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의 기도 (합3:1-19)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은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를 통하여,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하박국 3장 16절의 말씀을 먼저 함께 읽으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우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3:16)
쉬운 우리 말 성경으로 다시 보면, “내가 그 소리를 들으니, 내 뱃속이 뒤틀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떨리며, 내 뼈가 썩어 들어가고, 내 다리가 후둘거립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하려고 오는 나라에 닥칠 재앙을 조용히 기다릴 것입니다.”(합3:16)을 나누려고 합니다.
▶ 먼저, 예언자, 하박국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라는 말 이외는, 별로 소개되어 있지 않으나,
남 유다가 멸망당하기 직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이거나, [레위인]으로 추정됩니다.
하박국 1장을 보면, [하박국의 기도]가 나오는데, 먼저 하박국이 질문을 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언제까지 폭력이 난무한 세상을 보면서, 왜, 가만히 계십니까?
왜, 악이나 불의를 보게 합니까? 악을 심판한다고 하면서, 더 큰 악을 사용하십니까?”라고 물으니까,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의롭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2:4)라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대답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느냐?”
이 말은 하나님이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나는 세상을 움직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나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2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대답합니다.
“마치 물이 바다를 덮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 찰 것이다.”(합2:14)
결국에, 폭력으로 인한 바벨론도 내가 심판하는데, “그건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①하나님은 이 세상이 원래 악한 세상이니까,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됩니다.
②또한 바벨론은 더 악한데, 그걸 들어 쓰시면, 더욱 안 됩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하나님은 기다려도 문제이고, 하나님이 심판을 해도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부모가 너무 엄해도 불만이고, 또한 너무 관대해도 불만인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저는 [신정론] (= 신에 대한 정의)에 대해 몇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신정론]은 신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인데, ”하나님은 과연 올바른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과연 정의로우신 분인가?“ 라는 것입니다.
(1) 하박국의 첫 번째 기도는, ”공의로운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허락하시나?“
인간은 하나님의 정의에도 동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넓은 자비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는 한량없으므로, 죄인인 우리 인간이 감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을 다 이해하지 못하듯이, 어찌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다 알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이 원하는 것은 ”자식이 잘 되라.”고 바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원하는 것은 “모두에게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바닷물이 경계선을 넘는 일을 “쓰나미”라고 말하는데, 그게 일어 날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탓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재앙을 내리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직도 망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나와 다른 정의와 자비를 갖고 계십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의로만 심판을 하신다면, 이 사회는 지금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품꾼 비유“에서 말씀을 하셨듯이, 아침에 일찍 온 사람이나,
저녁 늦게 온 사람이 모두 다 똑같이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었듯이, 모두 다 똑 같이 보고 계십니다.
이 때, 예수님의 멘트는 ”내가 내 것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데, 내가 선을 행함으로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냐?“는 대답입니다.
(2) 하박국의 두 번째 기도는 “주의 일을 새롭게 하소서”입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는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부흥케 해 달라”는 말은 “다시 한 번 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신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신뢰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는가?“라는 말입니다.
제가 지은 책에서 ”두려움 너머의 삶“중에, [고소 공포증]이나,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는 현상이 나옵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을 거꾸로 생각을 하면, ”내가 조종실에 있더라도 상황이 바뀌어 지나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오해가 있어요.
그런 비행기 공포증을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당신이 몰라도, 10년 이상 경험이 풍부한
훌륭한 비행사가 비행을 하니까 그를 신뢰하십시오.“라고 말해 줍니다.
이 대목에서 과연, ”하나님을 신뢰합니까?“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2장 4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 여기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은 무슨 말입니까?
내가 비행기 조종사를 신뢰하니까, 비행기를 올라타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①첫째는,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고,
②둘째는, 성품,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믿는 것이고,
③셋째는, 주권, ”위기 상황에서도 결정권을 행사할 것이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시는지?”
“하나님은 왜, 기다리시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에, 신뢰를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3)셋째로, “진노 가운데서 자비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박국은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깨닫게 되려면,
”의인에게도 고난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①모든 질문에는 그 질문 안에 이미 해답이 숨어 있어요.
