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16. 양자의 영, 기도의 영/ 롬8:15-2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어제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언해 드렸는데, 그런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교회가 능력을 받고,
선교적 사명을 다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이 임재 할 때,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다니엘 9장을 보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환한 대낮에 눈을 뜨고 다니는 것은, 대낮이라도 일부에 어두움이 있기에, 눈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온전한 빛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에 눈을 감고, 편히 잠을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함께 창조하셔서, 완전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가 있을 때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계시로, 설명해 주시니까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럼, 하나님은 두려운 존재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밀하게, 다가오는 하나님입니다.
▶ 성령님이 오면, 우리에게 문제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삽니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면, 이름을 대거나, 직업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 말고,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경우입니다.
“내가 어디에 속한 존재인가?”를 물으며, 그 대답을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질문에, 확신에 찬 답변과 담대함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셨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하나님 아버지”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5-16절을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영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합니다.” (롬8:15-16)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양자의 영“으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모습을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자녀로써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데, 걸 해결해 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예수는 믿지만, 아직까지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 중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면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대답은 예의 있는 대답인것 같지만, 그건 ”동문서답“입니다.
그러시는 분은, 그 마음에 성령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버지 됨”을 체험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은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고,
자신감에 떳떳하고, 마음이 기쁜 사람은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 여기 왜, ”양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분명한데,
내가 확실히 ”양자의 영”을 받았는지?“를 의문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 “양자의 영”을 받았어요.
▶ 왜 “친자”라고 하지 않고, “양자”라고 했을까요?
입양을 받아 보면 알게 되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모르는 관계인데,
서로 교제하면서 자기 자식과 같이 생각하고, 그렇게 느낍니다.
이와 같이 지내다 보면, [양자]는 “친자와 같은 것”입니다.
▶ 양자가 되면, 어떤 유익이 있나요.
예수님과 동일한 특권이 주어지는데, 즉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이건, 상상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세상 사람으로 양자된 것을 이해 하지만, ”하나님의 양자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내적 확신” 대해,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는 나의 “주인 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과,
그런 확신은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여기서 [종의 영]과 [양자의 영]을 구별해야 합니다.
1-[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 [종]은 사랑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종]은 “내가 일을 잘 해야 사랑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은 사랑 받기 위해 일합니다.
② [종]은 어떤 댓가를 바라고 일합니다. 무엇인가 바라고, 보상해 줘야 일을 해요
③ [종]은 내적인 친밀함이 없이, 그냥 형식과 절차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직장에서 사람을 만날 때도 쉽게 만날 수 없어요.
[종]은 주인을 만날 때에 까다로운 절차를 지키고, 어렵게 만나야 해요.
④ [종]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성공만을 위하여 달려갑니다.
2-[양자의 영]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 [양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하기 때문에 일합니다.
② [양자]는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일]을 합니다.
양자는 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고 일해요.
③ [양자]는 아버지를 만날 때에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고, “아빠!”라고 부르면서 들어옵니다.
[룰(규칙)]로 만나는 것이 아니고, “릴레이 션 십”으로 만납니다.
④ [양자]는 아버지의 인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양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정받는 길이 가장 중요한 척도입니다.
이런 자녀 됨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 여기서 왜 [친자]라고 하지 않고, [양자]라고 했을까요?
입양을 받아 보면 알게 되지만, 처음에는 낯설고 모르는 관계인데,
서로 교제하면서 자기 자식과 같이 생각하고, 그렇게 느낍니다.
이와 같이 지내다 보면, [양자]는 “친자와 같은 것”입니다.
▶ 왜, 종들이 무너집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하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원래 ”아빠“라는 표현은 아버지 보다 더 친밀감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가장 친밀하게 부르는 방법으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입니다.
”부모로써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냐?”라고 물으면,
자녀가 ”아빠“라고 부르며, 막 달려올 때, 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진행된 ”러브 쏘나타“에서 어느 통기타 가수가 고백하기를,
”자기는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모든 응어리가 풀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지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축복이 있었기에, ”그는 상처를 씻을 수 있었다”는 고백이 마음을 울립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이고, 그런 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은 또한 ”기도의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영”이 우리 안에서 탄식하게 만듭니다.
로마서 8장 후반부인, 26절을 읽으십시오.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롬8:26)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잘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인공호흡기를 끼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서 속히 인공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자신 있게, 자기가 ”호흡“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나서,
그 다음에 이어가야 하는 대화를 모르고 있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눌 언어를 가르쳐 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외국에 가서 외국어를 배울 때, 자녀들은 빠르지만, 어른들은 늦어요.
왜, 자녀가 빨리 배웁니까?
그것은 자신 있게 따라 하다보면, 쉽게 배웁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틀리는 것이 두려워서, 따라 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늦게 배우게 되지요.
그건 한 마디로, 어른들은 교만하기에, 언어가 늘지 않아요.
”아버지, 나 어려워요.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자꾸 단어를 따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령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도가 쉬워져요.
처음에는 나의 뜻대로 기도하지만, 성령님께 맡기면서 기도하면,
그때부터는 쉽게 슬슬 풀리는 자연스런 기도가 나오지요.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하심”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시려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모를 때에도,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해, 우리를 돕는 분, 그 분이 ”성령님“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성령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 그럼 어떻게 체험합니까?
”믿음“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기도의 제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개입하여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친히 바꿔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므로,
그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령님이 탄식하며 우리를 인도할 때, 우리는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낀 환자처럼, 의사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 주시고,
이런 탄식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언제나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간구하오니,
그런 탄식을 우리가 느끼고,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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