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는가? (막10:46-52)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겠습니다.
(1) 첫째로, ”무엇에 집중 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 말씀을 먼저 읽어 보십시오. “그들은 여리고로 갔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성을 떠나려 하는데,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라는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막10:46)
[여리고]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화려한 도시입니다.
그 곳에 [바디메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이므로,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앞을 보지 못 하는 사람들이 구걸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돌보지 않았던 장소입니다.
여기서 더 슬픈 것은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디메오]는 ”불결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니, 그 아들인 [바디매오]는 얼마나 불쌍한 이름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여리고]에 들렸다가 가는 상황입니다.
여기를 자세히 보면, ”눈먼 [바디매오]“라고 기록하지 않고,
”[바디메오]라는 눈 먼 사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요즘은 인공지능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여,
예측은 가능하지만, 예언은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세상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무엇이 내 인생에 장애를 가져 왔는지?“를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바디메오]처럼, 부모가 내 인생의 장애가 되어,
”눈 먼 장님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로 슬픈 현실입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목표입니다.
”눈이 먼 사람“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고, 생존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으며 사는 인생입니다.
이어지는 47절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는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소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으나, 그는 더욱 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막10:46-47)
그날, 거기에는 축제 하는 날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걸인의 입장에서, 구걸하기 아주 좋은 날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오늘, 주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구걸]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오늘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아주 옳은 판단입니다.
인생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지만, [바디메오]는 늘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에게 “눈병을 고침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을 떠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저도 1월 달, 한 달을 [안식 월]로 삼아서, 쉬면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은데,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습니다.
영국 극작가인 [버나드 쇼]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비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이 말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화가 없는데, “우물쭈물 세상 에 휩쓸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인가 선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어떤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러니, 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뭔가 살 길이 생깁니다.
49절 말씀을 읽어보면,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을 불러 오너라”
그러자 그들이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예수께서 너를 부르신다.
그는 겉옷을 던져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갔습니다.”(막10:49-50)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여,“라고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예의를 갖추어 불렀어요.
그가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더니,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듣고, ”그를 데려오라“고 반응했습니다.
주님이 부르니까, 그 인생이 반전됩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즉시 달려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옷]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우니까, 겉옷으로 입고 벗으며, 체온을 조절하는데,
그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께로 갔다“는 것은 너무도 좋았다는 얘기입니다.
”구걸한다.“는 것은 주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있으니, 자신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겠다.”는 [바디매오]의 생각은 올바른 판단입니다.
사람은 “어떤 것에 집중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은 달라집니다.
인생은 역시 ”선택과 집중“입니다.
(2) 두 번째로, “나는 무엇을 원하고, 살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1-52절 말씀에서 중요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네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그러자 그 즉시, 그는 보게 됐고, 예수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막 10:51-52)
주님이 하신 질문은 ”내가 무엇을 너에게 해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니까,
소경은 ”선생님, 제가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권력자인 헤롯 왕은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내가 네게 주겠다.“고 거들먹 거리면서 얘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앞을 못 보는 [바디매오]에게,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소경은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52절 말씀에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라고 말씀하시니까, 소경은 즉시 눈이 떠지고, ”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소경은 눈을 뜬, 이후에,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자와 같이 행동하지 않고,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나세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어, 걷기 시작했습니다.“(행3:6-8)
베드로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걸은 적이 없는 사람에게, ”걸으라“고 명령했고,
그는 걸어서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걸인에게 준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그에게 준 것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기에,
그에게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전해주면서, “걸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고, 정확하게 대답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것은 병자가 "내 힘으로 못 내려갑니다. 물이 동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나는 그 곳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그곳으로 먼저 데려다 주십시오."라고 호소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세 마디 말씀을 합니다.
38년 동안 못 고친 병을 어떻게 예수님의 말 한마디로 고칠 수 있습니까?
그것은 38년 된 이 앉은뱅이는 이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에, “예수를 따라, 길을 떠났다“고 말씀하셨는데,
비전 없는 인생이 비전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서 떠났습니다.
▶ 사람은 언제 절망 합니까?
내 자신의 생각이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더 이상 나갈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절망을 느낍니다.
경기가 나빠서 사업이 실패하거나, 절망에 빠지면, 주님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기에 길에서 방황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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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의 설교를 마쳐야 하는데, 제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이 와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을 때,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앞을 못 보니까,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듯이, 지금부터 우리에게 적용 해 봅시다.
① 대학에 들어가를 원하는 학생은 ”제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② 취업 준비생이면, ”저를 대기업에 입사하게 해 주세요.“
③ 자녀가 없는 가정이면, ”저에게 자식을 낳게 해 주세요.“
④ 병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분들은 ”제 병을 낫게 해 주세요.“
⑤ 가난으로 고생하는 분들은 ”저에게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인생이 너무나 짧은데, ”내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 달라”고 분명히 얘기해야 합니다.
이게 제 인생의 전부이니까, “그걸 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대 기업에 입사하면***,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으면***, 건강이 좋아지면***,
부자가 되면***,그 다음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 소경이 눈을 뜨고 무엇을 했나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고 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서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할 때, 호산나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았을 테고, 그 후 일주일 만에,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 그때, 소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왜, 이런 걸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또 보지 못할 것도 보는게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에, 어려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은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경은 이미 ”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패니 크로스비“라는 여인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주가 되었을 때, 의사의 미숙으로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당시로서는 시력을 잃는 원인이 되어, 일평생 맹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였고, 복음성가를 저술했으며, 출생 직후부터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활동 및 기독교 미션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크로스비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에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예수 나를 위하여, “예수께로 가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영원하신 기업"등으로 한국 찬송가에도 23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맨 처음 본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이기를 기도합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많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지만,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부르는 [믿음]이 있었고,
②둘째, 그는 또 “내가 보기를 원한다.”고 예수님에게 요청했고, 그는 소리를 치면서,
고쳐달라고 요구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③셋째,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가라“고 했는데,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신념”이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최면을 건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정리 : 천영무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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