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31일 월요일
18.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갈5:22-23, 말씀: 이상준 목사님
2018년의 마지막 날, 새벽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은사]가 “능력”이라면, [열매]는 “성품”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써, “칼을 어떤 사람이 가졌느냐?“에 따라서, 유용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칼을 강도가 들면, ”도둑놈“이 되지만,
그 칼을 의사가 들면, ”생명을 살리는 칼“이 됩니다.
일 년 전에 담임 목사님이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라, 맺혀지게 만드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제목이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열매는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스스로 거룩해 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니까,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학생”은 한자로 보면, “학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보면, 학생인지, 한량(?)인지 모르겠고,
학교에 다니니까 학생이라고 불러주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나오는데,
“육체의 소욕”은 [일]을 가리키고, “성령의 소욕”은 [열매]를 말합니다.
여기서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열매]는 “자연히 맺히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에 “인생은 나무와 같다”고 말씀했고,
시편 1편 3절에는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를 맺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나무는 “정직”합니다.
밭도 “정직”합니다.
“인간의 밭”도 이와 같이 정직합니다.
그것은 그 마음 밭에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 그럼, 나는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고 있습니까?
내 인생을 돌아 다 보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여전히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혀 지내고,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너무나 세상적인 모습으로, “세속주의”에 따르고,
어느덧 율법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성령의 소욕”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을 보면, “여러분은 성령에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갈5:16)
한마디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주도권이 “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움직여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주인으로 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테평양을 내가 건너려고 하면, 너무나 어렵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너무도 쉽게 건널 수 있어요.
우리가 “주여, 주여” 라고 부른다고, 모두 다 “성령 충만”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성령을 모르는 사람은
병이 있는 환자가 병원에 와서 의사를 만나지만, 의사의 말은 듣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인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읽으십시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은 없습니다.”(갈5:22-23)
개역성경에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①사랑, ②기쁨(희락) ③화평 ④오래 참음 ⑤친절(자비) ⑥선함(양선) ⑦신실함(충성)
⑧온유 ⑨절재를 말합니다.
그럼, 한 가지식 자세히 살펴봅시다.
① 먼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한 마디로,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기쁨(희락)”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까닭은
너희를 위해서다. 이 일로 인해,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요15:11)
----이것은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기쁨을 말합니다.
③ “화평”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리스도는 화평이시니, 자기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든 분이십니다.
그분은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된 것을 헐어 내셨고,”(엡 02:14)
----인생이 살면서 서로 갈등을 덮어주고, 거짓되고, 위장 된 평화가 아니고,
죄가 없어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화평을 말합니다.
④ “오래 참음(= 인내)”입니다.
베드로 후서 3장 9절을 보면, ” 약속하신 주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바랍니다.(벧후3:09)
“오래 참음”은 단순히 버티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고,
죄인들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⑤ “친절(= 자비함)”입니다.
누가복음 6장 35절을 보면,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잘 해 주며, 돌려받을 생각을 말고, 빌려 주라.
그러면 너희 상이 클 것이고, 너희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눅6:35)
친절은 ”인자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친절은 나한테만 잘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게 아니고, 악인에게도 친절해야 합니다.
⑥ “선함(= 양선)”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09)
당연히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까, 선함 (자비하심)이 있으십니다.
인간의 착함이 아니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미합니다.
⑦ “신실하심“입니다.
신명기 7장 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라.
그분은 주를 사랑하고, 주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사랑의 언약을 1,000대까지 지키시는
믿음직하고, 좋은 하나님이시다.“(신7:9)
여기서 ”신실함“은 개역 성경에는충성”을 표기하고,
약속이 변하지 않는 믿을 만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말합니다.
⑧ ”온유함”입니다.
이사야 42장 2-3절을 보면,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거리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불길이 약해진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사42:2-3)
⑨ ”절제”입니다.
고린도 전서 9장 25절을 보면,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그들은 섞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으려고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절제합니다.”(고전9:25)
앞에 나오는 8가지는 “관계의 개념”이지만, 9번째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십계명도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스스로 절제가 안 되면, 이웃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 그런데 9가지 열매 중에서 핵심적인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는 ”인간의 성품”이기 이전에, 전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건, 인간의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성령님이 맺게 하시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는 절제를 말합니다.
끌려 다닌 것이 아니고, 끌고 가는 권위를 컨트롤하는 능력이니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한 단어로, ”사랑“입니다.
성령을 따라가면, 사랑이 맺히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40일 동안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만,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하셔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도 아닌데, “내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가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는데,
우리 안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놀라운 고백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말씀의 끝부분에 나오는 23절을 보면,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은 없습니다.“(갈5:23)
다시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태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쉬운 말로,“이런 열매를 맺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맺게 하는데,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한마디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행위를 얘기하지만,
”사랑은 율법을 뛰어 넘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세속주의와 율법주의를 뛰어 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또 자녀답게 사는 것은 또 다른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비행기가 존재하는 것은 창공을 나르기 위해 존재하지만,
활주로에 그대로 서 있거나, 격납고에 있는 비행기는 필요 없습니다.
창공을 나르려면, ”강력한 엔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엔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려면,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맹모삼천지교“에도 나오지만, ”묘지와 시장 근처에서 사는 것보다,
“학교”주변에 살아야, 큰 학자가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다 같은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마당 만 밟고 가는 성도가 아니고,
이제부터라도 “성령 충만”하게, 성령을 받아 드리십시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그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사춘기 때에,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것은 말 끝 마다, 욕을 하고, 음담패설도 따라 다녔어요.
그래서 아주 우울했는데, 그러다가 성령을 받아드리고 난 후에,
그런 나쁜 버릇이 고쳐졌어요.
그때, 폭포수와 같은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나온 기억이 나면서,
“성령체험”을 했어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그걸 못하게 막았어요.
분노와 조급함, 게으름과 무기력증을 “성령의 불”로 태워서,
단 번에, 한꺼번에 없애 줬어요.
우리가 크리스천인 것은 맞지만, “성령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령 충만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나는 즉각 순종하게 되고,
성령님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다 보면, 내가 거룩해 집니다.
내 안에 있는 게으름과 무기력증을 깨 부숴 버리고,
“욕하는 버릇”을 단번에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고,
스스로 맺혀지도록,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령 충만“ 해 지고, 거룩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런 성령님을 받아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리 천영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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