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28. 성령과 회복 에스겔 47:1-12

다이나마이트2 2019. 1. 24. 22:07

2019년 1월 12일 토요일

28.  성령과 회복  에스겔 47: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구원]회복을 위한 여정입니다.

과거의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지만,

앞으로 우리의 삶은 더 영광스럽게 변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구원받은 자로 영광스럽게, 구원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에게 보장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게 아니고,

완전한 확신으로 우리 마음속에 품고,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회복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을 한자로, 칭의, 성화, 영화로 말합니다.

 

[구원]은 믿음을 향해가는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은것이고,

거룩하게 되는 것도, 영광스럽게 되는 것도, 오직 [믿음]+에서 나옵니다.

 

오직 [믿음]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나의 결심과 종교생활은 [믿음의 삶]이 아니고,

[믿음]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내 생각으로는 안 되니까, 밖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경험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경험이 내 안에서 내가 받아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오직, 받아드렸을 뿐인데, 내가 거룩하게 변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은혜]이고, 내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분명히 나의 선택인 것 같은데. 나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선택이 두렵지 않은 것은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짓된 영혼이 작용하여, 주님이 한 것을 자기가 선택한 것으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확실한지를 알려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주님이 선택한 일인지, 자신이 선택한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이 선택한 일이라면, 거기에 확실한 회복이 일어나고,

더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서둘러 속단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확실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회복]이 일어나는 것은 구원의 여정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성육신하시므로,

십자가를 지는 희생이 아니라면, 우리의 용서는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아담이 정녕, 죽으리라.“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그것이 아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 결국은 인간이 죽는 것입니다.

 

그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니까, 사탄은 그걸 이용하여 개입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 그 자체를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유교에서는 죽음을 부인하여,

죽은 분을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은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 행위가 죽음을 인정하는 게 아닙니다.

 

또 유교에서는 3년간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지어놓고, 거기서 살았어요.

마음에 위로는 될지 모르지만, 소용없는 짓입니다.

 

성경에서 정녕 죽으리라했으니, 사람이 죽는 것이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기독교 세계관이니, 그게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심어주는 분이 성령님이고,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의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제에 이어, 성령 안에서 이루는 일들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정확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에스겔 47장에서 본 환상은, 36장에서 새 언약(= 새 마음)을 주신 이후에,

37장에서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새 마음을 받은 것은 회복되는 모습을 통해 살아난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그런 [부활 사건]은 언젠가 이루어 질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령의 생기가 부어지면, “살아난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마른 뼈에도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면, 확실히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주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또 다른 장면에서 회복되는 환상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환상은 사람들의 회복이지만, 오늘의 환상은 인간뿐만 아니고,

전 우주적인 회복의 비전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에덴에도 동산이 나오지만, 계시록에도 동산이 나와요.

요한 계시록 221-5절에 생명수의 흐르는 강이 나오는데,

그 동산이 에덴과의 차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 계시록에는 생명나무가 없을까요?

에덴 시절에는 시험이 필요했고, 계시록에 와서는 시험이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때는 하나님과 관계가 필요할 때이니까, 시험이 필요했기에,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었지만,

그러나 계시록에 와서는 시험이 없으니까, 실패도 없고,

밤이 없어서 영원한 동산으로 회복되는 꿈의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에스겔 시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험하지만,

그건 악이 만연한 역사의 밑바닥을 보여 주는 것이고,

계시록의 환상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강물로 보여 줍니다.

 

환상의 초점은 흐르는 강물이고,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생수의 강이라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그 근원은 어린 양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부터 시작되고,

[십자가]는 어린 양으로부터 성령이 흐르는 강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걸 원하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성령 충만함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471절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를 다시 성전 입구로 데려갔는데, 성전 문턱 아래로부터 물이 나와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성전이 동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은 성전 오른쪽 아래 재단의 남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47: 1)

 

생명수의 시작은 성전 문턱 아래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거기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입니다.

 

이 생명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첫 번째로, 성령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입니다.

 

흐르는 물은 살아있는 물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고여 있는 곳에는 없습니다.

 

이기심이 가득 찬 사람은 내가 내 안에 갇혀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내 안에 사로잡혀 있으면, 성령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입니까?

[성령님]은 흐르는 곳에 계십니다.

아무리 좋은 [사랑]도 내 안에 갇혀 있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사랑을 흘려보내고, 사랑이 흐르고 있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의 강물도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고, 그 흐르는 과정에서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곳에 있어야 합니까?

지대가 낮은 곳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낮은 곳을 말합니다.

 

내 마음이 작고, 내 마음이 낮고, “겸손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비우고, 밑바닥 같이 낮은 마음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2) 두 번째로, 성령의 강은 점점 깊어지는 강물입니다.

