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기도 (느1:4-11) 말씀: 이상준 목사님
우리들은 요즘에, 구약의 인물들이 “기도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의 기도”에 대해 몇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는 우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이 있는 그곳이, 회복되기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예루살렘 성벽처럼 무너진 상태라면,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성벽을 다시 일으키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데, 별로 그러지 못합니다.
▶ 느헤미야 1장을 보면,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①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포로시절을 회상하며,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으나,
그가 먼저 본 것은 현실의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성전이 훼파되고,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은 불에 타서 엉망진창이 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140년 동안 허물어진 상태로 그대로 남아 있었던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집이 무너지고, 그 안에 성물은 모두 다 도둑질을 당하고, 성벽이 허물어진 것을 볼 때마다,
느헤미야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전 건축>을 먼저 결심합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가서 <술 맡은 관헌>이 되었는데, <술 맡은 관헌>은 어떤 직무를 가진 사람입니까?
<술 맡은 관헌>은 왕의 마음에 들어서, 임금님과 말동무가 되고, 음식을 같이 먹고,
믿음이 가는 사람 중에서 선정합니다.
<실력>이 있으면 대개 [믿음]이 적습니다. <믿음>이 많으면 [실력]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믿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처리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하고,
또 <실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믿음]이 부족해요.
그러나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은 너무나 잘 나가고 일이 바빠서,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지만,
우리가 찾는 사람은 하나님도 잘 믿고, 실력도 특출해서, 국정도 잘 보살피는 <능력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②느헤미야는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만 주저앉아 울고 말았어요.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슬픔에 잠긴 채 금식하면서, 하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말했습니다.” (느1:4)
눈물과 통곡은 그냥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아요. 오랫동안 마음에 생각을 하고, 묵상을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가슴 찢어지는 애통을 가진 사람만이 눈물이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이 파괴 되고, 140년간 그대로 방치된 비참한 상황을 듣고, 주저앉아 통곡을 합니다.
그것도 몇 날 며칠간을 우는 게 아니라, “무려 4개월간 울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시대는 감정이 없는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어요.
현실의 일에 얽매여서 순간, 순간, 고통스런 일에 매달려 살고 있어요.
▶느헤미야는 왜 통곡했을까요?
느헤미야는 1차 귀환 시,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반대 세력들이 많아서, 결국은 성전 건축을 중단합니다.
이방인들이 수없이 침공하고,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을 하여, 성전은 피폐한 지가,
벌써 14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나갔고, 성전은 무너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보는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조국에 대한 생각과
성전 훼파에 대한 북받치는 감정을 누를 길이 없어서 통곡을 한 거예요.
5-6절 말씀을 읽어 보면,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과 맺은 사랑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의 종이 밤낮으로 주 앞에 기도하니,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떠서 이 기도를 들으소서.
저와 제 조상의 집을 비롯해 우리 이스라엘 족속이 주님을 거역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느1:5-6).
이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회개의 기도”를 시작하고, 울부짖으며, 죄를 고백합니다.
여기서 무너진 성벽을 방치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며,
“우리 부모님 세대와 자녀들의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것이고, 더 나아가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했다.“고 말합니다.
자신과 아버지의 집을 제외하면서 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은 것이고,
”나와 내 아버지도 같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주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죄“입니다.
공동체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반드시 나가야 합니다.
▶ 온전함(Intergrity)이란 무엇입니까?
어그러진 이 시대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온전한 마음“을 가질까요?
우리들이 기도하면서, 잘못된 사람도 있습니다.
①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②역사를 잘못 평가하거나, 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온전함]이 아닙니다.
오늘, 느헤미야를 보면, 140년간 방치된 성벽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생각하며, 느헤미야는 통곡을 합니다.
그렇다고 유다 인들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몫이라“고, 끌어안고 기도합니다.
몇 년 전에, 젊은 청년으로부터 저에게 이 메일이 하나 도착했어요.
이 청년은 세상이 너무나 악해져서, 세상을 한탄하고, 불합리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 난감하게 생각을 하며, 그에게 답장을 보냈어요.
