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5일 주일
욥기 31:13~28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
계속해서 욥의 독백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왜 욥을 순전하고 정직하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자라고
평가하셨는지 알 만한 고백들을 계속한다.
우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약2:14)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2:26)
말씀하셨고
요한 사도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8)
라고 말씀하셨는데 욥은 바로 이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어제 본문에도 몇번에 걸쳐서 내가 언제....하였는가라고 말씀하셨다.(31:5, 7, 9)
오늘 본문에도 계속해서 같은 패턴의 말씀이 여러번 반복되고 있다.
내가 언제 남종과 여종의 사정을 멸시하였는가?(13)
인간취급이 아니라 재산 취급을 하던 종이나 노예에 대해서도 인격적으로 대했다는 말씀이니
욥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인지 가히 짐작이 안된다.
요즘 말로하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지 않았을까?
나는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같은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다. 권력이 있는 사람,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그렇다.
교회에서도 조차 그렇게 생각한다. 욥은 나와 너무나 달랐다.
내가 언제 가난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했던가?(16)
나는 배불리 먹으면서 고아나 과부나 가난한 자들을 굶기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정말 위대한 고백이다.
길거리에 구걸하는 자들이 넘처나고 있지만 음식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얼마인가?
공평하게 분배만 잘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하나님이 공급하시건만
욕심과 탐욕으로 쌓고 또 쌓아도 부족하니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피해를 보는 것 아닌가?
내가 언제 사람이 의복없이 죽게 된 것을,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었는가?
양털로 옷을 지어 입혀 주었고 정성 껏 복을 빌어 주었다라고 고백한다.
우리교회 식으로 말하면 긍휼사역을 열심히 감당했던 것 같다.
남종과 여종을 멸시하지 않고 고와와 과부를 보살펴 주고 헐벗은 사람들을 입혀준 것 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한 인생을 살아 온 것 같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충만한 축복된 인생이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직분이 있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셨는데
내 삶이 그렇지 못함은 나의 허물이다.
욥은 계속해서 더욱 중요한 고백을 한다.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았었는가?(24)
내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으로 기뻐하였던가?(25)
내가 언제 태양이나 달을 보고 우상 숭배하였었는가?(26,27)
욥은 육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상숭배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대단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맘몬이라는 엉청난 우상을 섬기고 있다.
돈이 하나님이 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돈 이라면 도덕 윤리가 사라지고 가치관이 무너진다.
맘몬 우상의 영향력이다.
그러나 욥은 금과 재물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니였다.
태양신을 섬겨서 인신공양을 하던 시대에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대단하다.
아무튼 욥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과 신앙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욥은 왜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가?
어떻하면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는가?
욥의 고백은 두가지 이다.
1. 하나님의 위엄이 두려워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23)
2. 우상숭배가 마지막 재판장에게 벌 받을 죄 라는 것을 알았고(28)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28)
정리하면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생각조차 의도조차
다 감찰하시고 보고 계시며 다스리시고 계심을 알고 믿고 그렇게 행동했다.
이것이 참 신앙이다.
예배당에 떨어진 휴지 하나 줍는 것도 쉽지 않다.
누군가 줍겠지하고 발끝에 차여도 그냥 지나간다.
성전이 흙이 가득 묻혀 있어도 누구하나 쓸고 닦는자가 없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오늘 성전을 쓸고 닦을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한다.
하나님 아버지
욥의 삶의 고백을 듣습니다.
남종과 여종을 차별하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자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우상숭배 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나도 이런 삶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욥이 하나님의 위엄을 두려워 한 것 처럼 당신을 경외함이 있게 하옵시고
마지막 재판장 앞에 설 일을 기억하며 살게 하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당신 앞에 살 수 있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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