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눅17: 20-21) 창립34주년기념주일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온누리교회 창립 34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주로 선교사역을 담당했고 CGN TV와 함께 미디어 사역에 주력하며
교회역사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수백 개의 종파로 찢어지고 갈라져서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이고
그 뿌리는 “교리의 차이”라고 말을 하지만
①첫째로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②둘째로는, 교회의 지도자에 의해 교회가 사유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후회를 하지만 만약에
①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하였다면 이런 참담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②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하였다면 이런 비참한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워드 스나이더 교수는 그의 저서 “참으로 해방된 교회”라는 책에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대신에 교회 자체를 세우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 하려고 할 때,
교회는 언제나 문제가 생길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는 세상을 해방시키기 이전에 교회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방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교회가 우리를 불러서 우리들이 교회로 몰려 온 것입니다.
교회의 제일 첫 번째 사명은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길이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역했던 ”스텐리 죤스”라는 선교사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는 정도까지만 충성할 작정이다.
나의 최고의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다.
만일 교회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서로 갈등한다면,
나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도록 만드는 교회에 대한 잘못된 충성은
무엇이든지 교회에 해로운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대한 충성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은 아닙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교회의 다툼과 분열 속에 있는 교회를 들여다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교회에 충성을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은 없고
교회 자체에만 충성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는 것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온누리교회도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되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향하는가?“를 바라보면
그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에게 합당한 교회인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17장 20-21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으십시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 물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눅17:20-21)
오늘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질문을 예수님에게 던집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교회가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라고 묻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라“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나를 통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라고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여러 가지 번역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그 뒤에 괄호 안에다 ”나의 임재로, 너희 안에 이미 와 있다.“는 말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영적인 임재 하는 나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보이는 나라가 아니고,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야 보이는 나라“를 말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느껴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느냐?"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고,
이 말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자는“하나님의 자녀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 나라는 죽음이후에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연합된 사람” 만이 그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은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
믿으면서도 “화석화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외부에 있는 적도 아니고, “제도화된 교회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입니까?
[육체의 생명]이 실제로 있듯이 “예수님의 생명력“이라고 딱 뿌러 지게 내 놓을 수는 없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몸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의 실체“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자“에게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부활하신 예수님이 생명력”이 그 사람 안에 연합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그 사람 안에 “그 생명력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 ②주님을 나의 구주로 모신 사람에게
③“그 생명력이 그 안에 있다.“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과 연합되어 나타날 때,
그 영향력은 엄청나게 크게 나타나고 그 파괴력도 대단히 커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비유가 무엇입니까? 씨앗과 누룩입니다.
①첫 번째의 비유가 [씨앗]입니다.
[겨자씨]와 같은 아주 작은 씨앗은 너무 적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땅에 심겨져 땅의 기운을 받으면
그 안에 있는 [생명력]으로 점점 자라나게 되어, 아주 큰 나무로 성장하고 자라납니다.
이것은 씨앗 안에 있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②두 번째 비유로, 하나님 나라는 [누룩]처럼, 크게 번집니다.
아주 작은 누룩 알갱이가 밀가루의 반죽 속에 들어가면,
밀가루와 섞여서 점점 더 크게 퍼져서 영향력을 끼쳐, 아주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이처럼, 씨앗처럼, 누룩처럼,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 나라]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적은 양의 소금이라도 물속에 녹아들면 소금물이 되듯이
[소금]을 물에 타면 물 전체가 소금물로 변합니다.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 안에 생명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선전하지 않아도 영향력과 전염력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 창립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으로, 온누리교회에 이런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는 씨앗 같은 교회 누룩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력]이 누룩 같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이렇게 크게 작용하여 사회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전 분야에 걸쳐서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비칠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람들을 비난하기 이전에 교회가 먼저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고
누룩의 영향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이념이 다르고 서로의 생각의 차이로, 나라가 양분되어 있습니다.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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