고 떠나서, 밤 사경(= 새벽 3시쯤)에 도착하였으니, 7시간동안

<태풍으로 고생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멀리 산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십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예수님은 언제나 멀리서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지나가면 제자들이 죽게 될 것 같아,

그 싯점을 맞추어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계산하여, 하나님의 <>를 재고 계십니다.

우리를 그때까지 놔두었다가 최후 순간에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왜 물 위를 걸어갔을까요?

그것은 새벽 3시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라, 뱃사공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걸어가셨을 것이고,

예수님은 그가 하시는 일에 못하실 것이 없지만,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우리를 찾아와,

반드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른 새벽까지 뱅글뱅글 그 자리에서 돌고 있었다.“는 것은 새벽까지 밤새 꼬박 호수 한복판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그것을 <멀리서 예수님은 내다보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26-27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유령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14:25~27)

 

▶그 때에 제자들은 왜 깜짝 놀랐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찾아오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서 오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상식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상식적인 일이어야 안심합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그를 유령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세 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다.( = I am)”

예수님은 차분하게 안심하라. 나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여, 정말로 주시면 제게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께로 향했습니다.(14:28~29)

 

베드로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해도 주님을 신뢰하니까,

예수님이 오라고 하니까 그 말씀을 믿고,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로 갔어요.

그러나 베드로는 결국, 물에 빠졌어요.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긍정적으로 <걸어오라>고 얘기합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었지만, 그러나 역시 그는 물에 빠졌어요.

 

인간적인 말은 순간적으로 기적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한 발짝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해요.

그러므로 인간적인 말은 성령의 기도로 바꾸어야 기적이 나타나요.

 

3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베드로는 바람을 보자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주여 살려주십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14:30)

 

그 때 바람은 불고 있었으므로 바람을 보면 두려움이 생기지만, 주님을 보면 안심이 됩니다.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을 보면 베드로도 한참 동안은 물위를 걸어갔었으나,

베드로가 바람을 보니까 현실로 돌아가서 물에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30년을 넘게 바다에서 생활한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이 <오라>는 말을 믿고, 물위를 걸어갔으나 물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성으로 판단하면 되는 게 없지만, <믿음>으로 행하면 기적이 생깁니다.

 

제 생각으로도 베드로는 빠질 수 밖에 없어요.

베드로는 인간적인 방법을 <믿음>이라고 착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베드로는 물에 빠져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옛말에 맞아도 싸다.”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이런 사람은 <인간적인 믿음><하나님의 믿음>으로 바꿔야 해요.

 

3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31)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중한 것 같지만, 꾸중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책망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 위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려는 베드로를 기특하게 생각했어요.

주님이 책망한 것은 <도전 의식>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했어요.

 

나 같으면 좀 더 고생시키고 꺼내줄 것인데,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즉시 손을 내 밀어 구해 주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 졌습니다.(14:32)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 졌습니다. 그것은 원인이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라는 것은 원인이 제거되면, 아주 평온해 집니다.

 

여기에서는 문장의 순서를 자세히 보십시오. 배에 오르니까, 바람이 그쳤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이 그치는 것을 보고, 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서를 바꾸지 마세요. 순서를 바꾸면, 안됩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이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면, <내가 헌금을 많이 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에 맞는 말도, 순서에 맞는 말이 아닙니다.

헌금을 하게 되면, 주님의 축복으로 돈도 자연히 벌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도 문제는 계속되지만, 결국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은 미완성인 체로, 그렇게 지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가다 보면, 바람도 그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은 자기 분수를 찾으라.“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풍랑을 넘어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도전이 아니고,

역시 베드로는 엉뚱한 짓을 하더니, “드디어 무너졌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 함께 가자.”

메시지에 방점을 찍고,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