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24. 성령과 새 마음(1) 예레미야 31:31-34

다이나마이트2 2019. 1. 22. 22:14

2019년 1월 8일 화요일


24.  성령과 새 마음(1) 예레미야 31:31-3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성령님이 오셨어요.

그 성령님은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성령님은 곧,“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실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보이지 않으니까,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시기에,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하셨지만, 사도행전 이후에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역사를 통해 전해지고, 그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의 영향력을 이기는 힘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을 주십니다.

 

물론, “죄의 용서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힘은 다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실제로 예수 믿고 용서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그건 이미 이루어 졌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신 사건이 성령님이 오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작년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40일을 보냈다면, 금년에는 그 후에 성령님 사건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사시면서, 행적을 보여 주셨지만,

성령님은 []으로, 우리에게 열매 맺도록, 영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성령님이 행하는 일들을 새 마음이라는 주제 가지고,

오늘과 내일, 2일에 걸쳐서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번 기회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새 언약의 축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

 

예레미야 3131절을 읽으십시오.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을 날이 오고 있다.“(31:31)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맺을 날이 오고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일하고, 죽은 날이고, 성령님이 오셔서 일 할 날을 말합니다.

 

여기서 [새 언약]은 무슨 말입니까?

혹시, 성도님 중에서 [새 언약], “그런 말이 있었나?“라고

의문을 가지신 분은 우리가 매월 드리는 성찬 때, 주무신 분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새 언약]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창조주인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언약을 맺은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속]을 지키고, 또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들 끼리 식사하자고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약속]보다, 더 중요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사람끼리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서로 믿지 못하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계약서]를 쓰고, 서로 도장을 찍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약]을 어길 때에는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가 언약한대로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그 굴레에 묶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비결은 그 [언약]을 붙잡으면 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언약]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언약]을 발견하고, [언약]을 지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통로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히브리어로, “베리트라고 하는데,

사람끼리 흔히 하는 [약속], 이 약속은 변경 가능한 약속입니다.

그 다음이 사업상의 약속으로 [계약]이라고 합니다. 이걸 어기면 처벌받는 약속입니다.

이 보다 더 높은 차원이 [언약]입니다. 이게 [베리트]입니다.

그 당시에 하는 [언약]은 생명을 걸고 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내가 스스로 믿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언약을 맺는다. 는 것을언약을 어기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고,

또 그렇게 [모세]를 찾았고, [다윗]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 모든 언약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두 단계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는, [옛 언약]이고,

둘째는,,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혜의 언약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받아드릴 때 까지,

두 단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아주 절실해야, 주는 은혜가 은혜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받는 자가 필요하지도 않는데, 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필요한 사람, 절박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 모세의 율법이고,

그것이 나중에 구원의 율법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언약]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언약에는, [행위 언약]입니다.

[행위 언약]"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창세기에는 [행위 언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아담과 맺은 언약은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모두 다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더라도, “그것을 먹지 말라[금지 명령]을 주셨어요.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최초의 언약입니다.

 

먹으면 안 되는 것인데, 먹는 것 자체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행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행위]로 언약을 깨뜨렸어요.

 

두 번째 언약에는, “은혜의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내 버려 둘 수 없어서, “은혜의 언약을 주셨어요.

 

인간의 [행위]로 지킬 수 없는 것들을 회복을 시켜 주시고, 은총을 주신 것이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그리고 다윗과 언약을 차례로 맺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는데, 그것이 은혜의 언약입니다.

 

여러분, [언약][약속]과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약속]promiss이고,

하나님이 하는 [언약]covenant입니다.

 

[언약][계약]이나 [협정]으로,

서로의 [권리][의무]를 정하고, 상호 협조할 것을 약속하는 [행위]입니다.

 

[언약]은 고대 사회에서 두 당사자가 그것을 깨뜨리는 자는

동물이 죽는 것과 같이, 죽는다.” 는 의미이니까, [생명을 담보]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언약]을 지키기 위해, 이와 같이 피로 맺은 언약이다.”라는 것을 표시하였고,

이는 [죽음]을 전제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화된 사건이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해서 민족을 이루었는데,

그 후 [다윗]을 통해 왕국을 이루었고,

또 다시 [다윗]이 몰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가운데 있을 때가 예레미야] 시대입니다.

[새 언약][옛 언약]이 부족해서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옛 언약]은 옛 언약대로, 그것을 먼저 주어진 약속이고,

이제는 새로운 단계의 언약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새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역사는 곧 인간 스스로는 언약을 지킬 수 없으니까,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새 언약]을 주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 상태에서 [새 언약]이 나왔어요.

나라가 망하면, 개인도 망가져요. 자기 자신도 망해요.

 

이스라엘 전체가 망했는데, 하나님은 그 때에 [새 언약]을 맺자고 하십니다.

, 그랬을까요? 너희에게 희망이 없으니까,

인간이 의로워 지지 않으니까,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율법적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성찬 때, 주무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이 피는 새 언약의 피다는 말을 건성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 안에는 죄를 이길 능력이 없어요.

[]는 아무리 우리가 공을 들여도, 죄가 사라질 수 없어요.

 

죄는 사람과 격리시켜야 없어져요. 죄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다 잡아 먹어요.

우리는 그 죄를 교육시키면, 죄가 없어 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죄는 절대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단호히 끊어내서 없애야 해요.

 

죄는 사람과 같이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단호하게 죽여야 해요.

죄는 우리의 힘으로 이기지 못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그 죄를 끊어 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을 잘 모르니까, 우리가 헷갈려 하는 거예요.

 

이 죄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니까, 내 안에 없어진 거예요.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새 언약]이 맺어졌고,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이 3133-34절에 나옵니다.

 

예레미야 3133-34절을 읽으십시오.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백성들과 맺을 [새로운 언약]이다.

내가 내 율법을 그들 속에 새기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형제나 이웃에게 나를 알도록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31:33-34)

 

[새 언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율법]은 돌에 새겼으므로, 이것은 듣고 보라는 뜻이었는데,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여 듣고 보고 순종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니까,

[옛 언약] 보다 새로운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고치기 위해서 [새 언약]을 주셨어요.

 

[새 언약]생명의 법으로 기록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새 언약]을 마음으로 새기십시오.

 

여기서마음에 율법을 기록했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새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셨고,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게 만들었어요.

그것은 뻔뻔스러운 것이 아니고, 기억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안심해도 좋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셔서 새 마음을 주셨어요.

 

새 마음새 언약이오니, 그 언약에 따라서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우리가 거룩해 졌으니,

성령님이 내 마음에 오심을 기뻐하고, 나는 지금부터 성령의 법에 따라 살겠습니다.

 

새 언약의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떤 축복으로 이루게 했는가?“

내일 새벽에, ”성령과 새 마음(2)“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