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요나의 기도 (욘4:1~11) (2019.6.2)

다이나마이트2 2019. 6. 4. 09:25

요나의 기도 (욘4: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긴 여행은 “30센티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를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머리에서 결정하고,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시리아 제국에서 가장 악독했던 수도 [니느웨]에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순종하지 않고, 정반대인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요나를 보면서,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적합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켜서, 풍랑을 이용하여, 요나가 탄 배가 뒤집히게 하고, 배에서 뛰어내리게 하여,

바다 속의 큰 물고기를 준비해서, 요나를 삼키고, 결국 [니느웨]로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하시고자 하는 []을 하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은 왜, 요나를 꼭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택하신 [요나]를 하나님께서 변화시키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길 바라면서, 죄악으로 가득한 [니느웨]를 살리는 것보다,

오히려 멸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진 고집과 신념이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마음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3일 길을 지나야 하는 [니느웨] 길을/ 요나는 겨우 하루 만에 걸으며, 멸망의 소식을 전했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온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요나]는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장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니까, 요나를 땅으로 토해 냈고,

3장에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니까, 요나는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것은 [선교]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41절을 보면, “요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4:1)

요나는 마음에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며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사역을 마치고, 언덕에 올라서 니느웨 성이 망하길 바라며,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요나의 모습입니다.

 

언덕에 앉았을 때, 하나님은 요나를 위로하기 위해, 박 넝쿨을 준비했습니다.

그 잎사귀로 그늘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늘에 시원하게 앉아서,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기다립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요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벌레를 보내서, 넝쿨을 다 갉아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보내, 그 벌레가 넝쿨을 씹어 먹게 하시니,

넝쿨이 시들어 버렸습니다,”(4:7)

 

또 해가 뜨자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쪽 바람을 준비하여, 해가 요나의 머리 위를 따갑게 내리 쬐어,

그는 힘이 빠졌습니다. 그는 죽기를 원했습니다.”(4:8)

 

[우리의 기도]도 대부분 합당한 기도를 드리지만, 때로는 합당하지 못한 기도를 드릴 때도 있습니다.

요나는 감사는 사라지고, 4장에서 분노하며, “이제 제발 내 목숨을 가져가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과 대면했으나, ”결국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되돌아 왔습니다.

요나의 마음속에 불순종이 있으니까, 니느웨는 변했지만, 요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요나는 하나님에게 쓰임은 받았지만,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는 연결 되지는 않았습니다.

회개와 각성이 일어났으나, 하나님은 요나가 쓰임 받는 것 보다,

요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는가?”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

나는 과연, 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결국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나가 불평하는 것은 니느웨에 하나님의 은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4장에서, 불평하는 소리를 어떤 학자들은 영유아기의 회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어린이와 같이, 떼를 쓰는 모습이니까, “영유아기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열왕기 서를 보면, 요나는 쓰임 받던 선지자입니다.

그랬던 선지자가 하나님에게 불평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수련회에서 어떤 청년이 울면서 기도하기에, “은헤를 많이 받았군요?”라고 말을 하니까,

그게 아니고, 옆에 친구를 보니까, 오히려 분노가 가득 차서 그랬다.”는 거예요.

 

자세히 들어보니,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친구가 여기 와서 은혜 받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혀서, 그런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기도 알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런 마음이 하나님에게 들킨 것이니까, ”그런 은혜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나는 수많은 생명이 회복되었는데도, 정작 자신은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얘기로, 아주 오래 전에,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느낀 감정입니다.

어떤 성령 충만한 집회가 있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이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는 설교자가 제가 아니고, 다른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고발하는 [참회록]입니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분노하는 모습이 적나라 합니다.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무한한 사랑으로 환영해 주고, 잔치를 베풀어 주지만,

그 아버지의 마음을 큰 아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큰 아들의 모습이, 바로 [요나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게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노의 정신입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고맙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는 별로 반가운 게 아닙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감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에 분노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은혜는 좋아하고, 남에게 주는 은혜를 시기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3가지 질문을 합니다.

①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은, “네가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하냐?” 라고 묻습니다.

요나의 마음속에는 ”[니느웨]가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므로, [요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이런 [요나의 분노]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②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넝쿨 때문에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묻습니다.

요나는 대들면서,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라고 대답합니다.

 

▶ 우리는 때로는 마음속의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속이 좁은 존재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③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은/ “그 넝쿨은 네가 가꾸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 넝쿨인데,

화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요나의 마음이 삐뚫어져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니느웨]성 만큼은 "무너져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그 도시까지도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에서도 요나는 침묵합니다.

그리고 [요나서]는 끝이 납니다.

 

▶[요나서]의 마지막 구절이 “물음표” [?]  “질문부호“로 끝나는 것은 왜, 그럴까요?

우리 모두를 거기에 서게 만들고,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요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구원하는 하나님인데, 우리들의 마음에는 그렇지 않으니까,

요나와 같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나는 아니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나는,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자아를 갖고 있으니, 그걸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요나와 같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자아를 회개하고,

하나님, 옳습니다.”라고 먼저 수긍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세상에 나가서, 올바로 살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장벽]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낼 사람이 없어서, 우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 원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