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감사와 하나님의 임재 (시100: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위대한 성자]는 고난을 이겨낸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지만 아주 위대한 일입니다.
[감사]는 그 자체가 아주 행복한 마음이 있어야 감사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감사],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편 100편]의 말씀은 히브리 원어에도 “감사드리는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앞에 그 시를 규정하는데 “감사의 시”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라는 뜻이고,
하나님께 나가는 고백을 담은 ”준비 찬송과 같은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문 앞에서 [시편 100편]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감사를 위한 [교육용]이거나 [예배용]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시편 100편]은 두 개의 연으로 구별되어 있는데 먼저 앞부분은 “명령”이고,
뒷부분은 “명령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시편 100편]의 첫 번째로 나오는 1-2절의 말씀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기쁨으로 외쳐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노래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시100:1-2)
이 말씀은 “기뻐 외치라”로 시작하고, 여기서 그분의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1절은 “그 분 앞에 나아가 기뻐 외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당연한 [명령]이고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내려놓고 ”기쁘게 나가야“합니다.
이 말은 “크게 소리치라.“는 말이 아니고 ”조용히 묵상만 하라.”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기쁘게 외치고, 노래하듯이 나가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물론 자신의 감정이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스펄 전 목사님은 “이런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권리 주장이다.”라고 말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하는 태도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기뻐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나의 임재 안에서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처한 문제를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니고
그 분 앞에 나가기 위해 그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예배드리면서 내 감정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나가기 위해,“기쁘게 외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소리가 커지는 것을 물론 싫어하지만,
우리가 기뻐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에 의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이므로, 우리들은
①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②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영광 받을 수 있나요?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부모가 영광스러워 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부모는 “자녀와 함께 있을 때“라고 대답합니다.
부모님은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얼굴을 자주 뵙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모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영광을 받는 방법은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우리들과 같이, 즐겁게 노래하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노래하라”하니까, “나는 음치입니다.”라는 분도 상관없습니다.
원래, [음치]는 “음을 다스리는 것”이니까, 그런 [음치]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마음에서부터 울어 나오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상황이 오든지, 어려움 속에서도 이런 기쁨이 맹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왜, 기쁘게 나가야 하는지?”를 알면, 하나님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3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라.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고,
우리는 그 목장의 양들이다.”(시 100:03)
▶여기서 “알라”는 단어는 “무엇을 알라”는 말입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인 것을 알라.“는 말인데,
하나님이 우리들을 지으시고, 우리들을 기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감정을 내 세우거나, 자 자신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역시 그분은 나를 만드시고, 기르시는 분이니까, 나는 그분에게 기쁨으로 나가야 합니다.
(3) 세 번째로, 4절의 말씀입니다.
”감사하면서 그 문으로 들어가고, 찬양하면서 그 뜰로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라.”(시 100: 04)
4절에서, 하나님은 또 다른 명령을 주십니다.
①“감사하면서 그 문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고, ②”찬양하면서 그 뜰로 들어가고“,
③”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는 명령입니다.
“감사의 절정”은 [찬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길“입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광대하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사물의 크기가 크거나 확장시키거나, 확대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 좋은 예로, [현미경]과 [망원경]이 있는데,
두 개의 공통점은 ”확대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개가 다른 점은 [현미경]은 아주 작은 것을 크게 보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망원경]은 실제로 너무 작게 보이는 것을 아주 크게 보는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원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렇게 크고, 위대한 분이라는 이치“입니다.
먼저 [현미경]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주 작은 것이 크게 보이지만,
[망원경]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크신 은혜가 우리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게 보이지만,
진짜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4) 마지막으로, 5절의 말씀은, ”여호와가 선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5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주의 진리가 온 세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다.“(시 100:05)
▶왜, 감사하며, 그분에게 나가야 합니까?
그분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최후의 심판을 아직까지 내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지켜만 보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들은 의문을 가지지만,
믿음을 갖고 바라보면, 역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까, 악인도 심판하지 않는 분입니다.
로마서 8장 28-2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롬 08:29)
▶여기서 [선]은 무엇입니까?
이 [선]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29절에 대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시려고,
그들을 미리 예정하셨고,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롬 08:29)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고,
그 선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담도록 만드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들이 감사할 때,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선하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영원합니다.
[토마스 아 킴피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거나 고난을 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시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갖기를 원한다면,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은혜가 여러분을 떠나더라도 참고 기다리십시오.
은혜가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그것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겸손하십시오.“
- 토마스 아 켐피스 -
시작을 보고 마지막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며 현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감사와 찬양으로 그분 앞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 선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바라보고 체험하고, 느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 드리는 복된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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