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관련

고난주간 심야예배 네째날 (2016.3.24)

다이나마이트2 2016. 3. 24. 23:39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고난주간 네번째 심야예배가 있었다.

예배 전후로 침묵 기도 시간이 있다.

;8시 50분 ORGANIST 김은영 성도의 오르간 연주가 시작 되었다.

Aus tiefer Nt schrei ich zu dir (깊은 고난 속에서 주께부르짖나니), 귀하신 예수

찬송가가 연주 되었다.

오프닝 연주 1부 챔버

무엇이 변치 않아 (십자가)

무엇이 변치 않아 내 소망이 되며 무엇이 한결 같아 내 삶을 품으리

그 누가 날 만족케해 내영이 쉬며 그 누굴 기다려 내 영이 기쁘리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소망이 있네

십자가 십자가 그 그늘 아래 내 생명이 있네

주~여 내영을 고요케 하사 십자가를 품게 하시며

주~여 내영을 잠잠케 하사 십자가로 만족케 하소서

찬양 한영철 전도사, 뮤지컬 찬양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구주를 생각만 해도....3곡의 찬양을 드렸다.

대표기도 이은일 장로님

찬양사역팀 특순 뮤지컬찬양사역팀 채미연 성가사 '거룩하신 하나님'

성시교독 교독문 (고난주간2) 김영배 목사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아멘.

침묵기도

 

강사소개 이재훈 목사

지난 월,화 2일 동안 말씀 전하신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님은 노숙인들의 삶을 회복하는

프로그램으로 농사도하고 가르치시기도하고 회복으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시는데

목욕탕 건립을 위하여 지난해에도 모금을 했지만 건물 주인이 건물을 사려는 것을 알고

가격을 많이 올렸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담임을 맡고 있지만 산마루교회의 부목사(?)로서

목욕탕 건립의 재정 위원장(?)으로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부활절 감사 헌금을 좀 넉넉히

내어 주셔서 노숙인들을 위한 목욕탕 건립에도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의 이한영 교수님도 외국인 거주자들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노동자를

교육을 통하여 현지인 사역자로 바로 세워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어 좋은 사역자들을

기르시고 훈련 시키시는 일에도 장학금으로 동참 하기를 원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힘드신 줄은 알지만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감사 헌금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담임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요청하시는 경우는 못 들어 보았는데

우리들의 이웃을 돕고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해서 요청하시는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프간전쟁 때에 미국에서 군목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군목도 파송되었다.

그분은 너무나 전도를 잘하신다. 한국 말로 기도한다. 가슴에 품고 울면서 기도한다. 위로를 받음.

유창한 영어 보다 더 확실한 소통은 공감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누나는 27년간 투병하시고 별세하셨다. 신체기관도 다 기증하시고 떠나셨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남미 브라질에서 생활했습니다.  누님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누나가 혼수상태일 때 누나를 살려 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 서원으로 지금 이렇게 사역합니다. ㅎㅎㅎ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공감의 고난이다고 어제 말씀 드렸습니다.

공간의 고난으로 성화될 수 있다. 고난을 아파만 하면 그것은 절망이 되고  정답만 찾으면 폭행이 된다.

 

오늘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내려 놓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공감의 고난에서 내려놓음의 고난으로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신약성경에 마리아가 4명 정도 나타나는 것 같다.

1)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2) 마르다의 자매이며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

3) 예수님의 제자 중에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4)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이렇게 4명 정도 인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섬긴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그 아래까지 따라간 용감한 여인들이였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은 신실한 여인들이였다.

예수님에게 빵을 얻어 먹고 기적을 경험했던 자들은 오히려 도망을 갔고

심지어 목숨 걸고 따르겠다던 제자들도 다 도망을 갔지만 십자가까지 무덤까지 따라간 여인들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마리아들의 공통적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많이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마리아 이다. 히브리식 이름이라는 뜻이다.

구약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마리아의 이름이다. 흔한 이름이 아닌 것이다.

구약에도 미리암은 딱 2번 나타나고 신약에도 4명 밖에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다. 

구약을 대표한 미리암, 신약을 대표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공통점은 유명한 찬양이다.

구속의 찬양으로 유명한다.

미리암은 출애굽기 15:19~21 홍해를 건넌 후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

마리아는 누가복음1:46~55 장차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하나님을 찬양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예수를 찬양합니다....

기독교 8대 찬양 가운데 들어가는 아주 유명한 찬양이다. 

이런 찬양은 쉽게 나오는 찬양이 아니다. 많은 것을 내려 놓고 포기해야 나오는 찬양이다.

내려 놓음의 아픔의 찬양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 마리아를 '쓴 바다' 'Sea of bitterness"라고 했다.

괴로움의 바다라는 표현을 했다, 깊고, 끝없는,  큰 고난이라는 의미이다.

마리아의 어근 '마라'라는 것은 '쓴것'이라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 이름을 많이 썻다.

마리아하면 영광스런 구속의 찬양이 떠오르는데 아픔과 고난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1.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처녀로서 잉태할 것임을 전해 들음.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러나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소식인가?

처녀가 혼인 전에 임신을 했다. 율법으로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충격적인 일이다.

