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9. 생명의 성령의 법 (롬8:1-4)

다이나마이트2 2018. 12. 23. 18:42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9. 생명의 성령의 법 (롬8: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성령 세례“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나타는 놀라운 현상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해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느끼면, 세상에서 어떤 위로가 없어도, 자기 자신 만이 느끼는 충만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대각성운동을 일으킨 “조지 윗필드”라는 사람은 본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성령 세례의 체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성령 세례 이후), 짓누르고 있는 짐을 발견했다.

그동안 짓누르던 탄식의 영이 나로부터 제거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밀려 왔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의 기쁨은 내 영혼 속에 더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전에는 탄식의 날들이 계속 되어, ”내가 버려졌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 마음속에 샛별이 떠올랐다. 이제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를 사로잡았고,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양자의 영을 받았고 나를 [인치심]을 느꼈다. 내가 활기차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내 생활에 ”탄식의 날“이, ”기쁨의 날“로 바뀐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성령 세례 이후의 모습이 나에게 체험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을 때,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죄로 인해, 통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밤은 나에게 넘치는 밤이었습니다. “

 

이런 ”성령 체험“은 특별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약속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연락이 오면  우리는 우편함을 열어 보고, 

 또 확인하고  기다리며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을 사랑하기보다 죄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좋은 ”하나님의 선물”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셀프 사랑“은 ”성령 세례“라는 말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성령 세례”는 두 가지 영역에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① 첫째는, 초자연적인 능력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복음이 전해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연약함이 있고,

혈기가 많은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능력을 주셔서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연약함과 허물이 있어도 성령은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람에게 “주권적 능력”으로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그런 통로가 되는 사람도 죄가 떠나가게 되고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4절말씀을 읽으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해 져서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8:2-4)

 

▶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죄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어떻게 다스립니까?

우리 안에는 거룩하고  순결한 본성의 있는데 어떻게 변화 되어 갑니까?

 

인간이 죄에 빠진 후에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함과 순결함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 위해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①첫 째는, 인간의 죄가 용서 되어야 합니다.

②두 번째는 인간이  죄를 미워하고 거룩함과 순결함을 사랑하는 자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힘으로 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셀프 용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죄를 용서 받는 일과 죄를 미워하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법은 “양심“인데, 

”양심“ 자체가 하나님의 법이 파괴되어, 양심의 복사판으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 율법에 우리 자신이 부딪치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즉시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하십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멀어진 것인가?“를 알게 해 줍니다.

[율법]은 죄의 용서를 알게 되고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 7절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율법에 비춰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롬7:7)

 

[율법]은 우리 영혼의 거울이 되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래야 “내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해 줍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알게 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후에 우리의 모습은 율법을 뛰어 넘어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약이 개발될 때 바이러스가 생기고 또 그것에 내성이 생기듯이

치료를 위해서는 또 다른 신약이 나와야 치료가 가능해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법은 끊임없이 또 다른 법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법이 있으면 사람의 마음은 그 법을 어기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예로써,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속도 제한이 있는데 그 규정 속도를 어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속도를 더 내게 됩니다. 혹시 저만 그렇습니까?

 

로마서 7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내 안에 각종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롬7:8)

 

[율법]은 계명으로 내 안에 탐심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의롭게 생각해서  죄에 빠져서 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지만  죄를 용서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내가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이니까  율법 앞에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다“고 여기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사람인데 율법으로 설교하다 보니까,

건전하고, 진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아이러니가 일어납니까?

그것은 ”도덕적인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죄의 한계“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최근에 베트남의 축구 감독으로 있는 박항서 감독이 화제에 오르는데

▶ 박 감독의 리더십은 무슨 리더십입니까?

그것은 ”파파 리더십“이고  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사랑이 담긴 리더십 입니다. 

 이방인인 박감독이 ”선수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선수들이 알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뛰니까

결과가 우승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축구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나도 압니다.

그러나 내가 잘 알면  뭐합니까? 선수들이 그걸 필드에서 적용하고  스스로 활력을 찾아서

최선을 다 해, 뛰도록 만드는 게 ”훌륭한 리더십“이 되는 겁니다.

 

그런 믿음이 선수들에게 전달됐으니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과 능력 있는 리더십“이고  그걸 아는 선수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죽도록 뛰는 것이 “은혜의 리더십”입니다.

 

“율법의 리더십“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작전 계획이 잘 짜여 져서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참가하는 군인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죽을 각오로 싸울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우리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엄격한 [율법]을 주신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생각을 할 때에

비로소 “성령 세례”가 임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 나오는 “죽음의 법”은 무슨 말입니까?

“죄와 죽음의 법”은 법이 죄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죄에 대하여 반드시 죽음을 동반한다.“는 것이고 ”죄의 댓가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죄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절 말씀에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시 로마서 8장 2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했기 때문입니다.(롬8:2)

 

이 말씀을 쉬운 ”현대인의 성경“에서 다시 보면,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십자가의 능력“을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인간이 죄를 깨닫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율법의 한계“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주의 영“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는데, 어떻게 하셨습니까?

1- 첫 단계는, 우리의 죄를 구해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3절 말씀 말씀을 읽으십시오.

”율법이 육신으로 인해 연약해 져서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량해 주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롬8:3)

 

예수님은 육신 안에서 심판했기에, 그 죄를 없애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 값을 그에게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들을 보내 미리 심판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또다시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단계는, 죄는 처리되었지만, 우리의 ”죄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 죄인으로 살아가니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셨고,

그 성령님을 따라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어요.

 

그 말씀이 4절에 나옵니다.

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8:4)

▶ 여기서 왜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했습니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에 억매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 새로운 법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죄와 사망을 법에서 해방된 우리 안에는 무서운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머물기도 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 그럼, 그 ”중력의 법칙“을 뛰어 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와 같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가야 우리는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의 죄가 처리되었으니 우리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안에서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능력으로 살고 있으면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새벽기도로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의 생각을 하지만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일 주일 이상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그동안 우리에게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여 죄를 미워하고,

조금은 거룩해 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거룩한 ”성령의 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깊어지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 점점 더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할 때  [믿음]이 더 강해지는 법입니다.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처리해 주시고, 새로운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죄를 미워하는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하게 하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율법으로는 죄를 이기거나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없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법”으로 죄를 용서 받고, 우리가 자유함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