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31. 성령과 직분 고후3:5-8

다이나마이트2 2019. 1. 26. 10:00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31.  성령과 직분   고후3:5-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말씀은 교회 사역자의 자세에 대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이 경험한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 공동체로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하나?“를 알려주고,

바울의 간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서입니다.

많은 서신서가 문제해결을 위한 해설서이고, 교회 안에 문제를 설명하지만,

고린도후서는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여정 속에서 성령을 이겨낼 수 있는가?“를 고백하는

[신앙 고백서]입니다.

특히 고린도후서의 고백은 우리에게 공감이 되고, 동의가 되어, 나에게 말씀 하신 말씀과 같이 여겨집니다.

 

고린도후서 35절에서 6절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문자가 아니라,

영으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도록 하셨습니다.”(고후3:5-6)

 

이 말씀은 고린도후서 전체를 말씀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심각한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이유는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핍박했기 때문에, 그 댓가를 치룬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역사 하는데, 바울에게 성령님의 통로가 어떤 사람인가?“

보여주기 위해서도 그런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공격 중에 하나는 바울이 사도냐?, 사도가 아니냐?“는 공격입니다.

 

, 사람들이 그를 공격했을까요?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고, 3년간 제자 훈련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날에, 다메섹 도상에서,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고백하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도 이방인 이었기에,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방인은 유대 율법 가운데서 지낸 사람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과거 이력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달함에 있어,

필요한 접근이 율법 없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방해자]로 보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게 된 겁니다.

 

또 바울의 건강이 나빠져서, ”육체의 가시(질병)가 있다,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질병을 하나님이 고쳐 주지는 않았어요.

하나님은 바울을 의도적으로 약하게 하심으로, 그가 교만 하지 않게 하시고,

그런 경험담의 고백이 고린도후서로 쓰여 진 것입니다.

 

7- 8절을 읽으십시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돌에 새긴 문자의 직분도 영광스러워 모세 얼굴에 나타난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다면,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고후3:7-8)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자신은 [영의 직분]을 받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영의 직분]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6절에 나온 새 언약의 일꾼과 같은 의미입니다.

 

[영의 직분]이나, [새 언약의 일꾼]

바울이 사역자로써 자신이 하는 일을 규정한 단어입니다.

 

오늘 날, 교회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사역자로 부름 받은 일꾼이라는 사실과

자기 자신이 영의 직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취미나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하나가 되면, 안 됩니다.

[동호회]와 같은 문화와 그런 영향력을 가지고, 하나가 되면,

교회는 금방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움직인다면,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영적 운동력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생명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에서 보듯이, 교회를 통해서 십자가의 보혈로 부활의 생명을 맛보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사명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인교회에서 다툼이 있었고, 싸움도 많았어요.

또 육두문자가 오고 가고, 의자가 날아가는 경험도 보았어요.

 

모두 다 직분을 받은 분들인데, 그런 추태가 왜 일어납니까?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일이지만, 바로 새 언약의 축복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지요.

 

제가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니까,

몇몇 분들은 저는 아직 직분을 받지 않았는데요?“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새벽에 나오는 분들은 모두 다 직분을 받은 줄로 압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너무도 중요한 말입니다.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변화된 우리가, 죄를 몰랐다가 죄를 알게 되고,

그 죄를 씻음 받고, 정결케 되었어요.

 

[옛 율법]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사랑의 능력이 없어, 그걸 모르고 지내다가,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고,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언약의 축복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변화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런 사람이 새 언약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는 것이다라는 고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경험을 했기에, 로마서를 기록하고,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를 기록 한 것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어떤 마음이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35절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다.“(고후3:5)

 

자신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바울의 고백은

내 스스로는 자격이 얻을 수 없다는 말이고, 그 자격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고백이 겸손한 말 같지만,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자격지심입니다.

 

[자격지심]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고,

자격지심으로 인해 분노가 일어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내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피하게 되고, 율법적으로 대하게 되고,

권위적으로 대하고, 사람들을 겉으로만, 형식적으로 대합니다.

 

자격지심 있는 분은 신분 사회를 강조하고, [타이틀]을 중요시 하므로,

그런 사람은 성령 안에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령공동체]는 그런 자격지심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바울의 자격을 시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서로 같이 싸우지 않았습니다.

내 스스로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나는 분노할 것도 없다는 당당한 태도이지요.

나는 자격은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세워 주셨다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신 분들은 교회에서 자격을 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겸손하게 행동하십시오.

 

아직 양육 과정에 계신 분들은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 분들은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니, 그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러나 그런 분들도 자격은 이미 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계시니, [영의 직분]을 이미 받으셨고, [새 언약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열심히 양육을 받으십시오.

 

바울은 유대인의 혈통이고, 학식도 많고, 신분도 높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그를 낮아지게 하셨고, 질병 속에 그냥 놔두시고,

다른 한 가지를 더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바울을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고, 질병에 시달리게 하셨어요

그는 나를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안겨 주었다라고 고백했고,

[새 언약의 일꾼 됨]을 잊지 않고, 계속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교만한 자가 아닌, 겸손한 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영의 직분]을 받은 자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세우기 위해,

그렇게 어려움을 주고,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29-10절을 읽으십시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왜냐하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약한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자랑 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모욕과 공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때, 그때 곧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12:9-10)

 

내가 약할 때에 강하기 때문이라는 고백을 들으면서, 저는 하용조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왜냐하면, 하 목사님이 많이 아플 때마다, 온누리교회가 한 단계씩 점프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 목사님이 아플 때마다 사역이 하나씩 증가하였어요.

러브 소나타 와 CGN TV는 너무나 큰 프로젝트인데, 하 목사님이 아플 때에 그 때에, 이루어졌어요.


사람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으니까, 중요하지 않은 일을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하 목사님은 그렇게 아프면서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어요.

 

어느 날, 하 목사님이 저에게 물었어요.

온누리교회가 잘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으시더니,

내가 아파서, 그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에서 나온 사역은 금방 무너지지만, 꼭 해야 하는 사역,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역이 이 [비전]입니다.

 

[이천만 비전]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0,000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자는 비전도,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사역입니까?

그 당시에는 설마라고 의심하던 사역이 지금은 이루어 졌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을 투석하는 분이, 일본 러브 소나타 와 CGN TV에 도전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전이 그를 통해, 그렇게 가능하도록 사용 하신 것입니다.

 

다른 교회가 할 수 없는 일을,

오직 온누리교회로 하여금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새 언약의 기쁨으로 살아가는가?”를 생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내 스스로 성취하는 자격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자격으로 일해야 합니다.

 

남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영의 직분]을 받은 사람으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영원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 자신을 의지하는 [자격지심]이 아니고, 교회 직분을 넘어서서,

방망이처럼 나를 부수고, 예리한 칼처럼 나를 찍어서

나를 [영의 직분]에 맞게,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땅에 속한 영광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영광을 추구하는 사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