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리치 관련

캄보디아 아웃리치 킬링필드 (2018.7.13~7.17)

다이나마이트2 2018. 7. 21. 19:59

 

우리 아웃리치의 베이스 캠프와 같은 엄뻘교회

아침 9시에 루엉교회 예배, 10시 30분 엄뻘교회 예배, 점심 식사 후에 품트마이 이주민 마을 방문

끄로바흐 마을 어린이 예배 사역으로 빡빡한 주일 예배를 모두 마쳤다.

 

저녁 식사를 위하여 엄뻘교회 근처의 식당에 왔다.

선교사님께 풍선으로 팔찌를 만들어 드렸는데 감격해서 넘어가신다. ㅋㅋㅋ

 

주변에서 괞챦은 식당인 것 같은데 무엇을 주문해야 맛있을지 잘 모르겠다.

 

식사 중에도 김기섭 집사님 김관수 목사님은 풍선으로 꽃을 계속 만드시고 계신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섬기고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이심전심 느껴진다.

 

현지 사역자들도 함께 식사 한끼 섬겨 드렸다. 밥 한끼에 모든 수고가 위로가 되겠는가 마는

우리 아웃리치팀과 우리 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은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식사 시간에 만들어진 풍선 꽃을 현지 여성 사역자들의 손목에 달아 주었다.

 

예쁘게도 만들었지만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풍선으로 만든 꽃 이지만 마음은 보석으로 만든 꽃 다발을 한 아름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행복해 하시는 모습만 봐도 행복감이 전염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귀한 현지 사역자들입니다. 수년 전에 아웃리치팀의 기도의 응답이 확실하게 보여 지는 것 같습니다.

 

현지 사역팀에게 저녁 식사와 함께 풍선으로 만든 꽃들을 전해 드렸습니다.

 

쭘무리업 리어~~~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아웃리치팀에서 현지 사역자들과 마지막 식사 시간이지만 풍성하게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저녁 식사 이후 엄뻘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습니다.

양반들이 먹는 과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떼모야 라는 맛있는 과일을 먹었습니다.

 

아웃리치의 마지막 밤 입니다. 우리가 아웃리치를 통하여 얻은 것은 무엇인지?

아쉬운 것은 어떤 것인지? 새롭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였습니다.

한분 한분의 간증이 너무나 귀한 시간이였는데 별도로 간증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관수 목사님 키타로 찬양을 너무 잘 인도해 주셔서 얼마나 풍성한 시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키타줄이 끊어지도록 열심히 키타를 쳐 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경배해요 내 영혼 기뻐~~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 먼날 볼 수 있게 주님 내게 행했네

당신이 지쳐서 기도 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목이 터져라 이런 찬양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밤에는 선교사님 위로 격려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상인 장로님/ 이성순 권사님 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수고하신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최희수 권사님이 이성순 권사님의 발을 제가 김상인 장로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수고하신 장로님의 발을 씻겨 드릴 수 있었던것 참 감사한 순간이였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아멘.

 

세족식 이후에 뜨거운 포옹을 하고 축복 기도를 해 드렸다.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급이 부럽습니다.

 

이 밤이 얼마나 은혜의 밤인지 각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얼마나 큰 밤인지

먼저 행하시고 계신 하나님의 선교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복된 시간이였다.

 

밤이 많이 깊었습니다.

박건용 팀장님께서 선교사님께 공동체가 준비해 주신 선교 헌금을 전달 했습니다.

 

7월 16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엄뻘교회를 떠나기 전에 우리가 2박을 했던 교회 대청소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화장실 청소도 깨끗하게 반짝반짝하게 정리했습니다.

 

예배당도 쓸고 딱고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도 와 ~~~예수 쟁이들이 다르구나 감동 할 정도로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엄뻘교회 리더십에게 공동체에서 준비해 주신 교회의 헌금도 잘 전달 했습니다.

 

마직막으로 교회를 떠나기 전에 함께 엄뻘 교회를 위하여 중보 기도도 했습니다.

