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안내봉사)
5.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행19: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오직 내 안에 살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런 성령님을 모시려면, 나의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영“이 나에게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능력을 받아, [성령님]이 나를 지배해야 그게 가능합니다.
우리 오늘은, 찬양 한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성령님을 내 맘에 모시는 것은 ”예수님“을 모셔 드리는 것입니다.
▶ ”그럼, 왜, 성령님을 내 맘에 모셔야 합니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니까, 예수님의 몸이 승천하신 것이고,
다시 오실 때는 ‘부활하신 부활체인 몸”으로 성육신 하신 그 분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성육신 한 몸이니까,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고, 이루셔야 하므로, 내 맘에 모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몸 안에 영으로 임할 때, 우리의 몸이 화끈하게 달아 오르기도 하고,
감정이 북 받쳐서, 눈물이 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그걸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놀랍게도 하나로 연합 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하신 영으로, 우리에게 임할 때에,
두 가지 영이 서로 부딪치거나 충돌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그런 신적인 역사와 인간의 몸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룩하게 변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 분의 사람으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것이 [교회]이므로,
우리 몸의 성령님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 몸]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이런 사실은 교회 역사를 통해서, 사실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을 기억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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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시작은 성령을 체험한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에베소를 방문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향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사도행전 19장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을 거쳐서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사실도 듣지 못했습니다,"(행 19:1-2).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을 만납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데 있어서는 확실했는데, "성령 받는다."는 말은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질문에 "성령님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하나 드리지요.
▶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기도]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 그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마치 풍랑에서 ”예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제자들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내안에 오셔서, 네 눈이 더 밝아지고, 내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나를 깨우셔서, ”육의 사람“이 아니고, ”영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양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구원은 능력을 보고 받는 게 아니고, 그냥, 거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가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의 별을 보여주고,
”네 자손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심어 주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도, 이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며 보았듯이, 우리도 거기에 나타난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안 받았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고, 봉사하면서도, 성령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다.“는 것이 일정한 패턴으로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이 임할 때에, “본인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싯점에서 알 수도 있고, 얼마 지나고 나서
”아~ 그때, 성령이 나를 사로잡았다“는 사실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막연히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합리화 하면, 안 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모두 다 성령 받은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성령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빈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약속을 누릴 수 있는데도,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실제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자기의 죄를 완전히 끊고, 성령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과 ”성령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을 때,
그들에게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질문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열등하다”는 뜻으로 질문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구세주인 것을 받아드린다면,
더불어 약속하신 선물인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질문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성령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런 능력을 누리고 있느냐?”에 분명히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구절이 또 나옵니다. 사도행전 8장 15-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그곳에 도착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행8:15-16)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령받기를 기도했지만, 아직 그들에게 성령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 질문을 듣고, 제자들은 “우리가 성령이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니, 그것은 교회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구원의 영”이고, 우리들을 회복시키시는 “성령님”인데,
그런 중요한 [성령님]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성령님]에 대해 몰랐는데, 옆에 교회에 가니,
성령 충만하여 소리 높여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아주 이상하게 느낀 적이 있었어요.
그것은 ”왜 저렇게 요란하게 믿지?“, ”왜 저렇게 큰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후에 “성령님“을 알고 나서, 오해가 풀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요즘, 교회에 문제가 많아서 교회가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이어령 교수님을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느 식당에 가서, ‘식중독에 걸렸다’해서, 다음에 배가 고플 때에, 식당에 가지 않나요?”
이와 같이 교회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옳은 판단이 아니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새벽 기도 드린지, 이제 5일째 지나갔는데,
제가 확실히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지난 주 보다는 확실히 더 거룩해지지 않았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5일째 계속해서 듣다 보니, 우리는 확실히 거룩해 졌어요.
그것은 매일 가까이 접하고 있던 TV도 멀리하고, 저녁에 일찍 잠자게 되니,
자연스럽게 거룩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육”이 이끄는 삶이었다면, “성령”이 마음속에 들어오니까,
요즘에 마음속에, 별로 중요한 것이 없어졌어요.
▶ 그 이유는 뭘까요?
------- “영적인 삶”을 묵상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이 “성령님으로 꽉 채워졌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내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이 [하나 됨]으로, 우리는 성결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만족하지 말고, 더 좋은 약속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면, 지체 없이 ”예, 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라고
확실히, 자신 있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한 영성에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물인 ”성령님“을 받아드려,
나에 맘에 온전히 꽉 채우셔서, 늘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 습관에 흔들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가정으로 온전히 세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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