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5) 스스로 부끄러워하라 (겔36:26-31)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은 에스겔 선지자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을 예언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① 먼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②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내용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에스겔 36장 26-27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의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성령을 너희 안에 주어서 너희로 하여금, 내 법령을 따르며,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만들 것이다.“(겔 36:26-27)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을 예언하며, ”내가 너희에게 준 그 땅에서 살게 될 것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겔 36:28)라고 예언합니다.
▶ 이 말씀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내가“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는, 내 백성, 나는 너희 하나님“
▶ 왜,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나요?
중요한 말이니까, ”하나님의 주권적인 마음“을 알려 주기 위해서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①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②”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주겠다.”고 희망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어린이 집에 가면, 한쪽에서 어떤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울게 됩니다.
그렇게 어릴 적에 아이들은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강팎한 마음으로 변해, 평정심을 잃고, 냉담해 집니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회성이 많아져야 하는데,
옆 사람이 웃어도 자신은 웃지 않고,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강건한 마음과 강팎한 마음은 다릅니다.
또 부드러운 마음과 악한 마음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시 “자신의 마음”을 들여 다 보겠습니다.
히포클라테스는 “인간의 마음에는 4가지 기질이 있다”고 하는데,
①걱정이 많은 담즙질, ②자립적인 점액질 ③역동적인 다혈질 ④내성적인 우울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질에 대한 차이는 무엇입니까?
①[담즙질]은 걱정이 많고, 단단한 마음을 가졌지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을 가져서,
인간적인 면에서 좀 강팎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②[점액질]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분하고, 자립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처를 쉽게 받는 단점이 있어요.
③[다혈질]은 즐거운 성격이라 좋지만, 헛된 일과 잘못된 일을 만나면, 쉽게 흥분하고,
무슨 일에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④[우울질]은 내성적이고, 우울한 마음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질에 속합니까?
오늘, 성경이 말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반응하는가?“에 따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①길가의 마음이나, ②돌밭의 마음에는 말씀이 숨을 공간이 없으나,
누가복음 8장 15절에 나오는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그 말씀을 굳게 간직하고, 인내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눅 08:15) ----
③좋은 옥토의 마음에는 말씀이 머물게 됩니다.
그런 마음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올 때, 그 말씀을 들은 후에,
그 말씀을 간직하여 마음이 움직여야, 열매를 맺게 되는 법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간직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새로운 영(= 성령)을 주어서, 우리가 새롭게 될 것입니다.
27절에 나오는 ”내가 내 성령을 너희 안에 주어서 너희로 하여금,
내 법령을 따르며,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만들 것이다.“(겔 36:27)
이렇게 [새로운 영](= 성령)을 받아,
우리가 ”새롭게 되는 것”을 우리는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회심에서 중요한 것은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첫째는,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 중생) born Again 이고,
②둘째는, 거듭남 + 위로 태어남 (born above)
이런 [거듭남]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가능하고, 그런 경험을 해야 재탄생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6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내용,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과연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까?
나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까? 네,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반드시 변화가 나타납니다.
분노하던 사람도 [성령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으로 변합니다.
얼마 전에 미세먼지가 극심했을 때, 우리는 공기청정기를 삽니다.
그러나 계속 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린다.”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게 아니고,
가끔 창문을 열고, 새 공기를 받아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은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 와서, 본인이 변해야, 가능해 집니다.
여기서 “제 얘기를 하라“면, 4가지 기질 중에서 [우울질]이 바탕이 된, [담즙질]을 가졌어요.
저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4-5 시간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어요.
그렇게 우울한 사람인데도 말씀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예배의 기쁨을 느끼다 보면,
차분한 [성령의 사람]으로 변해요.
2) 오늘에 두 번째 말씀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29-30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가 너희를 너희의 모든 더러움에서 구원해 낼 것이다.
내가 곡식을 불러다가 그것을 풍성하게 만들고, 너희 위에 기근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무의 열매와 들판의 수확물을 풍성하게 해, 너희가 민족들 가운데서 기근으로 인해,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할 것이다.”(겔 36:29-30)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내가 너희를 건져내고, 곡식을 풍성히 주고, 기근이 닥치지 않도록 하겠다.
또 나무 열매와 농작물을 풍성히 주어, 기근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32절에서, “너희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여호와의 말이다.
이것이 너희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알라.”(겔 36:32)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너희가 너희 행동에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알라”는 말입니다.
은혜로 회복되니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는 거예요.
레위기에서 “죄를 자복한다.”는 말은 “죄가 몹시 싫어져서 죄를 쏱아 낸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 “죄를 토해 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 토해 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이 있다면,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토해 내십시오.“
[회개]는 ”토해 내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어두운 삶, 죄악 가운데서 살던 삶을 토해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완전히 쏱아 내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삶을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완전히 토해 내라”는 말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오늘 날, 교회는 수치심을 잃어버려서, 부끄러워 할 줄 모릅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교회는 감수성이 예민해야 하는데, 가슴 저미는 “통한의 마음”이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느끼는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사람 보기에 부끄러운 게 아니라, 하나님 보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해요.
하나님의 교회가 새로워 져야 하고, 성도들의 각자가 새로워 져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서 건강하고 떳떳하게 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가복음 8장 38절을 읽으십시오.
”누구든지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막 08:38)
우리가 우리 죄의 문제에 하나님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나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를 부끄러워 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잘했다. 너는 나의 충성된 종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얼마나 수치스런 일입니까?
요즘, 온갖 불법과 거짓을 말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병적인 “자기혐오에 빠지라.“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정직한 수치심을 느껴야 해요.
심리학자들은 [수치심]을 ”영혼의 늪에 빠진다.“고 표현해요.
[수치심]은 여러 사람 앞에서 느끼는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마음이고,
[죄책감]은 죄를 지은 후에 자기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수치심]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데,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해요.
오늘, 성경이 얘기하는 [수치심]은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반응하는 수치심을 말하는데,
그러나 우리의 수치심은 인간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니까, 차이가 있어요.
▶오늘 날, 우리에게 왜, 수치심이 사라졌나요?
인간적인 수치심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야 해요.
우리는 자기 내면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 설 때,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 보기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서 수치심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합리화 시키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수치심을 느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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