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한나의 기도 (삼상1:01-18) 2019.3.17

다이나마이트2 2019. 4. 1. 21:10

한나의 기도  (삼상1:01-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웠던 시대는 바로 [사사 시대]인데,

영적 지도자들의 상태를 보면, 그 시대의 암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영적 지도자가 "여호와를 의식하지 않았다"(삼상 2:12)는 기록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시는가?"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서, 기도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십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이 이런 공통을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만드십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 뿐 만이 아니라, 한 시대에 벌어지는 "역사적인 문제 까지도 개입하고 있다"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사사시대]에도 그랬습니다.

[한나]라는 한 여인의 기도를 통하여, “아이가 없다는 것은 그 여인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역사도 함께 치유해 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주는 목적에는 더 큰 목적이 있었고, 그 고통의 배후에는

"한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시대를 변화를 알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 [엘가나]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아이를 갖지 못한 [한나]

아이를 가진 [브닌나], 그리고 [엘리] 제사장입니다.

 

▶오늘은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첫째로, [한나]는 남편의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매달렸습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인데, 두 아내가 있었어요.

여기서 경건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수준이 낮은 시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두 번째의 아내 [브닌나]는 여러 아이를 출산했으나,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를 붙잡고 계셨습니다. 이 고통은 인간이 만들어낸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뜻이 있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고통입니다.

[한나]는 이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날마다 무릎 꿇게 하고,

날마다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날에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 아이가 없는 일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한나]를 사랑했으나, [브닌나][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겨서,

[한나]는 울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하나님이 [한나]에게 주신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므로, 사랑하는 남편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므로, 오직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나][브닌나]와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빌었어요.

 

8절을 보면, 괴로워하는 [한나]에게 남편 [엘가나]한나, 왜 그렇게 울고 있소,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 보다 더 낫지 않소?”라고 위로해 줍니다.

 

그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속으로, “낫기는 뭐가 낫냐? 오히려 아들이 있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절규하며,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한나]위대한 점입니다.

 

② 두 번째로, [한나]는 [브닌나]에게 맞서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만 찾습니다.

 

둘째 부인이 괴롭히는 것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음모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괴롭히는 [브닌나]와 다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대화하며,

괴로움을 참으며,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10절에,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울고, 또 울면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는 것을 보면,

자신의 괴로움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자기의 속마음을 쏟아 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한나]귀한 믿음입니다.

 

11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리고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여, 만약에 주께서 주의 종의 비참함을 굽어보시어,

저를 기억하시고, 주의 종을 잊지 않고, 제게 아들을 주신다면, 제가 그 평생을 여호와께 바치고,

결코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겠습니다.“(삼상1:11)

 

[한나]의 기도는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순종하겠다"는 기도입니다.

 

[한나]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자식이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아들을 바치겠다.”는 기도입니다.

 

[한나]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통곡의 기도에서 [한나]는 의식적이고 지성을 사용한 서원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게 만약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서원의 기도]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 흥정하는 게 아니라, 진실하게 자기의 마음을 쏟아냈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소원을 말하면, 응답을 하시는 분입니다.

 

③ 세 번째로, [엘리] 제사장의 “영적 무지”에 분노하거나, 탓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 하고, 믿고 기도를 합니다.

 

9절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의자]는 다리가 아파서 앉는 [의자]가 아니고, 자신의 신분과 직분을 나타내는 [의자]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앉아서 일하지 않고, 서서 일하는 것인데,

여기에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표현은 무기력하고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직무에 태만했거나, “직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말입니다.

 

기도에 전념해야 하는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말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표현이고,

이것이 영적 어두움을 의미하고, 올바르지 않은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13-1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한나가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어서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더 취해야 겠소‘ ’어서 술을 끊으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삼상1:13-14)

 

여기서 술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는 제사장은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잘못된 판단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술 취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제사장의 판단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영적 무지]입니다.

 

[엘리]라는 말이 나오면, ”항상 의자에 앉아 있다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엘리]의 무지는 고통 속에서도 괴로워하는 [한나]를 보고,

독한 술에 취한 여인으로 보았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엘리의 권위를 인정하고, 후에 사무엘이 태어났을 때에도,

[엘리] 제사장에게 아들을 보냅니다.

 

15-1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한나가 대답합니다. 내 주여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슬픔이 가득한 여자입니다.

저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제 심정을 쏟아낸 것입니다.

당신의 여종을 나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슬퍼 여기서 기도하고 있을 뿐입니다.“(삼상1:15-16)

 

그런 [한나]에게 엘리 제사장이 17절에서 대답합니다.

평안히 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구한 것을 허락하실 것이오.“(삼상1:17)

 

이런 엘리 제사장의 강복 선언을 듣고, [한나]는 집에 가서 음식을 먹고,

얼굴에 근심을 띠지 않았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얼굴에 근심을 띠지 않았다는 말은 믿음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이런 태도를 보고, [한나]는 그 축복을 믿고,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으로 믿었어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믿고,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이고,

이게 [한나]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 후에, 남편 [엘가나]와 잠자리를 같이 했고, 그 후에 임신을 하여,

여호와께 구해 얻은 아들이라 해서, 그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기에, 가장 어두운 시대에 마지막 사사로서, 그리고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지도자로서 [한나]의 기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비록 영적 무지로, 그의 영향력이 부족한 제사장이지만, [한나]는 엘리 제사장을 원망하지 않고, 그의 축복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한나]훌륭한 믿음입니다.

 

▶ [한나]에게 고통을 주신 뜻은 무엇입니까?

고통으로 [한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그 여인으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시고,

영적인 어머니로 승화시켜 주었어요.

 

[한나]는 개인적인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시대의 역사를 치유하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고통은 개인적인 고통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영적인 암흑기를 이겨내고,

[사무엘]을 탄생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과 같지만, 그 속에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싸우거나, 한탄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려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 새로운 역사가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