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29. 성령과 자유 고전6:17, 눅4:14-21

다이나마이트2 2019. 1. 25. 21:32

2019년 1월 14일 월요일

29.  성령과 자유  고전6:17, 4:14-21            말씀: 이재훈 목사님

 

누군가에게서 나에게 선물이 전해 졌는데, 나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기다려지겠습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만일 나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셨는데, 나의 삶 속에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죽음 너머에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는데, 실제가 되지 못한다면, 그곳은 진정한 천국이 아닙니다.

 

나의 현재 상황 속에서, 그런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한 구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분명한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고, 그렇게 안내하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듯이,

그분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속에 잠잠히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내가 주인 된 삶이 아니고, [성령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맘대로가 아니고, 성령님이 마음대로 나를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육신의 소욕을 띄고 살았지만,

이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전의 문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점점 흘러 넘쳐서,

나중에는 우리가 헤엄치는 상태로, 충만해져서, 그 속에 잠겨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수영을 하듯이, “성령의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약속하신 축복이 바로 성령 안에서 자유 함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자유 함이고,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라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 선택은 단순한 인생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 안에서 느끼는 이런 [자유 함]을 느끼고 사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61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주와 연합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주와 하나가 됩니다.“(고전6:17)

 

여기서 자유는 무슨 자유입니까?

그것은 능력으로 느끼게 하는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삶 속에서 누리고,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그런 [자유 함]이 있습니다.

 

어떤 자유입니까?

내가 무언가 할 때, 내가 그 무엇을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런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나는 [자유 함]이 없는 것이고, 그것에 매여,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포로로 잡고 있는 것들은 멈출 수 있느냐?“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에 대해 집착 하는 것을 끊을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은 돈에 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 함]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이끄는 대로 단순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주권적으로 인도하는 성령님의 결정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자유로운 결정을 가지신 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아시아로 가고자 했지만, 유럽 대륙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려진 결정이니까, 축복된 결정입니다.

 

바울에게 큰 축복은 예루살렘에서 고난 속에 복음을 전하고,

거기서 순교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면, 그건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온다면, 그건 가장 큰 축복이고, 그 속에 ”[자유 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 중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그만큼 얽매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신 대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다 마쳤으니까,

떳떳하게 내가 자유하게 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이 있는데,

나도 임무를 다 했으니,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 못 하시는 분은 성령에 따라 살지 못 하신 분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그런 [자유 함]이 있으니까,

여러분에게도 그런 자유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유에는 어떤 자유가 있습니까?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분리 시켰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우리는 그 죄에 매여, 죄를 짊어지고 살기 때문에, 그 죄를 끊어야 합니다.

 

로마서 81-2 절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을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8:1-2)

 

여기서 [해방]이 자유를 말합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죄를 분리시켰는데, 어떻게 죄에 매여 있어야 합니까?

 

후반부에 나오는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체험을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만약에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의 법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이 아니고, “성령 안에 사는 인생입니다.

 

두 번째로, “거짓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것은 거짓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찌꺼기가 [거짓]인데, 그 거짓 때문에, 우리는 짓눌려 사는 겁니다.

 

거짓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기도 하고, 친구를 통해 오기도 합니다.

그 거짓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자신을 증오케 하여, 분열시킵니다.

 

이 모든 게 거짓의 역사이니까, 죄를 없애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진리의 영으로 채워서, 거짓을 멀리하게 되니까,

성령의 능력 가운데, [자유 함]을 누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상처로부터 자유입니다.

 

상처는 죄와 거짓의 찌꺼기입니다.

상처는 우리의 감정의 찌꺼기입니다.

 

이 상처는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여, 그 옛날에 절망감에 싸여,

우리를 짓눌려 지내게 합니다. 그 감정의 상처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과거는 두려워 도망을 했지만, 이제는 성령님과 함께 지내야,

그 상처가 치유되고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체험이 아니고, 매 순간 순간에 성령님의 따라 사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으니까, 성령님을 의지해서 끊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를 죄로 규정 하는 것이 율법이니, 그 율법에서부터 [자유 함]을 느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 함을 느끼는 사람은 고귀한 생명을 지키고,

죽음이 왔을 때에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천국환송 예배 때,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가 잠자는 시간입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내 힘을 빼고, ”수동태로 들어가는 것이 잠자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잠을 자고 나야, 기운이 생기고, 힘을 얻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희년]자유를 선포케 하는 제도입니다.

레위기 2510절을 읽으십시오.

너희는 50년이 되는 해를 거룩하게 하고,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것이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소유지로 돌아가고,

너희 각 사람은 각자의 동족에게로 돌아가라.(25:10)

 

[희년]에는 3가지 자유가 선포됩니다.

첫째, 묶여 있던 노예가 해방되고,

둘째, 모든 부채()에서 탕감 받는 자유를 얻고,

셋째, ”죄의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웃으개 소리로, 링컨의 노예제도가 폐지된 날, ”닭들이 수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노예 시절에 새벽마다 닭들의 울음소리가 종들을 깨웠기 때문에,

그게 싫어 싫어서, ”닭을 많이 잡아먹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는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하게 됩니다.

 

무엇으로 부터의 자유가 그렇게 됐습니까?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로, 창조의 목적과 질서로부터 자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새는 하늘을 날아야하고,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밖으로 나오면, 그때는 사시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된 질서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진리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이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이 있듯이,

창조 질서대로 순종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사랑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갈라디아서 513- 14절을 읽으십시오.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를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한마디 말씀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5:13-14)

 

우리는 죄에 종이 아니라,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자유는 사탄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하여서, 매여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해야, 진짜 [자유 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사람이 진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자유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창조 질서대로, 그런 진리 안에서 살기 바랍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 함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런 자유를 마음껏 성령 안에서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