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3일 목요일
4. 생명을 얻는 회개/ 행2:32-39, 행11:13-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말씀을 많이 공부해도, 말씀이 받아드려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이 느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물질적으로 해석합니다.
그건, “이성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고, 이성을 뛰어 넘는 신앙을 가지고,
“영”이 “이성”을 지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이성”은 육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습관”을 버리고, “영의 습관”에 사로 잡혀야 합니다.
우리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육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가짜가 많다“는 것은 ”진짜가 있다“는 말이니까, 우리는 진짜 ”성령의 역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DL 무디는 노 부인의 기도에 의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였듯이,
우리도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 속에 생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번 새벽기도에 오신 분들은 오지 않으신 분들 보다, 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받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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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신 것과 같이,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강림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은 모든 사람의 영혼에 동일한 능력으로, 계속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성령 강림 사건“은 ”말세에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나타내 주신 것으로,
그날 오순절에 나타난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각양 각색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어떤 분은 길을 가다가 나타나고, 어떤 분은 책을 읽다가 나타나고,
어느 분은 서로 대화하는 사이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성령 충만하게 나타납니다.
그 결과는 오순절 사건과 똑 같이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또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효과와 능력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떠나가는 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시며,
”내 안에 오셔서, 예수님“으로, 살아계신 것입니다.
만일에 내가 예수를 믿는데도, ”내 안에 예수님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냥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울어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오는 것은 ”근본이 달라졌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과거에는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능력까지, 생기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방언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능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오늘 말씀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들어보세요.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서, 그 분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높임 받으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부어 주셨는데,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행2:32-33)
이 말씀은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신 사건“입니다.
[중생]은 성령이 우리 영혼 속에 계시는 것이 때로는 느껴지지도 않지만,
”성령 세례“는 성령을 부어 주는 사건으로, 이것은 분명히 나타나는 사건으로,
내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체험적인 사건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설명합니다.
▶ ”성령 세례“의 목적이 36절 말씀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모든 집은 확실하게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2:36)
쉽게 다시 설명하면,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사건으로, 하나님이 말세에 주와 그리스도로 삼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인간의 죄인 된 원인으로,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니까, 그것을 알게 하는 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이 없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교회의 능력“이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게 ”사도행전적 사건”입니다.
이 사실이 전해질 때, 베드로의 설교가 듣는 사람마다, 찔림을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며, 결단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육에 속한 인생으로 살 것이냐?”
“영에 속한 사람으로, 성령을 받아드릴 것인가?”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말씀해도, 거부하고, 부정하려고 합니다.
“왜? 당신은 새벽기도에 안 나오시냐?“고 물으면,
내가 주인 삼은 주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걸 고집하느라, 나오지 못합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일들을 멈추고, ”하나님의 영“으로 나를 채워야 하니까, 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교만함이 있으니까, 그렇게 버티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죄를 토해내는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싫으니까, 주저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37-38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으십시오.
”그러자 그들이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이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각각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행2:37-38)
이 베드로의 말씀을 ”회개하라“고, 율법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냥 사람들이 느끼는 반성을 한다거나, ”뉘우침“이 되면, 안 됩니다.
▶ ”회개“는 무엇입니까?
”뉘우침“은 영의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금방 돌아가게 만들지만,
”회개“는 근본적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나 자신을 절망적인 상태에서,
반성하고, 깊이 깨달아, ”통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회개가 됩니다.
”회개“는 정신적으로 깊이 깨달아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완전히 유턴 하며, 돌아서야 가능합니다.
”회개“는 성령의 역사이므로, 우리 스스로는 회개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성령이 개입하여, 성령이 내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소 그 때에 진정한 회개가 일어납니다.
자신의 죄성을 완전히 깨닫고, 반성해야 “회개”가 일어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나를 완전히 채워야, 회개가 일어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 이지만,
여전히 베드로는 자기의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내 자존심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내가 우리 집에 방 하나는 기도실로 내 드렸는데, 안방까지 요구하시면, 곤란하지요.“라고
말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게 아니고, 손님으로 모시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들은 “어서 속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세요.”
그러시는 분들은 오래 동안 예수를 믿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얼른 회개하고, 예수님을 안방으로 모셔서, 주인으로 섬기세요.
그러면 자기 자신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은 했지만, 예수님을 손님으로 대하면, 평생 믿어도,
그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환영하지 않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믿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온전히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자리 잡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바랍니다.
이런 일들이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자신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그리스도를 받아드려, 주인 삼는 것이 “회개”입니다.
▶ “성령 세례”는 무엇입니까?
“성령 세례”는 성령 충만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인데,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 세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계속해서 “성령님이 주관하는 회개”가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놀라운 세계를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성령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이 오늘, 나에게도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나는 지금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일 작정이오니,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나를 오직 성령으로 채워서,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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