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치명적인 죄 6, 허영 (마6:1-4)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위선과 허영”에 대한 말씀입니다.
[위선]은 “거짓 선“이고, [허영](Vainglory)은 ”거짓 된 영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허영심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며, “거짓 된 위선과 허영심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마태복음 6장 1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마6:1)
오늘 본문에서는 ”의를 사람들 앞에서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냥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고, 단순히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은연중에 “자신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원인들은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는 위선자들처럼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떠들지 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상을 이미 다 받았다.”(마6:2)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 “칭찬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구제 하면서도 자신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인간은 내가 드러나기를 원하고, 나는 언제나 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부에 있을 때에, 서울 역 주변의 노숙자를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했는데,
갑자가 노숙자 중에 한명이 “내 신발 어느 놈이 신고 갔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아마도 자기 신발이 좋은 신발인데, 그것을 누군가가 바꿔 신고 가서,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신고 갔던 스니커스 운동화를 그에게 제공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위선]인데, 그래도 스스로가 너무나 기특했어요.
청년들 앞에서 목회자가 그냥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서, 그런 경정을 했어요.
이것은 분명히, 선을 행하면서도 위선을 나타내는 것과 같아, 한동안 좀 그랬어요.
▶2절의 후반부에, “자기상을 이미 다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①첫째는, 자기가 ”자화자찬“을 한 것이고,
②둘째로, 그런 사람은 ”자기 [의]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고,
③셋째는, 하나님이 주신 상이 아니고, 자기가 상을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영심]은 ”초점의 문제”입니다.
남을 도우면서도,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건 [허영심]입니다.
▶[허영심]은 무엇입니까?
[허영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나타내면서도, 자기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너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라.”(마6:3)
우리는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꾼 돈”은 쉽게 잊어버리는데, “꾸어준 돈”은 잘 까먹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선행이 가끔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선행이 일상의 생활처럼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선행하는 습관”이 일상이 되도록,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인식하고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들이 숨을 쉬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번역한 책에 대해, “인세가 나왔다“고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 전화를 받으며, ①먼저, 내가 좋은 번역자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②그 다음에는, “이제 번역료가 나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 동안 기분이 좋았었는데, 시간이 자나면서 생각을 해 보니, 계속해서 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놓는 일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것을 나의 유익에 사용하려고 일시나마 생각을 했으니까, “그게 불편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웃리치 시즌인데, 수고들 대단히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참여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자신이 기특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을 하는 거예요.
오히려 내가 선교사로 자원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먹거나, 시골 목회하는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참여는 당연한 일로 생각하십시오.
등대는 어두운 밤을 밝히고, 밤마다 불빛을 비쳐주지만,
등대 스스로가 빵빠래를 울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외과 의사인 장기려 박사는 6.25 이후에 폐허가 되었을 때,
가난한 사람과 돈 없는 환지들을 위하여, 부산에 복음병원을 개설하고, 의술을 베풀어준 의사입니다.
그는 ”돈이 없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오늘 밤 9시에 병원 뒷문으로 내 보낸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평생을 병원의 옥탑 방에 거주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막사이 상을 받으며 전해주는 말씀은,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나는 매일 편안한 잠자리에 자고 있었으니, “그에 비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인터뷰 했습니다.
(2) 인간은 허영과 위선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4절의 말씀을 보면, 그래서 네 착한 행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6:4)
여기서 예수님은 ”선행은 남모르게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성경에는 정 반대의 표현도 나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을 읽으세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마5:16)
▶언제 선행이 드러납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이 드러날 경우에는 당연히 감추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낼 때에는 그 영광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말 못하는 식물도 칭찬을 하면, “잘 자라고,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과시욕]이 들어가는 순간에, [선한 것]이 [악한 것]으로 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욕구“가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자연을 절대시 하면, [자연 주의]에 빠지게 되고,
인간을 절대시 하면, [인본 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같은 원리로 물질을 절대시 하면, [물질만능 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고, 자연이 아름다우면, ”세상이 아름답다”고 표현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적소 적소에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행하고도, 억울하게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행하고도 억울한 이유는
① 은혜 의식이 아니고, [보상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②“주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내가 받고 싶기“ 때문이지요.
③ 사람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기 때문이지요.
④ 그 상급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허영심]은 왜, 옵니까?
①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이웃을 사랑함도 아니고, 지난 친 [자기 애] 때문입니다.
③ 무엇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아벨]과 [가인]의 이야기에서, [아벨]은 히브리 말로, Vain(= 허물)이라는 뜻이고, [가인]은 히브리 말로, Gain(= 얻었다)는 뜻입니다.
[아벨]은 공허한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웠다.“는 말이고,
[가인]은 충만한 인생은 ”세상의 영향을 찾아 떠났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아벨]의 역설로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가인의 모순에 빠질 것인가?“의 두 갈래의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빌2:3)
모든 일에 ”다툼이 있다”는 것은 “남의 영광을 빼앗는 일”이고,
[허영]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하는 [참된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심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를 탓해야 합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크리스천은 사기극을 벌리는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허영]은 “가짜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첫째로, [헛된 영광]이 아니라, [참된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에, 하얀 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이미 조금 그려진 그림에다 “더 그리는 것 어느 것이 쉬울 까요?
그 대답은 ”새로운 종이에 새로 그리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는 그림을 그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그려 진 곳에, 더 잘 그리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참된 영광]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무게“라는 말입니다.
[영광의 빛]이라는 것은 ”그 존재의 무게”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나오는 법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분(=하나님)의 영광을 입었기 때문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된 영광]은 “존재로부터 나오는 법”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하나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편 8편 5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개역개정 성경에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우리 말 성경에는 "주께서는 사람을 하늘에 있는 존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함의 관을 씌우셨습니다.(시8:5)
우리는 우리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때,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우리에게도 영광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 다 들어나니, 인간은 허영을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적당히 하고, 헌금도 드리지만, ”그랬다“고
내가 영광스러워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인간 스스로 정직해야 허영에 빠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윤리와 도덕을 모르기 때문에, 허영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빛을 받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을 “발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빛을 받아서, 빛을 발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드러내는 사람”이고, 그 영광을 전달하는 사람일 뿐,
우리는 “축복의 주인공”이 아니고, “축복의 통로”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은혜를 갈망하므로, 한 주간에 [헛된 영광]을 버리고,
"[참된 영광]의 전달자”로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 영광]에 쌓여 있으므로,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참된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영광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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