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요셉이 잊혀 지다 (창40:16-23) 2019.2.10

다이나마이트2 2019. 3. 22. 11:13

요셉이 잊혀 지다 (창40:16-23)                         말씀: 서현 목사님(동경 온누리교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도 있지만,

어떤 일은 사소한 일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은 매우 사소하게 여깁니다.

그 결과로 타인에게 깊은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왕의 옆에서 시중들던 술 맡은 관헌장과 음식을 공급하는 관헌장이 어떤 이유로 감옥에 들어와서,

요셉은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풀려 나간 다음에, 술 맡은 신하가 요셉을 잊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요셉을 2년이나 더 감옥에 있게 만들고, 역사하십니다.

 

40장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얼마 후 이집트 왕의 술 맡은 신하와 빵 굽는 신하가 그 주인인 이집트 왕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바로 왕은 그의 두 신하에게 진노했습니다.”(창40:1-2)

 

여기서 “얼마 후”라는 말은 “이 일이 다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간수의 책임을 맡은 이후에”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왕의 음식을 담당하는 신하와 술 맡은 신하가 감옥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왕에게 메일 음식을 제공하는 일과 술을 공급하는 일은 아무나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은 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요셉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인연입니까?

왕의 최 측근인 두 사람이 감옥으로 들어오는데, 무엇 때문에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오게 된 것도, 인연입니다.

 

이들은 요셉이 찾아간 것이 아니고, 요셉이 만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은 우연히 요셉이 있는 감옥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여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노예의 신분이고, 죄수인 요셉에게 그들을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인데,

이 두 사람은 감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우연히”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은 갑자기 꿈을 꾸게 되었고,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해 주게 됩니다.

 

4절에서, “경호대장이 요셉에게 명령해서, 두 신하를 시중들게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창40:4)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발견합니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역사가 “사람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역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① 첫째로,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② 둘째로,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우연히”라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먼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하여, 일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생각에는 “우리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혹시 사람이 계획을 할지라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6절 말씀을 읽어 보면, “ 감옥에 갇혀 있는 두 사람은 꿈을 꾸게 되는데,

각자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 내용이 각각 달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요셉이 그들에게 왔을 때, 그들이 침울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창40:5-6)

 

요셉이 만난 두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술 따르는 신하가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그것이 싹이 나지마자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달려 곧 익었다.

나는 왕에게 포도즙을 만들어, 왕의 술잔에 붓고, 그것을 왕에게 드렸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요셉은 그 꿈에 대해, 겸손하게 얘기합니다.

”세 개의 포도나무 가지는 3일을 뜻하고, 지금부터 3일 안에 당신을 석방하고, 직위를 회복할 것이고, 전에 하던 대로 술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14절에 “당신이 모든 일이 잘 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왕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나를 감옥에서 풀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빵 굽던 신하의 꿈은 아주 불길합니다.

"빵을 담은 광주리 3게가 내 머리 위에 있었고, 제일 위에 있는 광주리에는 왕을 위해 만든

여러 가지 구운 음식이 있었으나, 새들이 그것을 먹고 있었다.”고 얘기하니까,

 

그러자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기를 ”그 세 광주리는 3일 안에 왕이 당신을 끌어내어,

당신을 나무에 매달 것이다. 그리고 새들이 당신의 시체를 뜯어 먹을 것이다. “라고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에, 바로 왕의 생일날인데, 모든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고, 두 사람을 끌어내어,

신하들 앞에 세우고, 술 맡은 신하는 사면 해 주고, 빵 굽는 신하는 나무에 매달아 처형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끔찍한 사건 이후에 풀려나서 살아남은,

술 맡은 신하는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창세기 40장은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살아난 술 맡은 신하도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그냥 잊어 버렸어요.

불과 3일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 그걸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금방 잊어버릴 수 있어요.

모두 다 일이 끝나고 나면, ”내 힘으로 여기가지 왔다”고 생각을 해요.

 

▶ 왜, 그럴까요? 그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내가 다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나에 대한 기준“과 ”타인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나에 대한 기준“은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합니다.

 

결국 요셉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에서 2년을 더 보내야 했어요.

그 이유는 술 맡은 신하가 요셉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감옥에서 “언제 나갈지?”를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놓입니다.

 

▶ 이게 무얼 의미합니까?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십시오.

 

요셉이 두 사람을 만났고, 두 사람의 [꿈]을 우연히 해석해 주었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람하고, 그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그 이웃은 잘 돌보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아닙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들에게서 미움을 사서, 여기까지 왔고,

형들은 ”꿈꾸는 자가 온다.“고 요셉을 놀려대며, 쉬쉬했습니다.

 

▶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잊어야 할 것은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혹시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잊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요셉은 잊어 버려도, 하나님은 그를 잊어버리지 않고 일을 하십니다.

요셉은 2년을 더 감옥에 있다가, 2년 후에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하나님이 바로 왕의 [꿈]속에, 개입하셔서,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누구나 [꿈]을 꾸기에, 이것은 겉으로는 ”평범한 사건“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꿈]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왜, 요셉을 감옥에서 2년을 더 있게 하셨을까요?

애굽의 총리의 나이 자격의 기준이 30세이니까, 그 때 요셉의 나이가 28세 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총리가 될 자격을 갖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계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진리는 하나님은 바로 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지 않으시고,

”요셉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요셉은 30세가 되어서야, 이집트 총리가 되었어요.

주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사용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이건, 그냥 재미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건 ”역사적인 사건“이고, 실제로 있었던 “팩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해서,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을 뿐이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길 바랍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