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QT

마음속에 불만이 자라면... (삼하20:1~13)

다이나마이트2 2014. 6. 12. 23:36

2014년 6월 12일 목요일

사무엘하 20:1~13 욕심을 따라 행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라

 

말씀요약:

베냐민 사람 세바라고 하는 자가 다윗을 왕으로 섬길 이유가 없다고 선동한다.

유다를 제외한 온 이스라엘은 다윗을 버리고 세바를 따른다.

다윗 왕은 아마사에게 3일 내에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와라고 명령한다.

아마사가 약속 시간을 지체한다.

다윗 왕은 다시 아비새에게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신복들을 데리고 가서 빨리 추적하라고 다시 명한다.

기브온에서 아마사를 만났다.

요압이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체 하면서

왼손의 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인다.

사람들이 요압을 따라 세바를 쫓아간다.

 

말씀묵상:

압살롬의 반란을 다 정리하고 다윗 왕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에

맨 처음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1,000명을 이끌고 다윗 왕 앞에 지은 죄를 용서하옵소서 했다.

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맞으러 나왔다.

시바에게 주었던 밭의 절반을 돌려 주었으나 이미 죽어 마땅한 몸인데 모두 다

시바에게 주라고 했던 참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아는 인물이였다.

마지막으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로글림에서 요단에 왔다.

참 신실하고 겸손한 부자인데 다윗의 호의와 보답받기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편 오늘 본문과 직접 관계가 있는 또 다른 하나의 큰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10지파와 유다 지파간의 다툼이 일어났었다.

유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쫓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넜는냐?라는 것과 또 우리는 왕에 대해 열 몫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왕 모셔오는 일에 먼저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항의이다.

유다 사람들도 이스라엘에게 항변한다.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을 내는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 있는냐?라고 하는데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압살롬의 반역보다 더 골치 아플 것 같은 반란이 또 일어난다.

이전에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고 돌멩이를 던졌던 시므이와 같은 지파인

베냐민 사람 세바라고 하는 못된 한 인간이 있었다.(1)

우리는 이새의 아들 다윗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1) 라고 이스라엘 지파를 선동한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떠나 세바를 쫓았고(2)

유다 사람들은 다윗 왕과 함께 요단강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았다.(2)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10 지파들은 왜 이렇게 쉽게 다시 반란의 길로 나아가는가?

가장 큰 원인은 지파간의 질투와 시기와 불신 때문이 아닐까?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만연해 있다고 느끼는 지역주의 같은 배타적인 감정이 큰 원인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다윗 왕에 대한 도전이다.

 

다윗 왕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윗은 대제사장들에게 지시하여 자기 지파인 유대 장로들에게 연락하여서

내 친척 내 골육인데 어찌 이스라엘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 되느냐(19:11)라고

먼저 지역 감정을 조장한 면도 없지는 않아 보이지만

분열과 반란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세바는 사단이 좋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세바는 이런 선동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한 번이라도 묻지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감정에 휩싸여서 쉽게 결정하고 행동했다.

이런 결정과 행동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부정하고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분열과 다툼과 분쟁의 씨앗들을 만들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하면서 이런 실수를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선동하고 분열하고 싸우고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일에는 절대 나서지 말자. 아멘.

 

다윗 왕은 아마사에게 3일 내에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와라고 명령한다.(4)

그러나 아마사는 왕이 정한 약속 시간을 지체한다.(5)

다윗 왕은 다시 아비새에게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신복들을 데리고 가서 빨리 추적하라고 다시 명한다.(6)

 

아마사는 다윗의 이복 누나인 아비가일의 아들이다(17:25). 결국 다윗의 조카이다.

요압과는 4촌 형제 지간이 되는 사실은 가까운 사이이고  압살롬의 군대 사령관이였던 자이다.

압살롬이 죽고 반란이 다 평정되고 나서 다윗 왕은 요압을 대신해서 군 사령관에 임명했다.(19:13)

아마도 다윗의 입장에서는 아마사를 중용해서 압살롬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화합을 유도하고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였다는 이유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암살(3:27)하는 등

제 맘대로 행동하는 요압을 견제하려는 조취로 아마사를 지휘관으로 임명한 듯하다.

그러나 아마사가 다윗 왕과 약속한 3일의 시간을 넘기고 지체하자

아비새를 보내어 위기를 잘 극복하도록 조취를 취하고 있는 중인데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난다.

 

기브온의 큰 바위 곁에서 아마사를 만났다.(8)

요압이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체 하면서(9)

왼손의 칼로 아마사의 배를 찔러 죽인다.(10)

 

왜 요압은 아마사를 죽이는가?

다윗 왕은 아마사를 군 사령관으로 삼았지 죽이라고 명령하지는 안았다.

그런데 왜 요압은 아마사를 암살해 버리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해야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이전에 군 사령관 아마사를 죽여 버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군 사령관 자리를 아마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생각이 있어서 압살롬의 군 사령관이였던 자를 중용해서 세웠는데

요압은 자기 자리가 밀려 났다고 다윗의 허락도 없이 아마사를 암살하는 살인을 저지른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하여 자기 욕심을 따라서 행동하는 인물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는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나에게 불만이 있다고 해서 욕심에 따라서 행동하면 안되는 샘플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런 요압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실 것이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지파 간에 불만 때문에 반란을 일으키는 세바의 모습과

또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였던 아마사가 자신을 대신해서 군대 장관에 기용되자

마음 속에 불만을 품었던 압살롬이 아마사를 죽이는 모습을 봅니다.

둘의 공통점은 마음 속에 불만이 있었음을 봅니다.

이 불만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이끄는 원동력임을 봅니다.

성령님 불만의 원인들을 잘 살피게 하여 주시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가 놀라움을 늘 기억하게 하셔서

불만이 변하여 은혜로 욕심이 변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릇된 결정하지 않게 하시고

내 욕심에 이끌리어 당신의 거룩한 뜻을 어기고 불순종의 자리에 나가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