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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국립공원 여행에서 (2014.8)

다이나마이트2 2014. 8. 11. 14:25

2014년 8월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월악산 국립공원을 둘러 보았다.

월악산 등산 코스는 여러곳이 있지만 대략 70%정도가 다닌다는 송계계곡으로 들어가

덕주골에서 덕주사를 지나 마애불을 보고 영봉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36번 국도를 타고 충주호를 배로 여행 할 수 있는

월악나루휴계소를 지나서 월악산 표지를 따라서 송계계곡으로 들어 갔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는 덕주골에서 영봉을 왕복으로 다녀 오기로 했다.

덕주골에서 영봉까지 6.3Km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왕복으로 12.6Km를 약 6시간 정도 걸려서 다녀왔다. 꾀 힘든 길이였다.

월악산은 서쪽으로 충북 충주시와 북쪽으로 제천시 동쪽으로 단양군 남쪽으로는 경북 문경시와

접해있는 비교적 큰 산이다. 21개 국립공원중 17번째로 지정 되었다고 하네요(84년 12월 31일)

송계8경 중의 하나인 수경대(水境臺)

덕주골에서 덕주사 월악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서다 보면 신라 때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를 지낸 곳으로 표주박처럼 생긴 바위에 첩첩이 노송들이 에워 싸고있어 절경을 한층 더북돋우며 거울같이 맑은 물이 담겨져 있다 하여 '수경대'라한다. 월악신사와 관련하여 고려 몽고침입 때에 충주 남산성에 있던 관리와 노약자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오자 갑자기 천둥 번개와 더불어 비바람을 일으켜 뒤 쫓던 몽고군이 이는 월악대왕의 신조(神助)가 있다하여 포기하고 되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고한다.

생물인 나무와 무생물인 바위가 하나가 된 희안한 쪽 동백나무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바위의 무게를 작은 나무 하나가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무 입장에서 보면 바위와 함께 살고 있어 오히려 바위를 감싸 안아주며

끌어 안고 있는 듯 합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생존경쟁하며 치열하게 다투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서로 간에 질서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송계8경중의 하나인 학소대(鶴巢臺)

월악산 영봉 및 덕주사 마애불로 오르는 덕주골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덕주산성 동문과 송계팔경 중에 하나인 학소대가 자리 잡고 있다. 층층 기암과 사이사이 운치있는 소나무들이 어울려 있는 이곳엔 옛날  10장생의 하나인 학이 날개를 펴고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송계8경 중의 하나인 덕주산성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입산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며 쌓았다는 전설을 가진 덕주산성은

월악산 국립공원 남쪽에 있으며 길이 약 4km, 면적 9,800㎡의 석성이다.

덕주산성의 외성에 속하는 성문들은 월악산의 깊은 계곡을 차단하는 차단성의 역활을 하였다.

중원의 남북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를 통제 할 수 있는 중요한 산성이라고한다.

내가 본 산성 가운데 두께가 가장 두꺼운 산성인 것 같다. 마차가 다녀도 될 것 같다.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단성의 기능을 지닌 이 성은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고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적군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또 조선 말기에는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둘레가 32,670척(9,800m)에 이르렀던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월악루), 동문(덕주루), 북문(북정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은 동창으로부터 문경으로 통하는 도로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으로 되어있고,

좌우를 막은 석벽은 내외 겹축으로 길이가 100간이다.

덕주골 입구에 있는 동문은 남문과 비슷하며,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는 북문은 내외에 홍예가 있으며 홍예 마룻돌에는 태극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덕주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이 있는데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덕주사 연혁 (德周寺沿革)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 586년)에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월형산(月兄山) 월악사(月岳寺)였으나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손국(遜國)한 뒤 경순왕의 장녀였던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높이 15m의 거암 (巨岩)에 마애미륵불(磨崖彌勒佛, 보물 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후

산의 이름을 월악산(月岳山)으로, 절 이름을 덕주사(德周寺)로 개명(改名)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덕주사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상덕주사는 동편계곡으로 1.5Km 올라간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금은 마애미륵불, 우공탑, 삼층석탑 그리고 극락전과 요사터만 남아있다.

