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QT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25)

다이나마이트2 2014. 3. 26. 23:25

2014년 3월 26일 수요일

사무엘상 24:1~25 절호의 기회보다 중요한 바른 선택

 

말씀요약: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왔을 때 다윗은 엔게디 광야에 있었다.

사울은 3,000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들 염소 바위 있는 곳으로 갔다.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하여 굴에 들어갔다. 마침 다윗은 그 굴 깊은 곳에 있었다.

다윗의 부하들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건의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 자락만 벤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내가 헤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울이 동굴에서 나가자 다윗도 일어나서 내 주 왕이여 부르고 돌아볼 때 땅에 엎드려 절한다.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십시요 나는 왕께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소리친다.

 

말씀묵상:

다윗은 계속해서 고달픈 도망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온 광야에서 사울에게 포위되어 거의 잡힐 뻔 한 일이 있었다.

마침 바로 그 시점에 블레셋이 쳐 들어와서 사울은 블레셋과 먼저 싸워야 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왔을 때 다윗은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제보가 있다.(1)

엔게디라는 곳이 광야가 아니라 아주 험한 지형의 바위와 돌들로 가득한 아주 험한 산악지역이다.

사해의 서쪽 쿰란의 남쪽에 있는 산악지역으로 '새끼 염소의 샘'이라는 뜻이다.

특이하게 폭포도 있고 험악한 지형이라 들염소, 산양들이 많이 서식하는 그런 지역이다.

 

다윗이 데리고 있는 모든 인구는 약 600명 가량이다.

사울은 특공대 3,000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 무리를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갔다.(2)

다윗보다 5배나 더 많은 무리를 이끌고 왔다.

 

하필이면 바로 그 시점에 사울은 용변이 급해졌다.

별 생각없이 굴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고 있다.(3)

참 놀랍게도 사울이 용변 보고 있는 바로 그 굴의 안쪽 깊은 곳에 다윗과 부하들이 숨어 있다.(3)

참 하나님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상황을 만들어 가신다.

꼭 탁월한 극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비슷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다윗의 부하들의 반응이다.

우리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 했을지 모른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원수를 네 손에 붙이셨다라고 이야기 한다.(4)

 

내가 잘 하는 실수와 같은 반응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사울 왕만 죽이면 도망 다닐 필요도 없고 쫒기는 삶, 불안한 삶에서 해방이고

고달픈 인생을 청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것은 상식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주어진 이 기회는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 할 수 있다.

부하 경호원들도 없고 무장도 없이 쭈그리고 앉아서 용변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호와께서 주신 특별한 기회라고 착각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의 연장선이어서 그런지 스스로 착각을 한다.

내 눈에 좋은 기회라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지 착각하지 말자.

 

다윗의 생각은 부하들의 생각과 다르다.

다윗은 살그머니 기어가서 사울이 겉옷 한 자락을 자른다.(4)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 자락 자른 것도 마음에 걸려했다.(5)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기 때문이다(6)

다윗은 사울왕이 기름부으심을 받는 왕이라는 사실을 존중하고 있다.

만약에 다윗이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두고두고 다윗에게도 동일한 일을 당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위에 순종하는 일 참 중요한 일이다.

다윗이 생각할 때 사울의 권위에 대해서 인정하고 싶을까?

다윗은 별 잘못도 없고 오히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적인 영웅의 행동으로 나라를 구하고

개인적으로도 악신이 들었을 때 수금을 타서 음악치료도 해 주었고

천부장의 주어진 역할도 모든 신하들 보다 더 탁월하게 너무 잘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

단지 여인들이 천천이요 만만이요 노래 한다고 자기 목숨을 빼앗으려고 국가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해서 개인적인 시기심 질투심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울

이런 권위도 인정해 주어야 하나 싶은데 다윗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는 내 생각에 못마땅하고 내 의견과 맞지 않아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권위에 대해서 나도 존중하자. 아멘.

 

용변을 마친 사울이 일어나 동굴 바깥으로 나간다.(8)

다윗도 뒤족에서 소리친다. 내 주 왕이여(8)

사울이 뒤 돌아보자 다윗이 땅에 엎드리어 예를 표한다.(8)

다윗은 예의도 바른 사람이다. 자기 원수같은 사람인데 땅에 엎드리어 절을 한다.

 

그리고는 사울왕을 향하여 소리쳐 말한다.

어찌하여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까?(9)

여호와께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10)

왕을 죽이라고 건의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주를 해치지 않았습니다.(10)

라고 말하면서 다윗은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여준다(11)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12)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시길 원하나이다(15) 한다.

 

다윗의 이야기 속에 분명히 들어 나는 것은

1. 나는 사울 왕을 향한 반역의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라는 것이 첫째고

2. 사울왕을 비난하지 않고 오해였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3.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오해는 풀릴 것이다는 희망을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그랬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실상은 천천이요 만만이요 하는 여인들의 노랫 소리에 결정적으로 화가 난것이데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말은 직접적인 비난 보다는  오해였다는 표현을 함이 지혜인것 같다. 

하나님이 재판장이시므로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희망도 이야기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 되었을때 그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바로 이런 겸손한 태도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진정한 비결이 여기에 있구나.

 

하나님 아버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비난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여는 비결들을 배웁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삶이 아니라 재판장 되시는 분에게 맏기는 삶 살길 원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상황을 내 마음되로 합리화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당신의 계획과 섭리안에 내가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