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0일 목요일
26. 성령과 새 마음(3) 예레미야 32:40-4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이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님의 기록도 우리가 믿어야 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두 분이 별개의 사역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 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구원 받은 자를 위한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므로,
두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누려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게 하여,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오늘은 “성령과 새 마음”의 세 번째 시간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는 [새 마음]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이 [새 언약]이고,
그 [새 언약]의 핵심이 “성령님의 오심과 역사하심“입니다.
이것은 [언약]이라는 말씀으로, 새로운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자유와 특권이 [언약]인 것은 하나의 금지명령 속에서
”이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한 단어 속에,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여기서 ”죽으리라“고 한 것은 ”생명이 있다“는 말이고,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간의 특권을 누리도록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놓이게 된 셈입니다.
▶ 그때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우리에게도 적용됩니까?
그것은 아담이 우리 인류의 조상이며, 실제로 우리 육체의 조상입니다.
축구에서 국가대표가 골을 넣으면, 우리 모두가 환호하는 것은 우리 대표가 승리했기 때문에,
“언약의 공동체”가 같이 승리한 것으로 간주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면, 그 나라 전체가 금메달을 딴 것과 같이, 함께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블레셋 진영이 모두 손을 들었듯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죽음]이라는 것, “정녕 죽으리라”는 그 죽음의 실체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고,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과 교제가 끊겼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많은 개와 고양이가 있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동물세계가 인간 세계의 일들에 관심이 없고, 영적인 면에서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세계와도 무감각한 존재이니,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살아있음으로,
하나님에게 ”반응하는 존재“이고,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인간을 고급스럽게 창조하였으니, 상위에 있는 존재이고,
하위에 있는 존재를 다스리고, 간섭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피조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동네 입구에 있는 큰 나무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동물적인 존재로 추락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동물도 어느 정도 생각이 있어요. 돼지도 어느 정도 먹으면, 더 이상 안 먹는데,
인간은 목구멍까지 먹어야 끝나요. 그러니 인간이 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면, 안 되겠지요.
우리를 죽게 만든 죄를 다시 회복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가능해 집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는 분이 ”성령님“이고,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가 죄로 인해 벌어졌으니,
그 죄를 끊어주고, 회복시키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런 죄를 끊어주려 오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역할을 담당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인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닮아가려는 ”회복“이 일어나야 하고,
그렇게 구원받은 자가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 ”새 언약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죄를 이기게 하고,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런 축복은 어떻게 받습니까?
우리가 결단하고, ”우리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가 다시 살아나려면, 확신 할 수 있는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이 ”은혜“이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의지와 결단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고,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바라는 대상을 바라볼 때에, [믿음]이 생겨요.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니까,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서,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고, 나의 의지와 나의 결단으로는 절대로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계속 읽다보면 [믿음]이 생겨요.
”잘못된 믿음, 헛된 믿음“이 생기는 것을 ”이단에 빠졌다”고 얘기해요.
믿음의 씨앗을 자꾸 자라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그런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같이 우리가 믿는 거예요.
▶ [새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① 부활의 새 생명으로, 내 안에 생성된 하나님의 성향과 하나님의 욕구를 말합니다.
② 죄 가운데 있던 이 모든 성향들을 끊어내시고,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심으로,
새 생명으로부터 형성된 것이 [새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반응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새 마음]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새 마음]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강력한 욕구가 생기고,
그래서 죠지 뮬러 처럼, ”헌신의 표준이 더 높아집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 같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은 생명이 없으니까, 율법주의가 되고,
종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참된 진리 가운데 생명을 누리고,
참된 진리 가운데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종교]라고 하지 않고, “관계“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무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내 마음이 원하는 것으로 변했어요.
예전에는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이 명령이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성령님이 [새 마음]을 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예레미야 24장 7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나를 아는 마음을 주어,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할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내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렘 24:07)
그들에게 아는 마음을 줄 것이고,
온전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과거에는 죄 가운데 물들어 있었으나, “영적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런 죄를 이기려면, 죄를 없애고,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체험을 가리켜, “성령체험“이라고 하고, ”성령의 인치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도 합니다.
▶ 내가 “성령을 받았는지?“를 알려면, 어떻게 압니까?
자기 자신이 ”성령 충만“하면, 성령을 받은 겁니다.
그러나 ”내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나, ”만약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가 헷갈리면,
그건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런 변화를 체험한 사람을 “두 번째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인 성장“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과, 장성한 분량을 가진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요한 1서에는 ”영적인 아이“와 ”장성한 아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영적인 아이“도 자라나면, ”장성한 아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건 우리가 구별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구별해요.
죠지 뮬러는 사회사업가 이전에, ”성령의 사람”이고, “기도의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90세에 간증하기를 “나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게 되었고, 그 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나는 성경은 조금 읽었으나, 다른 책은 더 많이 보았어요.
나는 하나님이 보여 주신 계시를 예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그걸 경험한 사람으로, 너무도 행복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나고 보니, ”나에게 성령님이 함께 했구나.“라는 걸 느끼고, 나 자신도 놀랬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 헌신의 표준이 더 높아졌다.“고 고백합니다.
저도 설교준비를 하다보면, 저 자신에게 놀랄 때가 많아요.
누구는 ”피곤하시지요?“라고 묻는데, 저는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본문의 결론은 우리에게 온전한 마음의 축복으로, [새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지요.
[새 언약] 안에는 예수님이 미리 대가를 지불하셨기에,
우리는 ”[새 언약]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1장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온갖 시험을 당해 잠시 근심하게 됐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당하는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해,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벧전1:6-7)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했지만, 그를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성령 체험을 한 사람은 자신은 눈으로 보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예수를 사랑한다.“는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걸 보고, ”베드로가 놀랬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사람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과거는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 죄가 되었지만,
이제는 ”성령의 법”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으로, 변했어요.
그게 “성령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 15:05)
한 마디로, 우리가 [새 마음]을 받았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을 떠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 나타나기 바랍니다.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 성령과 회복 에스겔 47:1-12 (0) | 2019.01.24 |
---|---|
27. 성령과 생기. 에스겔37:1-14 (0) | 2019.01.24 |
25. 성령과 새 마음(2)/ 에스겔 36:22-26 (0) | 2019.01.23 |
24. 성령과 새 마음(1) 예레미야 31:31-34 (0) | 2019.01.22 |
23. 성령의 치유와 회복 열왕기하5:9-14 (0) | 2019.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