②또 질문에 이미 힌트가 들어 있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상에 완전한 의인은 존재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 이 말은 선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항의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곳곳을 보아도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면, “이스라엘부터 심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 네 번째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구원의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여기에도 [신정론]의 입장에서 ”관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것은 자녀를 살리려는 마음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잠언 19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아들을 훈계할 때, 소망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괴로워 죽겠다고 할 때 까지 하지는 마라.“(잠 19:18)
이 말씀은 체벌에 대한 말씀으로, ”아직 희망이 있을 때, 자녀를 훈육하고, 징계하라.“
”그러나 자식을 죽일 마음은 품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입니다.
(5) 하박국의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 기도입니다.
하박국 3장 16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우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3:16)
쉬운 우리 말 성경으로 다시 보면, “내가 그 소리를 들으니, 내 뱃속이 뒤틀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떨리며, 내 뼈가 썩어 들어가고, 내 다리가 후둘 거립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하려고 오는 나라에 닥칠 재앙을 조용히 기다릴 것입니다.”(합3:16)
2000년 전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계속해서 항의하고, 질문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박국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경험]입니다.
이런 [경험]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경험]은 내가 처음 교회에 나와서, 성령을 받고, 감격할 때와 똑같은,
완전히 내가 느꼈던 [경험]과 같습니다.
이 [경험]은 더 나아가 내 인생의 방향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는, 내 인생에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 여섯 번째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더라도,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나는 여호와를 만남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기도입니다.
"비록 무화가 나무에 잎이 무성치 못 하더라도,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더라도,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나는 여호와를 만남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합03:17)라고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농사를 짓고, 소득이 없으면, 가축을 키우겠습니까?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과 대가가 없으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오로지 내 인생을 책임져줄 사람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양하고,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하박국 2장에서는 하나님한테 묻고, 항의하고, 또 따졌는데,
하박국 3장에 와서는 왜 하나님에게 그렇게 따지지 않고,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하박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지금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 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이고,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실제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부터, 이제는 “실체가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번도 그 분을 본적도 없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그 분의 실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 어떤 [힘]을 느끼고,
그 어떤 [힘]이 그 어떤 "능력"을 나타나게 됨을 느끼게 됩니다.
즉, 그 [말씀]이 내게 들어와야, 그분의 실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하박국 선지자가 오늘 말씀인 3장에서 이런 것을 느낀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은 교회 와서, 좋은 연극을 보고,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교회에 나오면서 지불하는 입장료가 아닙니다.
오늘의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와 같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소리에 내 입술이 떨리는 현상을 맛보아야 합니다.
비록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신앙인]입니다.
그런 사람의 눈은 반짝거리고, 입술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걸음은 힘차게 걷게 됩니다.
이런 [신앙인]이어야,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그 분은 나에게 힘이 되시는 분입니다.“
18-19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기뻐할 것이고, 내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 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내 힘이십니다. 그분은 내 발을 사슴의 발처럼 만드시고,
그분은 평원에서 나로 하여금 뛰어 다니게 하십니다.
이것은 지휘자에 의해 현악기에 맞춰 노래하는 것과 같습니다.“(합3:18-19)
악한 세상이라도, 관계의 어려움이나, 고통, 그 자체를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고난과 고통, 그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동시에 쾌락 그 자체도, 선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짓말이라도 ”선이면 괜찮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진리일지라도 나에게 상처가 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저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떤 집회에 참석했는데, ”너무 은혜가 된다.“고 하기에, ”어디냐?”고 물었더니,
“◯◯체육관“이라고 하기에, 저는 ”그냥 나오라”고 했어요.
“이단일지라도, 나에게 은혜가 된다면, 괜찮다“는 그 분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떻게 낙태가 괜찮은 것인가요?“ ”어떻게 동성애가 죄가 아닙니까?“
▶ 왜 하나님에게 신뢰가 가고, 힘이 될까요?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공포는 [신뢰]로 바뀌어 지고, 고민과 번민은 [찬양]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 내 현재의 조건이 어떨지라도, 나의 [물음표]가 감동의 [느낌표]로 바뀔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이 악한 세상에서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불평하신다면,
하나님은 그런 곳에 당신을 보냈고, 우리가 결정하여, 이 사회를 변화 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환청으로 들려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주역]이고, [주인공]입니다.
”하나님, 왜 불합리한 세상을 이대로 놔두십니까?”라고 한탄하지 말고, 당신이 그 역할을 담당하십시오.
그러니까 “니가 가서, 그 일을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당신이 앞장을 서십시오.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미루지 말고, 우리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정리 천영무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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