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8. 성령의 기름 부으심(요일 2:27-2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 신앙생활에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심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끔, “내가 믿는 것이 진리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집니다.
그런 의심을 하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어, 그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성경의 진리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졌으므로,
이 진리가 성령님을 통해, 계속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진리의 전쟁”입니다.
이런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만드십니다.
▶ 우리가 얻는 지식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①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눈, 코, 귀, 입, 육신을 통해 알게 합니다.
② 또 믿음을 통해서 얻는 지식으로 알게 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움을 통해서, 믿음으로 받아드리도록 알게 합니다.
③ 이것 보다 한 차원이 더 높은 지식으로,
진리의 성령님이 임하므로, 우리의 체험을 통해 얻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육]을 통해 얻을 수 없고, [영]을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하며, ”진리의 성령님“이 행동하게 만드십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초자연적인 능력임으로, 우리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 구별이 가지 않을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우리에게 분별력이 생깁니다.
▶ 어째서 생길까요?
성령 안에서, 영으로 분별하여, 우리를 깨닫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이 기억나게 하고, 깨닫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은 세상적인 기준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그대로 믿도록 만드십니다.
그것을 ”성령의 역사“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어느 날, ”하나님, 저에게 목회하는데 도움이 되니, 저에게도 신유의 은사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더니,
”너는 두 명만 병을 고치면, 교주가 되려고 하니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를 과시하기 위해, 필요한 성령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의지하고, 자기 철학에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믿으려 하지 않고, 베스트셀러는 믿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우리의 생각을 만족 시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한 1서가 기록 될 당시에는 사도의 역사를 사도 요한이 쓸 수밖에 없었고,
기록한 목적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확신시키고,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멀리하려는 목적에서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전도용”이라면,
요한 1서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삶을 누리도록 권고하고, 깨우치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너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기록한 책입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거짓된 사상인 이원론에 근거하여, ”영이 어떻게 육신에 거하느냐?”라며,
성육신을 부정하려 하지만, 세상의 철학에 기준하여 이해하려면,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자기중심주의“로 해석하고, 언제나 그 기준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게, 성령님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성령님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영지주의]도“ 예수님이 사람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호도합니다.
우리 시대의 거짓된 진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인가?“라고 하나님의 신성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신화 적인 이야기로 몰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목격했던 사도들도 ”예수님이 사람일 수 없다“고 거짓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로 오셨는데, 왜 이를 부정합니까?
세상적인 지식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에 무지하니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영의 차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 새로운 법칙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름 부으심”은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 하는 것을 드러내고,
그 구원자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고,
그 분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표적으로,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은사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못 믿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가진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구약의 몇 구절을 찾아보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번 확인해 보십시다.
이사야 11장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의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사 11:1-2)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가 여호와의 영이 임할 것이다.
여기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은 육체의 혈통으로 [메시아]의 인성을 강조하는 말이고,
“예수님에게 지혜와 통찰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성” 위에 여호와의 신이 머무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귀신을 쫒아내는 능력을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나타내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시자,
그 분에 대한 소문이 전역에 두루 퍼졌습니다.“(눅4:14)
예수님은 ”성령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인성에 성령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구원과 회복사역이 임한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신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하심으로, 예수께서 선을 행하시고,
마귀의 능력 아래 짓눌려있던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시며, 두루 다니셨습니다.“(행10:38)
여기서 ”나사렛 예수에게”라는 말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 왜, “두루 다녔다“는 말을 강조했습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성육신하신 분으로,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니까,
두루 다니며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기름 부으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교회 역사를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자기들뿐만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요한 일서 2장 27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어주신 것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므로,
아무도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여러분을 가르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십시오.“(요일2:27)
이미 성도들에게 기름 부으심이 존재하니까, 그런 능력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이 말씀을 잘못 해석 하면, ”성경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런 능력과 기적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니까,
우리에게 “기름 부으심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기름 부으심“이 있었기에,
박해와 고난을 이겨냈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 1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초대교회 1세대에 나타난 능력이, 요즘에도 가능합니까?
예,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1세대의 초대교회에 나타난 능력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고,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성령의 역사“가 계속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1장에서 부터 몇 가지를 살펴보면,
1장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고, 11사도들에게 나타났고,
2장에서는 바람과 불이 함께 임했고,
3장에서는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걷지 못한 앉은뱅이를 고치시고,
4장에서는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설교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셨고
5장에서는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예고하였고,
6장에서는 스테반이 표적을 나타냈고,
7장에서는 스테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였고,
8장에서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을 받았고,
9장에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바울이 회심하였고,
10장에서는 고넬료 집안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어요.
-----이런 역사는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사도행전은 그렇게 28장에서 끝나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끝난 게 아닙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의 비전인 “ACT‘S 29”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 29장을 계속해서 쓰자“는 비전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그런 위대한 비전을 이루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이“ 갑자기 나타나므로, 이런 일을 이루려면,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실제임을 믿고,
우리의 삶 속에 체험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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