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사무엘의 기도 (삼상3:1-14) 2019.3.24

다이나마이트2 2019. 4. 4. 09:50

사무엘의 기도 (삼상3:1-14)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은 마지막 사사시대에 [사사]였던 사무엘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무엘상 3장 1-3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밑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을 보는 일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엘리가 자기 방에서 누워 있었고, 사무엘은 법궤가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누웠으며,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삼상3:1-3)

 

여기에 소년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그는 과연 몇 살일까요? 12살 정도로 추정하니까,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로 추정합니다.

1절을 보면, 엘리 제사장 밑에서 “시종 생활을 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사무엘의 기도“를 통하여, 기도에 대하여,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첫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집중력“을 가지면, [기도의 문]은 열립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밑에서 공부를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니까,

이것이 어린 사무엘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다양한 채널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사사 시대는 영적 침체 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오늘 날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분이거나, 결코 과묵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 분인데, 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 같이,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말씀은,

"엘리 제사장은 자기 방에 누워 있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에 누워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당은 어떤 곳입니까?

혹시 여러분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곳은 아닙니까?

아니면, 예배당을 하나님이 임재 하는 처소로 생각하십니까?

 

혹시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은 만나지 않고, 예배당을 방문하면서, 문틀만 구경만 하고, 그냥 가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처소에 방문하여, 구경만 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십시오.

 

[성전]은 방문하는 곳이 아니고, [성전]은 ”머무는 곳“이어야 합니다.

[신의 언어]에도,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하는 처소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주 중에 성경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한 곳에 골방을 정하여, 책상을 비치하시고,

그 위에 성경이 놓여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곳은 늘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장소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된 방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청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분에게만,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선택은 [점]이 아니고, "[선]을 긋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점]이 아니고, [선]입니다.

 

"내가 기도했다”고 응답받는 게 아니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응답이 [선]으로 이어져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4-6절에는, "이때 사무엘아, 사무엘아, 라고 부르자, 사무엘은 "예,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엘리에게 다가가서, "나를 부르셨냐?"고 물으니까,

엘리 제사장은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그래서 사무엘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삼상 3:4-6)

 

새벽 녁에, 등불이 꺼지지 않은 시각에, 여호와가 사무엘을 부르니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것으로 알고, 엘리에게 가서 물어 보니,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도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때 까지 사무엘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처럼, 열심히 섬기는 사람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잠자리에서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일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평생을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세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방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인격적“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것으로,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과 내가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도, 영혼을 변화 시키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식으로 아는 것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제가 되고 나서, 내가 하는 대화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그런 관계에서, 새롭게 하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입니다.

 

물론, 지식으로는 알지라도,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그런 경우도 있으니까,

7절과 같이,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담임 목사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평생을 영어를 공부했는데, 외국 사람과 만나면,

영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합니까?

그게 아니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분을 찾고, 그 분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지식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청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모르니까, 그런 것은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결단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말씀이 들려 올 때, 불순종하지 마시고, 순종해야 말씀이 들려 집니다.

②나의 "영적인 무관심"을 내려놓으십시오.

③내가 느끼는 "영적인 난청"을 당연시 하지 마십시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씀하지 않는 게 아니고,

그 음성에 익숙해 지지 않으니까, 그 음성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응답하는 것입니다.

 

8-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세 번째로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냐?고 물으니까, 그제 사 엘리는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서 누워 있다가, 다시 부르는 소리가 나면 여호와여,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일러 주니까, 사무엘이

돌아가 자리에 누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부르셔서 사무엘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삼상3:8-10)

 

[기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또 다시 부르니까, 사무엘이 대답합니다.

 

[기도]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나는 대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나는 경청하고,

대답만 잘해도, 기도의 90%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대화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나는 대답하면 됩니다.

[욥기]를 보면, 하나님이 대화의 주도권을 갖고, [욥]은 대답만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하박국]은 그냥 물음에 대답합니다.

 

이것은 아이와 아빠가 소꿉장난을 해도, 아빠가 주도권을 갖고, 아이를 리드합니다.

아이가 아빠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아이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러하듯이 대화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하지 마십시오.

 

(4) 네 번째로, 기도는 순종할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기도가 열리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에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에 어떤 일을 행할 것이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두려워서 귀가 울릴 것이다.”(삼상 3:11)

 

[기도]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기도가 열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던지, 순종하기로 결단할 사람에게 들려 지는 법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하면, 그건 대화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외면하려는 사람에게는 들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그 사람이 제사장이더라도, 12살 소년이든지, 그가 목동이든지,

순종할 마음을 가지면, 그에게 하나님의 소리는 들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핑퐁]과 같아요.

그분이 [핑]하고 말씀하시면, [퐁]하고 대답하지요.

 

조이 도우슨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라는 책에서,

"순종한다고 기도할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5) 다섯 번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12-1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때, 내가 엘리의 집안에 대해, 말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룰 것이다. 내가 엘리의 집안을 영원히 심판 하겠다고 말한 것은 엘리가 자기 아들들이 스스로 벌을 청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안을 두고,‘제물이나, 예물로 결코 깨끗해 질 수 없다.’라고 맹세했던 것이다"(삼상3:12-14)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여기 앉아 보세요.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라고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주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깊은 새벽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고, 사무엘이 그 음성을 듣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무엘]은 듣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무릅을 꿇고, 들었나요?

[사무엘]은 그냥 누어서,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었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급했으면, 그 새벽 밤중에, 자고 있는 어린 소년을 깨워서, 사무엘을 불렀을까요?

10절 말씀을 보면, 아이는 누워 있고, 하나님은 서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약속의 땅을 주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으니까,

"나에게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해 집니다.

잠자는 사람들애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이 어린 소년, [사무엘]입니다.

 

[기도]는 내 영혼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화 상대가 없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들려지지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자기와 대화할 상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장들을 보면서, 유일하게 반응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나이 어린 사무엘과 같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소년 사무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영]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엘리 제사장과 같으니,

어린 [사무엘]과 같은 소년을 찾으십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과거 사사 시대와 같은 침체한 우리나라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오니,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정리 : 천영무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