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주차봉사)
6 . 성령의 인치심 엡1:13-14, 행10:38-4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앤드류 머레이“는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이자, 기도와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는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과 기도에 관한 책입니다.
그는 현란한 언어가 아닌, 가장 핵심적인 ”믿음의 내용“을 알려주는 분입니다.
이 분의 고백에 의하면, ”나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겸손하게 만드셔서,
성령의 극적인 체험을 하게 하셔서, 나는 정말 성령 충만합니다.
또 나는 정말 “성령 충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으로 충만해 질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 그렇게 성령 충만 하려면, 얼마나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까?
그 대답은 “성령 충만해 질 때까지”,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하신 말씀을 본 받아야 합니다.
▶ 혹시 성령이 나와 동행하지 않으면, 성령님은 조용히 계시는 분입니까?
----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혼과 육에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 입니다.
그것은 마치, 잉크가 옷감에 떨어지면, 점점 더 퍼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 더 넓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확대해 주시는 분 입니다.
우리의 습관에 지배하여, 좋은 영향력이 미치게 해 줍니다.
이게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상태“는 잠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계속해서 그대로 나타나고,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 하십니다.
한 영혼이 잉태 될 때, 입덧이 나오는 현상과 같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점점 더 확장되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 “성령님“은 알겠는데, ”성령 세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편견과 고집을 억제시키는 성령님은 그것들을 깨뜨리시고, 부셔 버려서,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역사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그 첫 번째 변화는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본인이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해 주고 알려 줍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 ”요나단 에드워드”는 성령 세례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나는 건강을 위해, 나들이를 했다. 어느 날, 말에서 내려 오래 동안 걸었다.
나는 걸으면서 아주 특이한 생각을 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특별한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그리스도가 나의 상상을 사로잡았다. 그 때,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 나의 열심 있는 행동은 먼지에 불과한 것이고, 한동안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따르는 일에만 전념했더니, 내 영혼이 깨끗함을 느꼈다.
요나단 에드워드는 예수님을 묵상하는 동안,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에게 임했다.“는
체험의 말씀으로 전합니다. 이것이 ”성령 세례“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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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넬료의 집에 이방인을 초청했는데, 환상 가운데 두 사람이 만납니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인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서로 만났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민족의 장벽을 뛰어 넘어, 베드로와 고넬료의 집에서 집회가 벌어집니다.
베드로가 가는 곳 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이제 다시 살아 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변화 되었고, 유대인들을 변화 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였지만, 우리는 그 분을 만났고, 그 분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마다, 그 자리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때로는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나타나기도 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놀랐고, 같이 있던 유대인들도 놀랐습니다.
이런 이방인에게까지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몰라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왜, 보냈습니까?
직접 가서 전하면, 전해도 될 일을, 중간에, 왜 사람을 보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를 먼저, 깨닫게 만드시고,
복음을 듣는 고넬료도 동시에 변화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우리 안에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함께 변화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7-4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 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기들과 함께 며칠 더 머물다가 갈 것을 간청했습니다.(행10:47-48)
어떤 사람은 물로 세례를 받고, 어떤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 다릅니다.
“성령의 부어 주심“은 다양한 패턴으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분이 살아계심을 증거 힐 때, ”성령이 역사 한다.”는 사실은 모두 다 동일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다시 만남을 확신할 때,
바로 그 때에,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관심에 따라, 살아가는 게 인생이니까,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될 때, 복음이 증거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우리도 매일 매일 예수님만 묵상하면, 그 때에 성령이 나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온누리교회가 그런 ”성령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심을, ”인치심“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3-1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강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구속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엡1:13-14)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약속하신 ”인치심“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는 것으로 그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간격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고, “[인치심]을 받는, 체험적인 사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 왜 [인치심]을 받아야 하나요? ( 왜 [인치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예비 된 영원한 기업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비 된 유업이 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존재합니다.
그것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께서 [인치심]을 주셨다”는 표현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보증해 준다.“는 의미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내 소유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의 미래를 현재화 시켜서,
”영원한 나라가 우리 것이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 나의 지혜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지혜와 내 판단력이 좋아서, 말씀을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네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아 알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말씀을 “듣게 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땅의 백성이지만, 하늘에 사는 백성으로, 체험하고, 도와주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 여기서 “인 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인치심]은 “도장을 찍는다.”는 말입니다.
①첫째,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진짜라는 [보증의 의미]입니다.
-----“진품을 보장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②둘째,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도장을 찍습니다.
-----내 도장이 찍힌 것은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③셋째,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 사람이 왜, 외로워합니까?
그것은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고, 소속이 불분명 하니까, 느끼는 감정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속한 “소유된 백성“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제자들에게 버림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니까,
하늘로 올라가서 높은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그 분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기쁨이 있었기에, 날아온 돌을 맞아도, 스데반에게는 기쁨이 있는 것 입니다.
인간의 깊은 갈망은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지요.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한 존재입니까?
”나“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의 백성“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어도 갈 곳이 있어, 나에게 영원한 나라가 준비되어 있어,
그런 ”소속감“을 확실히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라는“는 음성이
들려 올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자신감이 생겼을까요.
우리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자리 메김을 할 때,
세상은 무섭지 않고,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는 가장 안전합니다.
▶ 그 때, 왜 우리가 안전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능력”이고, “인치심의 결과”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된 선물”입니다.
그 분의 복음을 듣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예정된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 드리는 사람에게, “약속된 선물”입니다.
그런 성령님의 “인치심의 역사“가 그걸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 자리가 하늘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리가 되게 하시고,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확신 될 수 있게 저를 붙잡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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