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04:1-5) 2019.1.6

다이나마이트2 2019. 3. 20. 11:31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04:1-5)                           말씀: 이재훈 목사님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다 맞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스라엘의 엘리사 시대에 사마리아 성을 공격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굶주림이 심하여,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고, 심지어 아이들을 삶아 먹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나병환자들이 모험을 하는데, 이렇게 죽느니, 아람 군대에 항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투항하기로 결정하고 거기로 가보니, 아주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군대는 이미 철수하여 아무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다 떠난 후였습니다.

먹을 것과 값진 물건들은 그대로 버려둔 채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즐거운 밤을 보내며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기쁘지만, 사마리아 성 안에는 기근으로 고생하니,

우리만 여기서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그러니 ”이 소식을 사마리아로 가서 전하자”라고 결정을 합니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두려움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여기서 소식을 전하지 않고, 침묵한다면, 정말 잘못된 일입니다.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이런 나병환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읽으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게는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전 9:16)

 

지금,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이 의무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너무 중요한 일이니까,

"내가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품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절박한 소식”입니다.

 

우리는 선교사에 대한 어떤 요청을 들으면서, 어렵고 가슴 아픈 일들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알리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는 것은 “선교”가 아닙니다.

 

세상에 알리는 것과, “내가 도와 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사사로운 도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위대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절박함”으로 전해야 합니다.

 

▶ 예수님의 일을 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령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안에 매여 있는 사람”이 전합니다.

 

성경에서 아주 유명한 말씀인,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외워 보세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1:8).

 

이 말씀은 “명령”이 아니고, “의무”입니다.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행하기 싫어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거기에는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룩한 절박감”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확신을 데살로니가 전서 1장 5절에서

“이는 우리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단순히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을 위해, 어떤 사람이 됐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살전1:5)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지 않고, 능력과 성령으로 인해, 그 “능력이 전해 졌다“는 말입니다.

 

▶ ”큰 확신 가운데, 전해 졌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흘러넘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이 전파되도록, 흘러 넘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과 같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해에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라고 표어를 정하고,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확신“을 하고서,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런 ”확신“이 나타나는 대목이, 디모데후서 1장 11-12절에서,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해 나를 선포자와 사도와 선생으로 세우셨다. 이로 인해, 내가 다시 이러한 고난을 당하지만,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믿고 있는 분을 알기 때문이며,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 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딤후1:11-12)

 

이 말씀은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이 자식 같은 디모데에게,

죽음을 예상한 사람 같지 않게,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을 보입니다.

 

▶ 이런 바울의 확신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감옥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왜, “바울은 부끄럽지 않다“고 했을까요?

세상이 절망 가운데 있으니까, 구원이 기다려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너무도 절박하기

문에, 복음 전도를 늦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로 황제의 폭정으로 바울은 더 위협을 받습니다.

▶ 그러나 바울이 두려워 한 것은 무엇입니까?

네로의 폭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다가왔기에,

바울의 심정은 더욱 ”절박해 진 것“입니다.

 

네로 황제 당시에도 박해가 있었지만, 로마 황제가 두려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니까, 더” 절박해진“ 까닭이지요.

 

복음 증거에 방해받는, ”바울의 예언“을 들어 보십시오.

디모데후서 4장 3-4절의 말씀입니다.

”때가 오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욕심을 따라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하는 스승들에게 모아들일 것이다. 또 그들은 진리에서 돌이켜, 허황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딤후4:3-4)

 

바로 이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바울은 더 절박한 심정으로, 복음 증거에 앞장을 서게 됩니다.

 

▶ ”종말“에 대한 증거가 뭡니까?

①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② 전쟁에 대한 소식과 소문이 무성할 것이다.

③ 기근과 지진이 더 심해질 것이다.

④ 믿는 자에 대한 핍박이 더 심해 질 것이다.

⑤ 사랑이 점점 더 식어질 것이다.

최근에, 중국과 인도에서 선교사를 추방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식어가는 ”증거“입니다.

 

어느 분의 말에 의하면, 요즘에는 가족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이 2천 만원 이상의 유산이 있으면, 모두 다 싸우고, 소송을 한다고 합니다.

 

이건, ”사랑이 식어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정치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이기심”뿐입니다.

이것이 “자기만을 사랑하는 말세의 징조“입니다.

 

인도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신 선교사님에게,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물으니까, 하는 말씀이,

“희망이 점점 사라진다.“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은, 사차원의 시대로 변하고, 인공지능이 발전을 해도, "세상에는 소망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살아 보려고 하지만, 소망이 없는 민족은 비참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침묵은 죄가 될 수 있으니, 성령 안에서, 말씀이 전파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Duty”(의무)가 아니고, “Delight”(기쁨) 으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말씀 사역”에 참여하는 교회가 되고,

그런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