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2. 진리의 성령/ 요14:17, 16:12-16,

다이나마이트2 2018. 12. 21. 16:40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2. 진리의 성령/ 요14:17, 16:12-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성령님에 대한 두 번째 시간으로, ”진리의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 여러분, 내가 성령 충만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걸,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성령 충만함을 모르면, ”성령 충만“은 그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고,

[성령]은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게 하고, 끊을 수 없는 죄를, 끊게 만드는 것입니다.

깨달을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진리”로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1908년에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가 본국에 편지를 쓰기를,

<나는 여기에 와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능력을 느꼈어요.

같이 사역하는 동료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모든 일을 잊어 버렸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바라던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 되었어요.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는 생각나는 것은 ”기도 부탁한 것“ 이외는,

한 일이 없는데, 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 졌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에요”라고 증거하고 있어요.

 

이게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성령]은 믿는 이들에게 능력을 주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D. L. 무디는 ”쿡“이라는 노부인이 ”시간이 있으면, 저의 집에 오세요.”라고 초대 하여 찾아 갔더니,

“무디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사는 것을 보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인사하기에, 그럼, 여기서 무룹 꿇고 기도합시다. 그러면서 자신을 빈 그릇으로 내어 드리고, 무룹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며칠 뒤에 길거리를 걷는 도중에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다시 말해서 성령이 임하게 되어,

“하나님, 이제 능력은 그만 부어 주세요.“라고 기도할 정도로, ”그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합니다.

 

▶ 목사님, 교회를 얼마나 다녀야 그렇게 되나요? 그건 아니지요.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성령을 간구하는 영혼에게 그런 ”기름 부으심“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성령이 임하길 바랍니다.

 

이번 새벽 기도 시간에, 그런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역사 속에 무디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게 하옵소서.

 

나도 무디와 같이, 거룩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는 성령을 간절히 원하오니,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전달받게 하옵소서.

CGN TV로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도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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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오심을 설명할 때, 제자들은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있었던 기적과 표적들이 생각났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내기 싫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로마에서 유대가 해방되고, “약속하신 주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라고 기다리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더 받아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떠나간다.“고 말하고 있으니, 서로 생각이 다르니까,

서로 이해 할 수 없었던 상황이지요.

 

그 때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상황이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깨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지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을

제자들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드리기 어려웠던 상황입니다.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데,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갈릴리를 두루 다녔지만, 새로 오시는 성령님은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니,

예수님은 “내가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로 오시는 성령님은 “또 다른 진리의 영”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 분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그 분을 받아드릴 수 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 분을 안다. 그 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요14:17)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3가지를 발견합니다.

1. 첫째로,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인간은 오류와 모순 덩어리이지만,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므로 오류와 모순이 전혀 없으십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을 광신도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광신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한다.“고 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치는 것은 ”가짜“이고,

그런 사람은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입니다.

 

그런 ”가짜가 있다“는 것은 ”진짜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건에도 “명품”이 있으니까, “가짜”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가 있으니까, ”가짜“가 존재하듯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고, 체험되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그 분은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므로,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요16:14)

 

성령님은 “내 것”(=예수님의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또 성령님은 때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시는 분인데,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 분은 ”영“이니까, 우리의 영에 침투할 수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여, 우리에게 미리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들어와, 죄와 악을 몰아내십니다.

 

 

베드로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진리의 영“이 베드로에게 들어가, 베드로를 움직이니까,

성질이 급한 그 개성은 그대로 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베드로에게 들어가, 작용했기 때문에,

그 후에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이성만 남아 있고, 자기 이성적인 논리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영이 그 사람을 움직입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어둠 속이 있으니까,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깨닫게 되지만, 정신적으로 방황을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 들어간 사람은 절대로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진리의 영”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영”은 사탄의 길로 들어가지만,

“진리의 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길로 갑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는 ”내 오감“과 ”내 이성“으로 얻은 지식으로 살았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받아드린 사람은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합니다.

 

2. 둘째로, 세상 사람은 ”성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 말씀을 보면, ”지금은 너희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요16:14)

 

여기서 ”알아 듣지 못한다.”는 말은 “성령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이성과 지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예수 믿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 2천 년 전에 나타나신 예수를 내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를 믿습니까?

를 "내가 믿는다."는 건, 내가 돌았던지, 아니면 그 분이 내 마음을 움직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여기서 <내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교회에서는 <성령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고 표현하고,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3. 셋째로, ”성령이 역사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 = 내 마음 속에서 그분이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내 입으로 선포한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 ”믿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있는 ”거짓의 영”이 떠나가게 하시고, 나의 생각을 “진리의 영”으로 채워 주십시오.

 

과거에는 내 이성에 따라 판단했으나, ”진리의 영“이 나에 임하면,

하나님에 속한 진리를 깨닫게 되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잠자는 나의 영을 깨워 주셔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리의 영”으로 채워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님]의 본질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현상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원래 하나님 이시고, 예수님이시며, 진리의 말씀이고, 인격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어떤 감정이나, 환상이나, 현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진리로,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예수님의 것을 받아드려,

나에게 전달해 주므로,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나에게 임하실 때,

우리 마음 안에 진리가 충만하고, 인격에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