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QT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욥31:1~12)

다이나마이트2 2012. 11. 24. 23:20

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욥기 31:1~12 욕망을 따르지 않는 순전한 사람

 

계속해서 욥의 독백이 이어지고 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들은 이제 말을 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것 같다.

욥은 과거에 재난 이전에 축복된 삶에 대해서 회고하기도 했었고

큰 재난을 격고난 이후에 현재의 고난에 대해서도 조롱받고 멸시받고

육체적, 정신적, 영적이 고통에 대해서 오랫동안 말해 왔다.

그러나 욥의 독백 가운데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중요한 메세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다는 고백이 있음을 보았다. 

 

오늘 본문에서도  욥은 결백을 주장한다.

엘리바스나, 빌닷이나 소발이 주장 했던 바가 사실은 틀린 말을 아니였기에

죄를 지으므로 그 댓가로 고난을 받는 경우가 사실은 많이 있기도하고

또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이 있는냐는식으로 정밀 조사를 하면

의로운 자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고 욥도 너무 결백증 환자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정직하고 순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평가 하셨을까 하는 진 면목이 보인다.

욥 이라는 인물 다시 한번 더 주목하여 보게 된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1)

어떻게 처녀에게 정욕의 눈으로 볼수 있겠는가?라고 고백한다.

 

많은 부분 눈으로 봄으로서 죄를 짓게 된다.

죄란?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곳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다 세상을 쫓아서 난 것들이 아닌가?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맘몬의 우상 만큼이나 음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소돔과 고모라를 닮아 가고 있다.

심지어 안방에 까지 음란의 문화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음란의 문화 안목의 정욕 보암직도한 것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음란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욥은 눈과 언약을 세웠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맹인이 되지 않는 이상 눈과 언약을 세워도 소용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욥은 달랐다.

 

욥이 달랐던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는냐?(4)

네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4) 고백한다.

하나님은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다 보시고 계시며

심지어 나의 발 걸음수 조차도 세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한다.

 

왜 훔치고 도둑질하고 나쁜짓을 골라가면서 할까?

들키지만 않으면 쓰릴이 있다. 발각되지만 않으면 엄~~청 재미가 있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고 완전 범죄를 꿈꾸면서 나쁜짓을 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하나님은 아신다는 고백을 욥이 하고 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연상이 된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 고백 오늘 내가 욥의 말씀가운데 배워야 할 부분이다.

머리 위에 새가 날아 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겠지만

내 머리위에 새의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계속해서 욥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모습들이 섬짓섬짓하다.

나와는 거리가 있어도 너무나 멀리 있다.

1. 나는 거짓말을 한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을 속인적도 없다.(5)

2. 내가 바른 길에서 벗어 났다거나 아니면 눈으로 본 것에 마음이 끌려 범죄하지 않았다.(7)

3. 언제 내 마음이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9)

만약에 이런 일을 했다면 나의 모든 소산을 잃고 뿌리까지 뽑혀도 좋다고 주장한다.

 

내 상식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죄일것 같은데

욥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인가 보다. 하나님이 의로 여길 만하다.

 

정말 욥은 대단한 의인이다. 놀라운 의인이다.

마치 예수님 같은 의인이다.

 

나는 욥 같은 율법을 행하는 의인은 아니다.

허물이 많고 흠결이 많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혀진 몸이다. 아멘.

광야에서 들려진 놋뱀을 본자는 모두가 다 살아 났듯이

어린양의 피로 좌우의 문설주에 발려져 있는 자의 장자는 죽음을 면했듯이

내가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나는 오직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할뿐이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욥의 의로운 고백을 듣습니다.

내가 눈과 언약을 세웠다는 고백을 듣습니다.

이 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머리카락 까지도 세시는 주님

그 주님의 불꽃같은 눈 앞에 내가 사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보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든는 것 다 주님 앞에서 행하게 하옵소서.

나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하거나 순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믿습니다.

그 신앙 가지고 그 믿음 가지고 주님 앞에 머물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