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을 위한 40일 기도

용서해 준 것같이, 용서해 주소서 (마6:12) 2019.10.3

다이나마이트2 2019. 10. 4. 09:05

용서해 준 것같이, 용서해 주소서 (마6: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주기도문]을 마음에 품고 매일 기도할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니면 밤에 잠자기 들기 전에 때로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매일 매일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 변화를 느끼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첫 번째가 육체적인 모든 필요를 간구하는 기도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에 대한 용서를 해야 하고 또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이 만나본 많은 환자들이 모두 용서에 대해 인색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들의 삶을 무너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어렵지만 용서하지 않고 사는 삶은 더 큰 아픔이 따릅니다.

 

1975년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정권이 38개월 동안에 백만 명 이상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킬링필드'죽음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 매장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 많은 시체 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태국으로 가서 복수를 꿈꾸며 살았는데,

그가 결국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나중에 박사가 되어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다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라의 치욕적인 역사를 용서했고

결국에 그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일에 헌신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가 복수심으로 살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에게 용서하도록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는 길은 [좁은 길]이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지요.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에 벌어진 사건으로 군대 사격장의 뒤편으로 부대원들이 지나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지나가다가 사격장에서 잘못 발사된 총탄에 의해 한 병사가 죽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때 죽임을 당한 한 병사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오발탄을 쏜 병사를 색출하지 말라.”고 요청하여

그 조사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피해 가족의 요청으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왜, 그런 맘을 품게 되었을까요?

것은 평소에 그 아들이 부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부대를 좋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대에서 온누리 TV에서 제작한 [서서평] 영화를 보게 하는 사단장이 있었기에,

피해자의 아버지의 마음을 녹이게 했기 때문입니다.

 

[서서평] 영화의 핵심은 미국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에 와서 평생 동안 모든 어려움을 겪으며 죽을 때까지

선교 활동하는 헌신의 마음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은 서서평 선교사의 마음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순환]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병사의 아버지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12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소서.” (6:12)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했으나 우리가 용서한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우리 죄를 용서해주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 세우고용서 받는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용서]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용서이지만,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거기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용서를 체험한 사람이 계속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친밀한 관계를 통한 용서이니까용서는 필요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나도 용서했으니 하나님이 저에게도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한 것은 번역상의 오류입니다.

 

이것은 동시적 필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정의 서약과 같이, 동시적으로 임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용서받는 것은 동시에 충만하게 흘러넘친다.“는 거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용서 받았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온전한 용서이기 때문에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는 것은 말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기가 어려운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나의 [이기심][자존심]을 앞세우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이 깨지기 때문이지요.

죄의 용서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서로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일상생활에서 죄를 용서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누리라.”는 의미이고,

내가 용서해 준만큼, 더 하나님과 친밀함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마태복음 614-15절 말씀에서

너희가 너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6: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다른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합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100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강요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 달란트는 1년 동안 받는 월급과 같은 귀중한 가치이고,

1 데나리온은 하루의 품삯과 같은 적은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1 달란트는 보통사람이 느낄 수 없는 엄청난 돈의 가치인데,

그런 엄청난 큰돈을 탕감 받은 사람이, 쉽게 갚을 수 있는 돈을 탕감해 주지 않는 경우이므로,

그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탕감해준 은혜에 우선 감사해야 하고, 그런 은혜를 입었으니,

자기가 꿔준 100 데나리온도 탕감 해 주는 것이 그 사람의 도리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 받은 것과 같이, 용서하라.”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자꾸 조건을 답니다.

그 사람이 변화가 없으니, “내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용서]는 나 자신을 자유하게 만듭니다.

내 자신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 상대방을 생각해서 용서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누리기 원한다.”, “그를 용서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길이니까,

결국에는 상대를 사랑하는 길이 됩니다.

 

그렇게 행동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동시적인 상황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한 것 같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삶이나, 국가 간의 문제에도 용서를 회복해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모든 갈등의 원인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일본과의 심각한 갈등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픈 상처를 드러내지 말고, 용서의 마음으로 감싸야 합니다.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아픈 상처가 나를 찌릅니다. 일본과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고, 한 맺힌 상처를 풀게 하시어, 올바른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게 하옵소서.

 

역사의 아픔이 계속 악순환 되고 있고,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으니,

분열과 다툼의 고리를 끊어 주시고, 그 아픔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용서의 마음] 만이 이 세상을 바꿉니다.

복수의 마음은 멸망의 길입니다.

 

내 안에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니, 치유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여 용서의 마음으로 이 기도문을 매일 매일 읽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