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QT

잠잠히 있고 근심하지 말라(삼하13:15~22)

다이나마이트2 2014. 5. 24. 22:58

2014년 5월 24일 토요일

사무엘하 13:15~22 방치된 죄악은 재앙을 키웁니다.

 

말씀요약:

암논은 다말을 강제로 성폭행하고 연애하던 감정 보다 더 미워한다.

심지어 종을 불러서 다말을 끌어 내고 문빗장을 잠근다.

다말은 재를 뒤집어 쓰고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엊고 크게 울며 갔다.

압살롬은 이 일을 알고도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게 했다.

다윗도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분노했다.

압살롬도 자기 동생 다말에게 수치를 준 암논에게 앙심은 품었지만

잘잘못에 대해서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말씀묵상: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다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다.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암논이 다말을 대단히 연모했다.

암논이 다말을 사모하다가 병이 들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는 간교한 친구다 있었다.

병든체하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아버지 다윗에게 부탁해서

다말이 와서 음식물을 먹여 주도록 하라는 계책을 제시해 준다.

다말은 아버지 다윗의 말에 순종해서 암논의 집으로 가서 음식을 만든다.

암논은 다른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내 보내고 다말만 침실로 끌어 들인다.

다말은 암논에게 강제로 추행을 당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그렇게 연모해서 병이 날 정도의 암논이 강제로 성폭행을 하고는 심히 미워한다.(15)

아름다운 여동생 다말을 보고 병이 날 만큼 사랑하게 되었는데

강제로 성추행을 하고난 이후에 암논의 마음은 연애하던 연애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크다(15)

사랑의 감정이 이렇수가 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힌 마음이기 때문이다.

 

암논은 그렇게 성폭행을 끝내고 일어나 가라라고 내쫓는다.(15)

다말은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16)라고 말 한다.

다말은 아마도 책임을 지라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암논은 책임질 마음이 전혀 없다.

이복 오빠와 여동생의 근친 상간인데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암논은 그런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것 같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웃의 아내와 간음(레20:10) 계모와의 성관계(레20:11)

며느리와의 성관계(레20:12), 남자와 남자의 성관계(레20:13), 장모와의 성관계(레20:14)

남자나 여자의 짐승과의 성관계(레20:15, 16),

자기 누이아 배다른 누이나 씨다른 누이의 성관계(레20:17) 암논의 경우이다.

이모나 고모와의 성관계(레20:19), 백모와 숙모와의 성관계(레20:20)

형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형제의 아내와 성관계(레20:21)

이런 모든 부정 행위는 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경에 참 많은 불륜관계가 있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렇다. 

아브라함의 이복 동생으로(창20:12)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과 결혼했다.(창11:29)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알 동굴에서 기거하던 중에 자신의 두딸과 동침했다.(창19:30~38)

야곱의 장남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을 해서(창35:22) 장자권을 잃었다.

 

유다의 아들 오난은 형이 죽자 형수인 다말과 동침했다.(창38:7~8).

시아버지 유다와 창녀인척 속인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도 있다.(창38:14~18) .

모세의 아버지와 아므람은 고모인 요게벳과 근친상간으로 아론, 모세, 미리암을 낳았다.(출6:20)

다윗의 증조부인 보아스는 조카 며느리인 롯과 성관계를 하여 다윗의 조부 오벳을 낳았다.(룻4:13~17)

유부남 다윗과 유부녀 밧세바의 간통(삼하11:2~4)

암논과 이복 여동생과의 간음(삼하13:14)등 참 많은 사건들이 있다.

이 모든 불륜의 사건들 가운데 자기 정욕에 이끌려 죄를 지은 경우도 있지만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 가기 위한 부분도 있음을 본다.

 

아무튼 오늘 암논과 다말과의 불륜은 아버지 다윗의 성적 범죄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성 범죄 이후에 처리하는 과정에 각각의 입장들이 다 다르다.

 

1. 암논이다.

연애하던 감정으로 성폭행 이후에는 마음이 돌변했다.    

일어나 가라고 내어 쫓는다(15)

종을 불러서 다말을 내어 쫓고 문을 걸어 잠근다.(17) 인간도 아니다.

 

2. 다말이다.

아버지 다윗의 말씀에 순종해서 병간호차 방문했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나를 쫓아 보내는 것은 성폭행보다 더 악한 일이라고 항변한다.(16)

쫓겨나서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운다(19)

머리에 손을 얹고 우는 것은 극한 슬픔과 부끄러움을 온 몸으로 표현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낸다.(20)

아마 수치심으로 인해서 집에 틀어박혀서 정신적으로 큰 패닉 상태에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피해자이다.

 

3. 압살롬이다.

암논과 다말과의 관계를 알았다. 

네 오빠이기 때문에 지금은 가만히 있자고 한다.(20)

이 일로 인하여 금심하지 말라(20)고 위로한다.

자기 집에 머물수 있도록 배려 해 준 것 같다.(20)

수치를 준 암논에게 앙심은 품었지만 잘잘못에 대해서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22)

무책임한 오빠이다.

 

4. 다윗이다.

이 모든 일을 알고도 듣고도 심히 노했다.(21)

아무런 조취가 없었다. 너무나 무심한 아빠이다.

자녀 교육에는 실패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한 사건이 있었고 각자의 입장이 있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조취가 없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율법으로는 분명히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레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가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것 아닌가?

피해자는 인생이 망가졌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도 없다.

피해자는 죽었는데 가해자는 없거나 오히려 승승장구 하는 것은 아닌가?

말씀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말씀의 기준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다음 세대에 믿음의 본을 보이고 삶의 본을 보여야 한다.

부모로서 바른 본분을 행하고 보여야 한다. 아멘.

방치된 죄악은 재앙을 키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