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고전15:31, 고후4:10-14) 2019.11.3

다이나마이트2 2019. 11. 3. 21:35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고전15:31, 고후4:10-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참된 회개]를 경험한 성도들에게 참된 신앙의 고백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에서 나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받은 자]에서[전도자]로 변한 자신의 삶 속에서,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번에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드렸고,

오늘은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죽음]은 어떤 죽음입니까?

먼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체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낙심과 절망에서 오는 정신적인 죽음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은 예수님이 맞이한 [영적인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말인데,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에서 느끼는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되기 위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연합시키는 일입니다.

 

▶왜, 이런 [영적인 죽음]이 필요합니까?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으니까, 그런 [영적인 죽음]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을 말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주여, 나로 하여금 죽지 않도록, 죽게 하소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첫째로, 죄로 인한 [영적인 죽음]이고, 둘째로, 죄를 이기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죽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연합되기 위해서 동일시하는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로마서 6장에 나오는 죄는 죽음이고, 그리스도는 생명이므로,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살 수 있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해,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신약에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님이 받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는 표현은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살기 위해,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10-11절의 말씀 함께 읽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 단 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자로 여기십시오.“(6:10-11)

 

쉽게 설명하면,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 죽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 있다고 여기십시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다 뒤집어쓰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과 연합한 자로 죽은 자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하는 존재이고, 또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이 고백의 의미를 고린도후서 410-1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4:10-11)

 

여기서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말은 우리가 몸소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살아 있는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항상 죽을 위험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그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당시의 사형제도에 살아있는 사람을 죽어 있는 시체와 함께 묶어서 장사 지낸 것은

죽은 자의 독기가 서서히 살아 있는 자에게 전달되어 죽게 만드는 형벌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절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5:2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자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이미 자기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못 박힌 자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주위에 있던 수많은 사탄들이 뭐라고 조롱하였나요?

그것이 두렵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걸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완전한 죽음을 경험했어요.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런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사도 바울은 그 때,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 오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이겨냈을 꺼예요.

 

▶그 때, 모든 상황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과 같이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고 되 뇌이며, 참았을 꺼라 생각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나와 연결 시켜서 참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들은 그런 마음으로,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나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나에게 찾아오십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야 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품어야,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에게도 나타나기 바랍니다.

세상은 자아를 실현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죽음앞에 절망합니다.

성경은 자아를 실현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같이 죽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해야, 가능해 집니다.

 

이런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안에서 나를 날마다 죽여주소서.”라는 고백이 나와야 하고,

그것이 나를 움직여야, 가능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