상덕주사는 1951년 12월 6.25전화로 소실되었으며 석축만 옛날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하덕주사는 어느 때 소실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절 입구에 있는 남근석을 보면

이 곳이 남아선호신앙이 깃들었던 원시신앙지였음을 알 수 있으며 3m나 되는 탑,

기단석, 부도, 연꽃문양 석등, 와편 등이 절터였음을 증명한다.

현재의 대웅보전은 옛 하덕주사가 수재의 위험이 있어 1996년 성일화상(性一和尙)이

새로이 절터를 마련하여 전면 5칸, 측면 3칸, 52평 내 9포의 건물양식으로 창건했다.

전각 안에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존불이 모셔져있는데 중앙이 법신불로 부처님의

진신(眞身)이며 자성으로 청정법계의 진여인 실상의 법을 시현한 자성불이다.

오른편 부처님은 보신불로 과거 원력수행의 한량없는 과보로 나타난 만덕이

원만한 불신이며 화신불 또는 응화신이라고도 하는 왼편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구제하는 불신이다.

전각 내부 후면에는 1536불을 봉안하고 있다.

덕주사의 모습중에 일부인데 파란색 지붕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모든 절의 지붕은 검은 기와에 단청이 있는 건물이라는 편견을 버리게 하는 곳이였다.

이곳 덕주사 앞 마당에서부터 동양의 알프스 월악산 영봉까지 4.9Km이다.

지금까지는 산책이였고 여기서 부터 바로 험악한 산행이다.

덕주골을 흐르는 냇물은 너무나 깨끗했다.

30~40십년전 시골 동네에서 보던 그런 맑고 깨끗한 물이였다.

이곳에서 등산로가 시작이 된다.

덕주사 마애불(보물406호) 덕주사에서 약1.5Km정도 걸어서 올라온 지점이다.

덕주 공주가 오빠 마의 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 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국보 보다도 지정 받기 더 어렵다는 보물. 덕주사 마애불은 고려시대 조각품이고,

덕주사는 신라 마의태자의 누나 덕주공주가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절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고한다.

높이 15m나 죄는 불상이라고 한다.

올라가기 싫은데 감로수가 있다고 아래에 안내 표지가 있어서 물 한컵 마시려고

한참을 올라가서 찾아 보니 바위틈 사이에 조그만한 옹달샘이 있었다. 물 맛은 참 좋았다.

이곳에 묵언 수행을 하시는 스님이 한분 계셨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무슨 깨달음을 얻겠다고 말하라는 입을 사용하지 않고 침묵을 하시는지 잘 이해가 안되었다.  

본격적으로 악 소리나는 산행을 한다. 쉬어 갈 곳 없는 오르막만 있는 산행이다.

계단으로 된 구간도 있지만 좁은 바위 틈 사이로 올라가야 하는 구간도 많다.

올라와서 돌아본 구간인데 뒤 돌아보면 다리가 후들 거릴 것만 같다.

산등성이 너머로 충주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끝이 아니다. 가야할 길은 멀고 몸은 지치고 계속되는 철 계단에 힘이든다.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이제 저 멀리 영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지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또 옮긴다.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났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영봉까지는 산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라 너무 기분 좋은 구간이였다.

산 능선을 타고 가는 구간이다. 대략 해발 960m 정도 되는 높이의 거의 평탄한 등산로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어서 너무 기분이 상쾌하고 때때로는 쌀쌀한 기운도 느겼다.

아무리 한 여름 산행이라도 여벌의 옷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다.

헬기장에 도착했다.

정면에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이 보인다. 날씨가 너무 맑아서 깨끗하게 잘 보인다.

직선 거리로는 300m 정도 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저 바위를 뒤로 돌아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적어도 1.5Km는 걸어가야 저 봉우리 맨 꼭대기에 이를 수 있다.

영봉까지 1.5Km 구간을 1시간 30분 정도 걸려야 갈 수 있다는 안내 간판이 있다.

