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5일 화요일
30. 성령과 성전 고전3:16, 고전6:19-20 말씀: 이재훈 목사님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말씀이 나옵니다.
▶ 하나님은 창조가 없어도 영광스러운 분인데,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통해, 영광 받으시려고 인간을 창조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했어요.
모든 만물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러나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느끼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 왜 그럴까요?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으니까, 배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더불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셨어요.
그러나 위험이 동반되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가로 막을 수는 없었어요.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원하셨기 때문이지요.
지난주에 말씀드린 “새 언약”에서도 나타났듯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
▶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어떤 모습일까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는 창조 목적에 따라,
① 첫째,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 있습니다.
내 자유의지로 선택하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안에 속해 있습니다.
② 두 번째는 “사람”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③ 세 번째는 영토, 즉 하나님의 영역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 때에 에덴동산이 있었지만, 그 후손으로 하여금 점점 더 하나님 나라를 확장되어 가도록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어린 양의 보혈로 회복시키셨고,
성령이 임하시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육”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주권이 머무는 곳에,
영원토록 사는 존재가 되게 하셨어요.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을 생각하면, 우리의 시간은 이제, 시작도 안 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성경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크고, 위대하여,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 짐을 느낍니다.
스펄 전 목사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있다“고 말씀했어요.
그 간격은 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맥처럼”가로막고 있다.
② ”넓은 바다처럼” 가로 막고 있다.
③ ”깊은 협곡처럼” 갈라져 있다.고 말씀했어요.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으로 착각 있으므로, 회복시켜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능했고,
그렇게 이루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런 간격에 깊은 협곡이 메워지고,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 오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거처로 임하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 그렇게 대표적으로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① 족장 시대의 거처가 ”성막(텐트)과 회막“입니다.
과거에 광야를 지날 때, 늘 옮겨 다니므로, ”임시 텐트“ 같은 것이 성막이고,
② 다윗 시대에 와서, 이제는 영구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성전“입니다.
▶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짓습니까?
① 첫째로,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설계 하셨고, 직접 실행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에게 집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② 두 번째로, 성전을 지을 때도 본인이 자원하고, 즐겁게 짓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성전을 짓겠다.”고 하니까,
나단 선지자는 기도도 하지 않고, “Ok”하고 승낙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 말을 듣고, 책망을 하십니다.
다윗은 백향목으로 멋지게 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타났어요.
▶ 왜 그날 밤에 나타났을까요?
그것은 “왕의 명령”이니까, 그 밤이 지나면, 바로 내일부터 시작 할 테니까,
그걸 막 오시려고, 그날 밤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무엘 하 7장 5-7절을 읽으십시오.“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나를 위해, 내가 있을 집을 지어 주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그날부터 나는 집에 있은 적이 없고, 장막이나 회막을 거쳐.
이리 옮겨 다녔다. 내가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옮겨 가는 곳마다, 내 백성이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누구에게든 왜 내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느냐?”(삼하7:5-7)
이 말씀은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짓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지으라.“고 한 것은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집은, [건물]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예배의 공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장소가 거룩한 곳이 아니고,
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이곳이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축“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머무르는 거처”로, 그런 [공간]을 원하십니다.
중세기의 교회는 천정이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내부공간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윗이 꿈꾸는 집은 호화로운 집이지만, 하나님의 집은 그런 집이 아닙니다.
사무엘 하 7장 11-12절을 읽으십시오.
“내가 사사들을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때와는 같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또 너를
네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직접 너를 위해 왕조를 세울 것을
선포한다. 내 날들이 끝나고,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자손을 일으켜
네 뒤를 잇게 하고, 내가 그의 나라를 든든히 세울 것이다.“(삼하7:11-12)
▶ 하나님이 거 하는 집이 어떤 집입니까?
그건, [건물]이 아니고,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공간,
하나님이 머무는 곳을 말합니다. 이건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 하시며,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 줄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임하시는 처소는 인간의 도움으로 짓는 집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워지는 곳”이라고 거절 하십니다.
내 뒤에 올 “자손에게 짓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집을 지을 사람은 다윗이 아니고,
그 다음에 오는 [솔로몬]인데,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솔로몬]도 아닙니다.
7장 13절을 보면,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집을 세울 것이고,
나는 그 나라의 보좌를 영원히 세워 줄 것이다.“(삼하 07:13)
보이는 집이 아니고,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영원히 거할 집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그 집은 하나님이 꿈꾸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곳은 예수님을 통해서 지어지는 집인데,
그 집은 다윗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서 지어지는 집”을 말합니다.
▶ 그 집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어린양의 피로 구속 받은 받은 자에게, 임하는 성전을 말합니다.
▶ 구약에서 성전이 보여준 것은 어디까지 입니까?
① [바깥 뜰]이고, -------> 우리 몸과 같이 장소이고,
② 제사장 만들어 가는 [성소],
③ 제사장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휘장으로 가려진 [지성소]입니다.
-------> 이곳은 “우리의 영”에 속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성전은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깥 뜰]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우리는 죄에 물들어 있으니까, 성령을 받아드려,
깨끗한 몸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의 전”으로 회복되는 것이
“성령이 충만 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우리 몸이 깨끗해져서,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읽으십시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 성전입니다.”(고전3:16-17)
여기에,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 몸이 성전이 되고,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런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을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이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연결돼,
주 안에서 함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 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엡2:20-22)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성육신하신 [몸]과 그분의 [몸]을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몸]이 ”성전“이니까,
우리 몸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려 한다면, 그때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을 보면,
”여러분 자신도 산돌들처럼,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벧전2:5)
우리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보이는 것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재 하는 곳,
우리 자신의 [몸]이 바로 [성전]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배우며,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깃들어 있다는 복된 진리를 배우고,
우리 몸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장소가 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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