성령으로 잉태된다 이해 할 수도 없고 감당 할 수도 없는 혼란과 고난의 메세지이다.

전통적인 종교문화적 세계관과 어긋나고 상식과 배치되는 혼란과 고난의 메세지이였다.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인류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고 가장 역설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이다.

누가복음 2장에 구유에 놓인 아이에게 천사들이 찾아와서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게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함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18절 이를 듣는 자가 놀랍게 여기더라

19절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마리아는 기뻐하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는 몸과 마음에 새기고 있음. 고민하고 있음.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임신하고 분만해서 낳았다는 믿지 못할 현실 앞에서

내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2장에 예수님의 12살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가 소개 됨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감. 하룻길을 돌아 감, 30Km정도 갔을텐데 예수님이 없음을 발견함.

30Km나 되는 하룻길을 급히 되돌아 감, 어린예수가 랍비들과 신학적인 논쟁을 하고 있음.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함.

어린 아들이 신학박사들과 토론을 하고 있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고민 하게 됨.

아이야 어찌하여 이렇게 했느냐? 보라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2:48)

부드러운 표현 같지만 야 이 자식아 하면서 예수를 야단치는 모습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시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니까? (49)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50)

내 아들 예수라고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잘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갈등하고 마음에 새기고 갈등했던 되로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이라 생각했음

내 아들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마리아의 고민이 있음.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의 30세 때의 모습이 있다. 가나의 혼인잔치이다.

혼인잔치 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져 버렸다. 마리아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게 된다.

청빙을 받아서 간 혼인 잔치였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마리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님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데 마리아는 포도주 떨어진 사실을 예수에게 알린다.

왜 이랬을까요? 예 하필이면 아무 상관없는 예수에게 이런 일을 알렸을까?

마리아는 지난 30년간 마음에 새긴 마음에 새긴 마라 쓴마음이 있었다.

예수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천사가 전해 준 이해 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마음에 품고 새긴 쓴마음의 딜레마를 푸는 계기로 삼는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냐?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요2:4)

예수님의 반응이 이상하다. 어머니 포도주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마리아의 질문의 의도를 알고 계시는 대답이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대답이다.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 명령한다.

내 아들은 특별한 아들이야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말씀이다.

마리아의 행동 양식이 예수님의 12살 때와 30살때의 방식이 다름을 볼 수 있다.

나의 아들 예수를 버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예수는 이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 이후에 어머니를 공식적으로 떠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이 마리아를 떠나는 내용이 있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들음. 그 소식을 들을 때 엄마인 마리아의 마음에는 찢어짐이 있음.

마음에 새긴 쓰라림이 있음, 날을 잡아서 예수의 동생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 감.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이 밖에 있나이다.(47)

예수님의 대답이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이냐? 하시고

내 아버지의 뜻데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리아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누가 내 어머니이냐?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는 말씀이다.

내 아버지의 뜻데로 행하는 자가 내 어머니이다.

친 어머니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말씀이다.

마리아에게서 하나님 아들 예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 아들 예수를 철저히 내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라의 쓰라린 고통이다.

마리아는 처참히 죽어가는 예수의 모습을 십자가 아래에서 다 보았다.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고 십자가에서 잃어 버렸다.

내 아들 예수를 온전히 내려 놓은 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게 된다.

십자가 아래에 와 있는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신다.

19:16~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제자에게 보라 내 어머니이다. 혹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효도를 했다고 해석한다.

마리아를 모시라는 단순한 말씀이 아니다. 마리아는 예수 말고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

당시 유대 사상에서 다른 아들들이 있는데 굳이 다른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맡길 이유가 없다.

내 아들 예수를 내려 놓은 마리아에게 진정한 신앙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가르치고 있음.

아버지의 뜻데로 행하는 자가 내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아들 예수를 버리는 믿음에 이를 때 참된 어머니의 신앙을 가지게 된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이 역사적인 모임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여러 제자들도 함께 있었다.

마리아의 신앙과 헌신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예수를 가지고 있나요?

내 아들 예수, 내가 원하는 예수,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예수가 아닌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어야 한다.

과연 나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내 아들 예수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인가?

내 아들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갈 등하는 곳이 교회이다.

분명한 것은 철저히 내려 놓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볼 수가 없다. 

여러분의 능력이 여러분의 것이라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 합니까?

자기의 뜻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내 아들 예수를 내려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날 수 없다.

내 아들 예수 내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는 복된 인생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 아버지 내 안에 내 아들 예수가 가득차 있습니다.

내 아들 예수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는 복된 인생되게 하옵소서.

고난을 아파하며 정답을 찾으려는데 그치지 않고 고난을 공감으로 승화하게 하시고

내려놓음으로 마음에 새긴 고난으로  마칠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합심기도

이 시간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딸이다. 라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소유이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원하는데로 만들어 가고 있는

한국사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어른들에 의해서 강요된 성공의 길을

잘 되는 길을, 성공하는 길을 가야만 하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 아들 예수를 내려 놓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다고 말씀하신 주님

이시간 나의 소유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내 품에서 기꺼이 내려놓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로 올려 드리게 하옵소서. 아멘.

봉헌찬양 가 같이 일어나서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축도 이상준 목사

회개의 십자가.......사랑홀 로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