너무 힘들어 하니까 올라 가셨다가 돌아 오시던 분이 두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1. 영봉에 올라가면 경치가 너무 좋다고 하셨고 2. 너무 시원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경관이 좋다는데 꼭 올라가봐야지 하는 용기가 났다. 

한 마디의 말이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다.

대략 아침 10시경에 출발 했는데 벌써 12시가 되었다.

겨우 2시간 정도 밖에 산행을 안했는데 엄청 힘들게 느껴졌다.

아래에서 사온 도시락을 펴서 맛있게 먹었다. 맨 밥에 김치 만으로도 꿀맛이였다. 

나는 12시면 점심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산행에서는 배가 부르면 더 힘들다고

하시면서 계속 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먹고 쉬면서 가기로 했다. 

영봉에 올라가기 위하여 오른쪽으로 돌아서 산 아래로 한참을 내려 갔다가

산을 돌아서 뒤쪽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가도 가도 철 계단이다.

지난 온 길을 돌아 보아도 까마득하다.

보덕암 삼거리를 지나서 머리를 들어 보니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 밖에 없다. 이곳에서 무릎 관절이 안좋아서 마지막까지

올라가지를 못하시고 일행들이 다시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분도 만났다.

등산을 자주 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약 1년전 쯤에 철계단을 새로 하신 모양이다.

과거에는 옆으로 등산로가 있었다고 한다. 계단이 있으니 오르기는 편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이 철계단은 안전한가 염려가 먼저 되었다.

내가 보기에 영봉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아니라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구조를 지닌 바위로 이루어져 보였다.

한계단 한계단 오르다 보니 어느 사이에 거의 정상에 올라 왔다.

뒤 돌아 봐도 까마득하다.

드디어 1,097m 월악산 정상에 올랐다. 산행은 이 맛이야!  얏~~호....

영봉은 월악산의 주봉으로 (높이 1.097m) 험준하고 가파르며 높이 150m에 달하는

수직 절벽 바위로 영봉을 비롯해 중봉, 하봉 등 둘레 4km에 달하는 크기의 웅장한 3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영봉은 높은 수직절벽으로 병풍처럼 위용을 드러내며 마치 성곽과도 같은 요새를 이루고 있어

‘한국의 마터호른’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중봉이고 그 다음이 하봉이다.

멀리 남한강 충주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영봉에서 바라 본 송계계곡, 아래에 송계 자동차 야영장도 보인다.

동창교 방향이 바로 저곳이다.

월악산 영봉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했다.

신령스런 봉우리라 하여 영봉(靈峰)으로 부르고 나라의 큰 스님이 나올 곳이라하여

국사봉이라도 부른다고 하는데 가장 신령한 분은 성령님이 아니신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 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어디 있다고.....

가장 위대하신 분을 찬양하면 최고의 찬양이지 않을까?

영봉 바로 옆에도 조그마한 봉우리가 있어서 잠시 땀을 식혔다. 쌀쌀하게 느껴진다.

바위 위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신선이 따로 없다.

그러나 참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떨어지면 수직으로 마이너스 150m 이다.

오른쪽 능선이 내가 걸어 온 주봉 능선길이다. 멀리 보이는 곳이 만수봉이라고 한다.

드디어 하산이다. 내려 오는 철 계단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코스로 내려 왔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쉬면서 보던 그곳이다.

너무 힘드니까 이곳까지만 올라 오셨다가 멀리 영봉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 가시는 팀들도 있었다. 가뭄으로 인해 충주호에 물이 많이 빠져 있다.

마직막으로 영봉과 중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계곡 아래로 내겨 간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소나무도 참 아름답게 보여진다.

시냇물 소리가 너무나 정겹고 발이라도 닮그고 싶지만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참았다.

송계 계곡에 동창교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월악산을 올려다 보니

영봉, 중봉, 하봉이 선명하게 구분 되어서 보인다.

충주호를 지나 오면서 뒤 돌아 보니 월악산이 아직도 그곳에 서 있었다.

저기 가장 높은 곳 꼭대기 까지 잘 다녀왔다. 오전 날씨와 너무 달라졌다.

월악산 영봉에 잘 다녀왔습니다.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