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15. 바람처럼, 불처럼/ 행2:1-6

다이나마이트2 2018. 12. 28. 10:11

2018년 12월 27일 목요일


15.  바람처럼, 불처럼/ 행2: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요즘 같은 시대에도 성령 충만이 가능합니까?“ 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가능합니다.

 

우리가 훌륭한 학자가 되려고 꿈꾼다고 학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탁월한 예술가가 되려고 해도  쉽게 될 수 없습니다.

또 위대한 스포츠 선수를 꿈꾼다고  그리 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만큼 원하는 만큼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성령 충만해 지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세익스피어의 영이 들어오면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있고,

베토벤의 영이 들어오면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쉽게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면 가능해 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성령에 충만해 지려는 마음을 품으면  그게 가능한 일이니 그런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 지려면  먼저 오해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때로는 이런 말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광신도적인 모습때문에,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령 충만]을 초대교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굳게 믿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경 66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는 역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분도 계십니다.

 

[성령]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신약에 강력한 은사가 나타난 것은 무엇이며,

그런 것은 모두 다 뻬고, 우리는 뭘 믿고 살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성령이 완성되기 위해 일시적으로 부어졌다,“는 것은 그것은 사실 하나의 가설입니다.

 

어제, [은사]에 대하여 배웠는데,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로부터,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 통역하는 은사 등등

 

이런 과거의 일들이 성령의 역사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요즘 같이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복음 전도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선교 운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우리가 믿고, 체험한 일이고,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중국을 선교한 윌리엄 케리는 오랜 시간 동안에 이런 믿음이 있었지만

그 후에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하나님이 온누리교회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 난 곳이 [교회]였기에, 세상은 교회를 주목했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우리의 영]인 하나님을 받아드리 게 된 것입니다.

 

세상 어떤 지식으로도 예수를 믿게 할 수 는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어떤 유식한 말로도, 예수를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 당시에 현실의 역사를 받아드린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성령을 믿고, 성령 안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날, 새벽에, 제자들에게 체험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능력입니다.

그들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함께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능력]이란 사랑할 수 있는 힘, 죄를 끊을 수 있는 힘, 육신의 습관을 버릴 수 있는 힘,

두려움을 잊을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왜 모여, 기도합니까?

그런 능력이 제자들에게 없었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을 사모하고,

능력을 얻기 위해, 우리가 새벽에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능력]이란 단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폭발적인 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순절 사건은 또다시 반복되지는 않지만 이와 동일한 현상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내적 변화는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19세기, 스펄전 목사님은 유명한 설교자로 알려졌지만, 예언의 은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자리에서, 어느 청년을 가리키며,

자네가 끼고 있는 장갑은 주인 것을 훔쳐서 가져온 것이구먼.“이라고 얘기하니까,

그 청년이 놀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죄를 회개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또 어떤 자리에서, ”이 자리에는 주머니에 술병을 넣고 사람이 있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은 그 사람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셔서 말씀하게 합니다.

그 분의 생애동안 12번이나, 그런 것을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건 기적적인 일이지만, 성령이 주시는 가르침이니,

우리도 그런 일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존재한 사건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종교개혁자들에게 수많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어요.

이런 성령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비슷한 역사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하심을 부정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세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가장 질서적가 있고, 감동이 없는 곳은 공동묘지입니다.

공동묘지는 질서 정연하게 존재하지만, 그곳에는 아무 능력이 없어요.

[교회]공동묘지가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는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주님의 공동체[성령]이 움직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움직이는 성령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해 보자고 모인 [모임]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행한 일에 결과로 생겨난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의 행적으로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그게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22-4절을 읽으십시오.

그 때,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그들이 앉아있던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같은 혀들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위에 임했습니다.

그러자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2:2-4)

 

성령이 언제 오셨습니까?

이른 아침에”, 홀연히,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고, 그들이 있던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령이 움직이는 교회에는 3가지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로, 하늘로부터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바람]호흡을 불어 넣는다는 것이고, “생기를 넣는다.”는 의미입니다.

 

바람 같은 소리이라고도 하고,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나무의 뿌리가 뽑히는 무서운 힘을 가졌듯이,

성령님이 그런 바람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성령님이 침묵 가운데에 계시지만, 반드시 침묵만이 성령의 임재가 아니고,

그렇다고 소리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기이고,

하나님의 생기가 마음속에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유지됩니까?

심장이 뛰기 때문에 살아 있지만, 실제로 숨이 들어가야심장이 뛰는 것입니다.

이것이 호흡입니다.

 

우리 코에 생기를 부어 주신 하나님,

이와 같이 우리 코에 [바람]이 들어가야, [생명]이 유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강력한 성령의 바람, ”생명의 바람이 들어가야 사는 거예요.

우리는 정신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없어요.

우리 스스로는 정신을 못 차립니다.

 

[정신]하나님의 영이 들어가야, 살아납니다.

우리의 정신이 죽어 있으니, ”육의 습관대로, 따라서 사는 거예요.

 

그런 정신을 못 차리는 분은 성령의 산소를 불어 넣어야 하니까,

성령의 산소 탱크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살게 됩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강림 사건은 가스 중독과 같이 성령 탱크에 들어갔다, 나와야 살 수 있어요.

내 영혼에 죄악이 일산화 탄소에 중독 되었을 때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의 불이 들어가야, 살 수 있어요.

우리의 영혼이 깨어서, 살아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나타난 현상은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불같이 급하게 일어나는 [성령]이 죄악을 태웁니다.

 

모세가 불을 태웠을 때는 살인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을 갔어요.

거기서 떨기나무를 보았는데, 불이 붙었는데도, 불에 타지 않았어요.

 

나무에 불이 붙으면, 타서 없어져야 하는데, 번 아웃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어요.

성령의 불이 임하면, 계속해서 타 올라야 합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이 성령이 있는가?”를 알려면,

얼마나 오래 동안 그 사역을 감당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성령의 불이 임한 사람은 계속해서,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한번 확, 타오르고, 없어지는 것은 번개탄과 같은 일시적인 믿음입니다.

 

성령에 불이 나타난 사람은 글도 잘 읽지 못하는 분이지만,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왜 불이 “혀로 나타났을까요?

라는 것은 언어의 가능이 있어, “말씀의 도구로써, “를 사용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를 사용하니까, 사람들에게 역사가 나타납니다.

 

세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방언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말합니다.

그 일대의 “15개 나라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 했어요.

 

이 말은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함께 모였을 때, 다른 방언으로 말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자신들의 언어로 얘기했다.”는 거예요.

 

왜 성령님이 이런 역사를 나타냈을까요?

동시에, 일시적으로, 한꺼번에, 복음을 증거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급하게 복음을 증거 되게 하기 위하여, 방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언어를 배워서, 또 다른 언어로 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까,

하나님은 방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 현상은 소리와 함께 일어납니다.

그 소리는 말씀의 소리찬양의 소리”, “기도의 소리입니다.

 

[성령]소리와 함께, 임합니다.

이 새벽에 그런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학문도 많이 배웠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이 거룩한 불로 타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불입니다.

 

성령이 임한 곳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도, 소통이 잘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약속한 성려 충만은 얼마나 매력적인 약속입니까?

우리는 모든 일을 꿈꾸는 대로 할 수 없지만, [성령 충만]은 우리가 원하면, 그렇게 받을 수 있어요.

우리가 간절히 [성령 충만]을 간구할 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오순절에 나타나신 성령님, 우리에게도 임재 하셔서,

내 안에 있는 죄악을 태우시고, 내가 새로워지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