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QT

어찌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삼상19:1~7)

다이나마이트2 2014. 3. 14. 23:46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사무엘상 19:1~7 참사랑은 사람을 살립니다.

 

말씀요약:

사울은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명령한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사울이 죽일려고 하는 것을 알려주고 숨으라고 말해준다.

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의 좋은 점을 칭찬하며 변호한다.

왕에게 잘못해서 죄를 지은 일이 없고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왕을 도왔습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었다.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설득한다.

드디어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모든 일을 알게하고 다윗은 사울을 전처럼 섬긴다.

 

말씀묵상:

아버지 사울은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한다.(1)

사울은 충신을 죽여야 할 이유가 사실은 없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대접해 주어야 할 상황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감히 누구도 거인 골리앗에게 맞설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적 위기를 구했으면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올 때에 여인들이 불렀던 노래에 마음이 상했다.

여인들의 노랫 소리가 불쾌하고 화가 났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것 또한 사울에겐 큰 병이다.

사울도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는 너무나 훌륭했다.

왕이 되고 최소 2년간은 참 겸손하고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에 사무엘 제사장을 대신해서 함부로 제사를 드렸고,

전쟁중에 금식 명령을 내려서 백성들이 율법을 어기고 피째 먹는 죄를 범하게 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나님이 명령 했지만 부분적으로 순종해서 결국 불순종했고

여인들의 노랫 소리에 비교하게 되었고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지도 못했고

더 많은 탐욕과 욕심에 눈이 멀어서 충신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고 만다.

시기와 질투는 충신을 죽이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하는 사악함으로 발전이 되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에게 사울이 죽일려고 하는 것을 알려주고 숨으라고 말해준다.(2)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부럽기까지 한다.

자기 아버지가 죽이라고 명령을 했는데 요나단은 이 사실을 알려줄 뿐만아니라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고 조언도 해 준다.

 

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의 좋은 점을 칭찬하며 변호한다.(4)

요나단의 행동을 보면서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듯이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왕과 친구 다윗과의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이셨지만

내가 성경에서 참 좋아하는 인물 바나바도 동일한 역할을 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울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에 제자들 앞에 바울을 데려다가 신원보증을 해 주었던 사람이 바나바이다.(행9:26~27)

구브로 섬 출신의 유대인이지만 나는 '위로의 아들' '권위자'라는 의미의 바나바가 참 좋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사이에 중보자가 화해자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 바로 이런 화평케 하는 자가 필요하다.

 

교파와 교파, 교단과 교단, 목사와 장로, 교회와 세상 사이에 이런 화평케 하는 자가 필요하다.

이 화평케 하는 자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이런 화평케 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는가?

첫번째는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며 분노를 누그러 뜨린다.(4)

영혼을 살리는 말이 있고 영혼을 죽이는 말이 있는데 바로 칭찬이 사람을 살린다.

어떤 사람은 늘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점만을 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칭찬 거리를 잘 포장하는 능력 화평케 하는 좋은 도구이다.

남의 문에 들보를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 내 눈의 티를 보려고 노력하고

이왕이면 남의 이야기 험담하고 비교하지 말고 좋게 평가하고 좋게 말하자.

 

두번째는 왕에게 잘못해서 죄를 지은 일이 없고 (4)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왕을 도왔습니다라고 말한다.(4)

사실 아들이라고 해도 이런 용기는 참 필요하다.

죄가 없는데 죽이는 일은 누가보더라도 잘못하는 일이다.

진심어린 이런 죄 없음에 대한 강조는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다.

 

세번째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었다(5)

라고 다윗의 업적을 분명하게 말해 준다.

객관적으로 잘 평가 할 수 있도록 업적과 실적을 상기 시켜 주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최소한 남의 실적 가지고 자기 실적 처럼 부풀리는 일은 하지 말자

 

네번째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5)

선한 다윗을 죽이는 일은 범죄 행위임을 다시 한번 깨우친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편법과 아부로 설득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칭찬하고, 무죄하고, 업적이 이러이러하니

죽이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는데 왕인들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은 대동소이하다.

오해를 풀거나 화회를 요청 할 때에도 오늘 요나단이 다윗을 위해서 변호하던 방법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운 방법이다.   

나도 이런 방법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겠다.

 

하나님 아버지

요나단의 우정과 요나단의 중재의 노력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과 같고 바나바와 같은 모습을 봅니다.

나도 이런 화평케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요나단을 통해 화해자로 나아가는 방법을 내가 배우길 원합니다.

분열과 미움이 있는 곳에 화평과 사랑을 만들어 내는 참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사람을 살리는 당신의 거룩한 제자 되게 하옵소서.

화평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