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욥기42: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설교 제목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입니다.
이 제목은 16세기 수도사인 성 요한이 쓴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는 부패한 수도원을 개혁하려고 노력하였고, 그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개혁을 반대하던 수도사들에 의해, 강제로 납치가 되었고, 결국은 11개월 동안
어두운 독방에 감금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깊은 영적인 체험을 하고,
그 느낌을 책으로 편찬한 제목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고, 거기서 설교제목을 삼았습니다.
이 책에는 “자기가 억울하게 갇혔다”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고,
“영혼의 깊은 밤”을 보내며,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어두운 밤”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더 [친밀한 연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속을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벌어지는 체험이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시간입니다.
그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은 어두운 밤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과, 즐거운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긍정적 사고”로 감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욥]과 같이 “수동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동방의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한 사람만 뽑으라.“고 한다면, [욥]이 뽑힐 만큼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왜 [욥]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를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 [욥]이 받은 고난은 무엇입니까? [욥]은 세 단계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①첫 번째 단계에서, 욥은 하루 만에 자녀와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모든 소유를 상실했습니다.
소와 나귀와 종들은 스바 사람의 공격에 탈취를 당했습니다.
양떼와 종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에 타 죽었습니다.
낙타와 종들은 죽임을 당했고, 그의 자녀들은 집이 무너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고난의 태풍이 욥에게 불어 닥쳤습니다.
욥기 1장 20-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에 욥은 벌떡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 버리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떠날 때도 벌거벗고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여호와께서 가져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1:20~22).
[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이 고난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체념하지도, 운명에 맡기지도 않았고, 억지로 순종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욥]이 당한 고난의 10분의 1만 당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욥]은 역시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믿음의 사람]이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② 두 번째 단계에서, [욥]의 몸에 악성 종기로, 건강을 무너뜨렸습니다.
놀랍게도 [욥]은 그걸 이겨 냈지만, 욥의 아내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여자처럼 말하는군.
그래,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것만 받고 고난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입술로 죄짓지 않았습니다.”(욥2:10).
[욥]은 두 번째 고난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 대한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③ 세 번째로, 이번 시험은 “오랜 기간 동안 압박해오는 고통”을 견뎌야했습니다.
순간적인 고통과 고난은 견딜 수 있지만, 지속적인 압박과 고통은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왔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욥]을 위로하러 세 친구가 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고난이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욥]이 드디어 영혼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경건이 무너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왔지만, 그들은 욥을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세 친구들의 말을 요약하면 [인과응보]이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세 친구들은 ”인과응보 법칙“을 통해, 욥을 압박했습니다.
[욥]은 지지 않고, 동일한 논리로 항변했습니다.
욥이 말 한 구절에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7장 5-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나는 결단코 자네들이 옳다고 말하지 않겠네.
내가 죽을 때까지 나의 온전함을 포기하지 않겠네. 내가 나의 의로움을 굽히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마음이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걸세”(욥27:5-6).
자신은 “온전하다”고 말하니, 결국 세 친구가 욥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엘리후]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보내신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입니다.
세 친구들이 말하지 못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욥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분이고,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은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도 [엘리후]가 말한 메시지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의롭지 못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냐?“고 묻고, 대들고, 항변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심을 믿으면, ”그분이 의롭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욥기]의 ”결론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욥기 42장 2-3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나는 주께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 이루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주님의 뜻을 가린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말하고,
너무 기이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을 내가 내뱉었습니다.”(욥42:2-3)
[욥]은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모든 일을 하시고, 계획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욥]은 무지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대로 이루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는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에 [능동적]으로 삽니다.
[밝은 대낮]에는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수동적]으로 바뀝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이 깨달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1) 첫째로, [욥]은 어두운 밤을 보내면서,
무력한 자기 자신의 [수동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어두움]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도 창조하셨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습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낮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빛을 못 봐도 파괴되지만, 어둠 속에 들어가지 못해도 파괴됩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화려한 네온사인을 보면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두움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낮을 통해, 능동적으로 일하게 하고,
밤을 통해, 하나님을 의존해야 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어두움에 들어가면, 우리는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욥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하나님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42장 5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내가 주에 대해 지금까지 내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보게 됐습니다.”(욥42:5).
욥이 예전과 다르게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물론 욥은 그전에도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욥의 신앙]은 고난을 체험하기 전에는 “귀로 듣는 신앙”이었습니다.
귀로 듣는 신앙에 머무르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은 귀로만 들었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고,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신앙은 부인할 수 없고, 고백도 더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 귀에 머무는 우리의 신앙을
눈으로 직접보고, “체험하는 신앙”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3) 셋째로, [욥]은 영혼의 깊은 밤을 보내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깊은 교만을 발견하고,[자기 의]에 대해, 회개하게 됩니다.
42장 6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욥42:6).
욥의 친구들이 [인과응보의 법칙]을 적용하며, 욥에게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빨리 찾아보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욥은 자신은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욥]의 말은 ”인간적으로 보면, 옳은 말“입니다.
[욥]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그 풍요를 우상으로 삼지 않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죄]가 있다면, 바로 [자기 의], [교만]이 보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하게,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영적 교만“이나 ”자기 의라는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을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욥]이 미워서가 아니라, [욥]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회복시켜주십니다.
▶ [욥]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늘 본문 1절부터 6절에 있는 ”욥의 고백“입니다.
[욥]은 무엇인가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욥]은 마땅히 해야 될 회개를 한 것입니다.
아마도 [욥]은 회복과 축복이 주어지지 않아도,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을 기대하고, 한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복을 주신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 “참된 회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심한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욥]이 겪은 고난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욥]이 회개한 이후, 사탄은 패배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영광 받으시고, [욥]도 고난을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욥은 우리에게 승리의 귀한 표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어둠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을 통해서, 우리 안에 숨어있는 교만과 죄를 드러내고,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어두움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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