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 주님의 소원 (막1:40-42) 말씀: 이상준 목사님
그 동안 ”치명적인 7가지 죄”에 대해 7주간 말씀을 드렸고,
[참된 회개]에 대해 7주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자유 본문으로 어느 나병 환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어느 나병 환자가 예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막1:40)
여기에 나오는 사람이 “어느 나병 환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이름도 없고 직업도 없고,가족에 대한 소개도 없이 그냥 ”나병 환자”라고만 소개합니다.
그 말 속에 담겨있는 것은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그 사람의 어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고쳐질 수 없는 [불치의 병]을 앍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도 그에게 손을 댈 수 없고,
사람들을 누구나 피하고 도망가는 “저주 받은 인생”입니다.
나병 환자는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가 길을 나서면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외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불쾌한 존재이니,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시고, 피해 주십시오.”라고 입을 막고, 소리쳐야 합니다.
그는 저주와 절망 가운데 갇혀서, “자기 삶을 포기한 인생”입니다.
제 자리에서 쳇 바퀴 돌며 살아가는 인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예수가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희망이 생겼어요.
40절 말씀을 보면 그는 너무나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애원했어요.
이것은 마치 산 속에 살던 짐승이 동내로 내려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사정하는 표정과 같아요.
나병은 [천벌]과 같아서 손이 일그러지고 코가 뭉그러져 고름이 나고
“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는 생각에 “내가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절망하는 상황입니다.
사람에게 “소원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소원 자체도 가질 수 없었던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기에 거기에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예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그 나병 환자는 무슨 마음으로 다가 갔을까요?
어차피 내 인생은 끝난 것이니까, “지금이 아니면, 내가 살 길이 없다.“고 생각 했을 거예요.
그 당시의 나병 환자들은 동네에서 쫓겨 나 살았는데, ”예수께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혹시 나도 치료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어 미친 듯이 예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저는 40절 말씀에서 “애원했다.“는 단어를 보며 가슴이 아팠어요.
▶[애원]이 뭡니까?
내가 소원하고 내가 바라는 사항을 ”반드시 이루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애원]입니다.
그러면서 “제발 저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애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너무나도 예의 바르게, “선생님이 원하시면, 저를 낫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을 시작합니다.
그의 눈 빛 이나 그의 얼굴에서는 간절히 [애원]하는데
그의 [말씨]에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고 너무나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즘 젊은이가 취직하러 와서 “회사에서 저를 원하시면 저를 뽑아 주십시오.”라고 말을 했다면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만약에 그렇게 말을 하면 당연히 거절당하지요.
“저를 꼭 합격시켜 달라.”고 간절히 자기 소원을 말해야 하는데 그 나병환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아무리 원해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의 마음에는 <포기한 인생>이지만, ”예수님이 원하시면, 저를 낫게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예의를 갖추어 소원을 말하고 있어요.
▶과연 예수님은 이 나병 환자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 갔을까요?
그 나병 환자에게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가까이 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치유의 능력이 있으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 선 것입니다.
41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 밀어 그를 만지시며 말씀했습니다.”
”내가 원한다. 자, 깨끗이 나아라.“(막1:41)
▶[예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로, 불쌍히 여기시고,
②둘째로, 손을 먼저 내 밀어 만지시고(= 터치하시고),
③셋째로, ”내가 원한다.“
④넷째로, ”나병이 나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기 전에, 손을 내 밀어 환자에게 터치하셨어요.
나병 환자가 간절한 마음을 전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예수님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서 만져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먼저 터치했어요.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나병이 나아서 만진 게 아니라,
나병이 낫기 이전에 고름이 퍼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터치했어요.
▶예수님이 터치하고 나서 그 다음에 뭐라고 했나요?
예수님이 만지고 그 즉시에 낫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를 만지고,“내가 원하니까, 이제 깨끗이 나아라.”고 말씀하시니까,
그의 오래 된 나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원한다.“는 말씀 한 마디에 나병이 나은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갈 때 어떤 마음입니까?
여기서 [핵심]은 ”내가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원하니까,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면,“ 이라는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내가 원하니까, 하나님도 나와 같이 병이 낫기를 원하시니 그 병은 반드시 나을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자신 있게 표명해야 합니다.
어느 암 투병 환자에게 “제가 완전히 나았어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주 신실한 청년인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저는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인데 지금은 그 달란트를 사용하고 있지 않아요.“라고 자신을 탓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슴에 묻어 두고 있으니 “하나님, 다시 꺼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어요.
주님이 주신 달란트는 마음에 품지 말고,
“그 달란트를 다시 꺼내, 사용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근에 또 다른 항암 치료받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하는 말씀은
”목사님, 제가 가장 두려운 것은 의사를 만나러 가는 일”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오늘 내가 만날 의사가 챠트를 보면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가 걱정된다.“고 합니다.
오늘 나병 환자도 그런 마음으로, 더 걱정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러 갔을 거예요. 그
것이 부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음이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영원히 [불치의 병]을 앍고 계신 환자가 있다면,
영원히 시들어 가는 인생이 있다면, 오늘 이 나병 환자의 마음을 기억하세요.
당신이 원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당신의 병은 나을 거예요.
당신이 원하고, 하나님이 터치하고, “내가 원하면, 이제 깨끗이 나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는다면, 당신의 병은 치유될 것입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응답이 들리지 않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침묵해도, 그 분은 나를 언제나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인생이 회복되기를 바라시고, 원하십니다.
당신이 병상에 있을 지라도, 당신이 재정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병마에 시달리고, 어려운 날을 보내고 있어도,
언제나 저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나의 소원을 말했던 나병 환자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다가가서 용기 있게 말하고, 나의 어려움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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