 

주님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이는 하나님 이심을 고백합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다음 세대에도 복음의 영향력들이 흘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킬링필드의 상처가 치유되고 복음으로 회복되고 온전하게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엄뻘교회의 리더들을 축복하시고 성령으로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엄뻘교회를 통하여 이 주변 지역이 예배하게 하옵시고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하옵소서.

 

프놈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 식사를 합니다.

우리가 첫날 아침에도 먹었던 국수를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일전 건넌 던 메콩강을 건너 프놈펜 시내로 돌아 갑니다.

 

우기여서 그런지 메콩강은 맑은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차량을 탄 체로 배에 실려 메콩강을 건너면서 이 강위에 다리가 놓여지길 기도했습니다.

형편이 되면 대한민국에서 이 메콩강에 다리를 놓아주길 기도했습니다. 

 

메콩강을 건너면서 바라보는 솜마(?) 호텔, 큰 호텔이긴 한데 이름을 잘 모르겠다.

 

메콩강에 유람선이라고 한다. 좀더 많은 아웃리치팀이 오시면 한번 타 봐도 될 것 같은데....

 

교통 체중을 뚫고 킬링필드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6$이라고 한다.

 

"청아익 대학살 센타"라고 영어로 간판이 서 있다. 참람한 현장이다.

 

가운데 보이는 위령탑이 17층 높이의 탑이라고 하는데 현재 두개골 8,000여개를 수습해서

위령탑을 세우고 희생자의 넋를 위로한다고 한다.

위령탑의 유리 창문 내부에 두개골들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다.

 

20세기 최악의 사건으로 1975-1979년 내전 중 같은 민족인 크메르 족에 의해 캄보디아 인구의 1/4이

어떤 이유도 없이 학살을 당한 사건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200-300만 정도의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프놈펜에서 대학살이 있었던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청아익 대량 학살센터'로 불리며

'킬링필드'라 불리는 장소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80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박물관이 있었다. 주로 살인 도구와 학살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정확하게 자로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3m x 6m 정도 되는 공간으로 보이는데

영어 안내 표지판에 450명의 대량 매장지라고 표기 되어 있다. 상상이 안된다.

 

희생 당하신 분들의 옷들이 모아져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영어 간판에 이곳에 100명 이상의 여성들이 나체로 발견 된 곳이라 적혀 있다.

여성들이 욕 보임을 당하고 이곳에서 학살을 당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참람한 곳이다.

사진은 없지만 어떤 곳은 두상이 없는 166명의 희생자들이 대량으로 발견 된 곳도 현장에 있었다.

 

나무 이름이 킬링 트리이다. 이 나무에서 어떻게 학살을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끔찍한 현장이다.

 

군데군데 움푹 페인 곳이 전부 학살 된 자들이 매장되어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학살 당한 자들의 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고 치아 조각들이 전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나무도 운명이 기구하다. 영어 간판에 학살의 도구로 사용 되어진 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나무에서 목을 메달아서 학살을 하거나 나무에서 떨어드리거나 했던 것 같다.

 

발굴의 모형들이 이렇게 남아있다. 몇 사람의 유골인지 짐작이 안된다.

"만나는 자마다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마다 칼에 엎드러지겠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메어침을 당하겠고 그들의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들의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사13:15~16)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데

바로 이 말씀의 현장이 킬링필드라는 것을 돌아와서 성경을 보면서 깨달았다.

 

해골들로 탑이 쌓여져 있는 킬링필드

왜 같은 민족 끼리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했는지 이해 할 수 없는 현장이다.

이 킬링필드의 트라우마 때문에 지식이인이 되거나 지도자나 리더가 되면 무조건 죽였기에

리더가 될려고 하지 않는 트라우마가 이 땅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균 나이가 27세 라는 것도 이 땅에 불과 40년 전에 전국민의  1/4이 학살을 당했으니

40세~60세 이정도의 인구가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이다.

 

킬링필드를 돌아 보고 다시 프놈펜 시내로 돌아 왔다.

캄보디아 독립 기념탑 이라고 한다.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부터 완전 독립을 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앙코르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서 한장 찍어 보았다. 이제 점심 먹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