 

오늘 말씀에 천 규빗이 나오는데, 미터로 환산하면, 500미터를 말합니다.

성령을 강물의 깊이와 대조하여, 성령이 부족한 사람은 강물의 깊이가 발바닥이거나,

발목까지 찬 사람을 가리키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물이 점점 더 깊어져서 수영할 정도로

강물이 흘러넘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더 구체적으로 물의 깊이의 정도가 얼마나 깊습니까?

성령이 처음에는 발바닥이 닿을 정도로, 물이 바닥에 깔린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우리가 처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초 신자를 말합니다.

이런 분은 교회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발목까지 찬 사람인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나오고는 사람에 해당합니다.

발목까지 물이 차면, 물장구치고, 아이들이 놀기에 딱 좋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사고가 많이 납니다.

이런 분은 성령을 알기는 한데, 그 주인이 성령님이 아니고, 자기 자신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이 무룹 정도 되면, 순 예배에 잠긴 분입니다.

이런 분은 어느 정도 성령이 들어갔으니까, 순 예배는 참석하지만, 가끔은 자기 맘대로, 순 예배를 빼먹을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갈려고 하는데, 순장이 잡으면그냥 가지도 못해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단계이지요.

그러나 아주 깊은 성령 충만은 잘 알지 못해요.

 

다음 단계는 물이 허리까지이르면, 이제는 몸이 맘대로 안 움직여요.

40일 새벽기도에 끌려 나오는 분이고, 새벽기도에 안가려니,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아깝기도 하여, 안 갈수도 없는 분입니다.

 

직분도 받았고, 은혜 속에 잠기다가 몸을 뺄 수도 없어요.

이런 분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의 방법은 얕은 물가로 가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로, 이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수영할 정도의 깊은 물에 가서,

아주 자유롭게 수영을 배우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요.

 

이 때 부터 본격적인 믿음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수영을 하시는 분은 제 말에 이게 성령 충만이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영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먼저 물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생각을 버리세요.

 

물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몸이 경직되고, 자꾸 힘이 들어가요.

자기 힘으로 뜨려고 하니까, 맘대로 안 되고, 힘들어 해요.

 

[수영의 원리]는 몸을 물에 맡기고, 물의 부력을 이용해야 해요.

나의 의지로 뜨는 게 아니고, 원리에 따라 가야 해요.

 

성령의 인도하심은 성령에게 내어 맡기고, 그냥 따라가야 해요.

그래서 믿음의 절정은 성령께 맡기고 가는 사람이에요.

 

[성령 충만]한 사람은, 100% 수동적인 자세로 따라가야 해요.

[성령 충만]은 헤엄칠 정도의 깊은 물에 들어가,

자기 맘대로, 자유자제로 수영을 하는 것과 같아요.

 

(3) 세 번째로, 성령은 살리는 물이고, 회복시키는 물입니다.

 

오늘 말씀인 8-9절을 읽으십시오.

그가 내게 말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아라바로 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렀을 때, 바닷물이 살아나는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 마다 떼 지어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살 것이고,

물고기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 물이 그곳으로 가서, 바닷물이 살아나게 되기 때문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 것이다.”(47:8-9)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난다.

이런 물이 살리는 물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갖가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강둑을 따라 양쪽으로 자랄 것이다.

그 나뭇잎이 시들지 않을 것이고, 그 열매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달마다 열매가 열릴 것이다.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열매는 음식이 되고, 그 잎사귀들은 약이 될 것이다.(47:12)

 

성령이 임하면, 나타나는 치유와 회복의 현상입니다.

강에서 가장 위대하고, 좋은 강은 세상을 살리는 강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흐르는 강은 복음과 함께,

온 세상으로 흐르고 있는 강입니다.

이런생수 같은 강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렇게 흐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에덴에서 흐르는 강이 계시록 22장의 생명수의 강물이 흐르는

곳 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미리 경험하게 해 줍니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온누리교회에 이런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해 달라는 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기 바랍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강물이 발바닥에서 흐르게 하지 말고, 발목까지 차게 하시고, 무룹까지 차올랐다면,

허리에서 멈추지 말고, 수영을 맘대로 할 수 있게, 성령 충만하게 채워 주소서.

 

내 마음의 성령 충만은 어느 정도입니까?

성령이 발바닥에 머물고 있습니까?

발목에서 머물지 않게 하고,

무룹 까지 물이 차오르게 하소서

나의 성령이 허리 까지 찼습니까?

이제는 내 머리를 넘어, 수영할 정도로 물이 흘러 넘쳐서,

나에게 성령 충만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흐르는 강물이 내 마음에 차고도 넘쳐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하고,

나로 인해, 온 세상이 밝게 밝아지도록,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