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치명적인 죄, 나태 (마25:14-30) 말씀: 박종길 목사님
오늘은 치명적인 죄의 4번째 시간으로, [나태]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태함]이란 [게으름]이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치명적인 죄“라고 말하는 것은
"복잡한 현대인에게도 삶에 여유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나태]라는 말은 “의욕과 활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나태]는 몸이 느슨한 상태가 아니고,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왜, [나태]가 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1) 첫째로, [나태]는 다른 죄와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왜냐하면, [나태함]이란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은사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돈]이라는 것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법인데,
그러나 우리가 누려야 하는 시간은 “한 번 흘러가 버리면” 되돌아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우리는 소중히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귀한 시간을 [나태함]으로 낭비해 버린다면, 그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죄]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죄]”가 되지만,
[나태함]은 그것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나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달란트]는 ”재능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지만,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폐단위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가질 수 없을 정도의 큰 액수입니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니까,
날수로 환산하면 20년 정도의 품삯이 한 달란트이니까, 아주 큰 금액입니다.
예수님이 이 큰 돈의 액수를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달란트]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삶의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5 달란트와 2 달란트와 1 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주인이 종들에게 결산을 하게 되는데,
5 달란트를 받은 종은 5 달란트를 벌어서 10 달란트 가지고 왔고,
2 달란트를 받은 종은 2 달란트를 더해서 4 달란트를 가지고 왔어요.
그러나 1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에게서 받은 돈, 그대로 1 달란트를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인님, 저는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에 묻어,
감춰 두었고,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라고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 곡식을 모은다는 것을 안단 말이냐? 그
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했을 것 아니냐?
그랬다면 내가 돌아와서 그 돈에다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다.“(마 25:26-27)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배로 재산을 증식하여 예수님께 큰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아무 이윤을 남기지 못하여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한 달란트를 투자했다가 날려 버릴까봐 겁이 나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적어도 한 달란트를 잃어버리지는 않으려고 했다가, 있는 것 마저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은행에 저축하여 이자만 받았어도, 그와 같은 처벌은 면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나태하게 움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12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합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도, 여러분에게 명령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여러분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게을리 행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참견이나 한다고 합니다.”(살후3:10-11)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충격을 받을 까봐, 그 뒤에 나오는 부분까지 읽었어요.
사도 바울은 일 자체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르고, [나태함]을 나무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돌보아야 할 것을 돌아보지 않는 일도 [죄]라고 보고, 나무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우리들은“게으름의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사명], “내가 받은 달란트”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내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도 내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도 잠시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말씀과 같이, [주인]이 [종]들에게 위탁한 것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위임 받은 권한이 나에게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환경에 따라, 우리에게 잠시 맡겨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맡겨진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느끼고, 맡기신 분에게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체하지 않는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4장 2절에, ”맡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신실함입니다.“(고전4: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했느냐?“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소명]이 중요하니, 그 [소명]을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3) 세 번째로, 우리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에서 종들의 능력에 따라, [주인]이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종]이 아니라, [주인]의 몫입니다.
또한 내 인생에 대한 능력을 판단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 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존재입니다.
나는 오직 주어진 일에 대한 평가를 부여 받기 위해, 오로지 노력하는 존재로,
나중에 ”내가 무엇을 했느냐?“를 보고,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21절의 말씀에서,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마25:21)
주인은 그 결과를 보면서,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칭찬하면서,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해 줍니다.
이 말씀은 [주인]이 ”더 많은 일을 맡기려고“ 종들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 동안 충성되게 일했으니까, ”이제는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을 해 줌으로써,
그들의 [달란트]가 변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의 [달란트]가 변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결론]이 아닙니다.
지금은“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달란트]를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오늘 끝낼 수 있도록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종의 능력”에 따라 주었어요.
그것도 종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준 게 아니고, 종의 능력에 따라 나누어 주었고,
그 후에 “주인의 평가”가 따른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에도, 그냥 준비 없이 이루어 진 게 아닙니다.
목동시절에 갈고 딱은 노력이 있었기에,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정통으로 행한 것입니다.
사단은 비교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비교 의식]은 사단의 무기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어, 교만에 빠지게 유도합니다.
▶이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증가하는 원리>를 가진 나라입니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물질을 어딘가에 투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투자를 하면, <증가>가 따르기 마련인데,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투자하지 않고,
땅속에 묻어두면, “가진 것 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땅속에 묻혀 있는 돈은 돈의 사명을 다할 수가 없으므로, 돈은 돌고 돌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선한 목적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하고, 내 능력에 맡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충성된 종으로써, 일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을 다 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동안 수고 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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