① 먼저,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세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② 둘째로, 그래서 하나님은 나와 당신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런 일을 하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렇게 나쁜 세상이 되지 않도록,
“우리 서로 기도하면서 노력하자“는 내용과 함께,
③ 셋째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세상을 탓하지 말고,
”내가 그 대안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답장을 보냈어요.
우리는 언제까지 세상을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탓해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의 아들이 아프다면, 한 번 기도해 줄 수 있지만,
[내 자식]이 아프다면, 즉시 아들을 등에 업고, 응급실로 뛰어 가는 우리입니다.
제가 청년에게 부탁하는 말이 있었어요.
청년이여, 당신이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부모님을 어렵게 하지 마세요.
이제 당신은 청년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남을 탓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그 대답을 스스로 물어 보세요?”
먼저, “하나님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제 부모님이 나이가 드셨으니,
가정을 변화 시킬 책임이 이제는 [자신의 몫]이니, 자기 자신이 알아서 대답을 내 놓을 차례입니다.
부모를 탓하기 이전에, 부모님을 따뜻하게 안아 주고,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품으셔야 합니다.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먼저 부모님을 예수 믿도록 인도하고,
예수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고, 자기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니까,
[느헤미야의 기도]는 ”누가 성벽을 재건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그것은 느헤미야 자신이 해결할 <느헤미야의 몫>입니다.
---- 우리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말씀은 1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1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주여, 이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주의 종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오늘 주의 종이 이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고, 잘 되게 하소서.
그 때 나는 왕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느1:11)
느헤미야는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에게 [은총]을 구했어요.
왕에게 가장 큰 충성과 신뢰를 바쳐야 하는 느헤미야의 마음속에는 항상 [성벽 재건]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 말을 “왕에게 직접 대면하여 말씀드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가서, 마음속에 담고 있는 속 얘기를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의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에 따르면,
좋지 않은 조짐이 보인다 싶을 때는 왕은 그 자리에서 사형을 언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기다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께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느헤미야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느헤미야 2장 2절 말씀에,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아프지도 않은데, 네 안색이 왜 그리 슬퍼 보이느냐?
마음에 근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무척 두려워하여"(느2:2)
왕은 평소에도 느헤미야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술을 마시기 전에 왕은 느헤미야가 평안한지 살펴보았고,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며, 평소와는 뭔가 다름을 느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왕의 이런 반응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엄마에게 속마음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그는 어찌할 줄 모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신하의 근심을 살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왕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느헤미야에게 ”얼마나 준비됐는지?”를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필요한 기간을 말하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니, 그러한 준비된 모습을 보고,
왕은 느헤미야의 요구를 수락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얻게 되었고,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느헤미야의 끈질긴 기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은 친서를 써 주면서 까지, 느헤미야를 지원해 주었어요.
▶왕은 왜, 이렇게 파격적인 행동을 했을까요?
① 그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고,
② 느헤미야가 오랫동안 쌓아온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에, 왕이 그렇게 허락한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왕에게 10년째, 충성한 사람이니까, 파격적인 제안을 해도 받아드리는 것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이런 “느헤미야의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느헤미야에게 준 소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위로는 어떻게 옵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하늘에서 감이 덜어지듯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대를 하지 말고,
느헤미야와 같이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개척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원망을 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안이 되겠다.“고 마음먹기 바랍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영성을 가질 때,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도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감동시키고, 아닥사시스 왕을 감동시킨 ”느헤미야의 지혜“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배웠으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가 회복되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의 기도 (욘4:1~11) (2019.6.2) (0) | 2019.06.04 |
---|---|
하박국의 기도 (합3:1-19) 2019.5.26 (0) | 2019.05.29 |
히스기야의 기도 (왕하 20:1-11) 2019.5.5 (0) | 2019.05.07 |
여호사밧의 기도 (대하 20:1-12) 2019.4.28 (0) | 2019.04.29 |
부할주일 부활과 생명 (요11:25-26), 2019.4.21 (0) | 2019.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