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QT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욥6:1~13)

다이나마이트2 2012. 10. 11. 00:03

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욥기 6:1~13 도움과 능력이 없는 자의 고통

 

오늘 본문은 고통받는 친구를 찾아와서 위로한다는 말이

오히려 더 큰 상처만을 안겨주었던 엘리바스의 인과응보적인 첫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대답이다.

 

엘리바스가 이야기 한 것 처럼

설사 무엇인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범죄해서 징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친구에게 죄없이 망한자가 누구인가?

사람이 어찌 하나님 보다 더 의롭겠느냐?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겠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것이 복이있다 이런 말을 들었으면 엄청 화가 났을 것 같다.

 

차라리 친구라고 찾아 오지나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엘리바스는 욥의 처지를 공감하고 위로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적 교만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들어 내려 하였기에 욥에게 더 큰 상처만 안겼을 것이다.

 

위로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 큰 아픔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 아픔에 대한 자기 변호 내지는 자기 합리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그러나 욥의 결론은 참 아름답다.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내가 기뻐한다.(10)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욥에 대한 평가를 하실 때에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라 (1:1, 1:8) 평가 하신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심한 재난 한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욥

그 많은 재물이 하루 아침에 다 날아가버리고, 사랑하던 자녀들 마저 먼저 앞세웠고

아내 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저주를 하고, 육신의 질병으로 너무 어려움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참한 고통 한 가운데서도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욥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바울 사도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니라 하시지 않으셨던가?

고난 중에 기뻐하는 것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다. 아멘. 

 

왜 욥이 이렇게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10) 아멘.

 

욥의 삶의 기준은 많은 재물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다.

많은 기도 제목들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도 부탁 받는 제목들이 건강, 자녀 입시, 결혼, 사업 번창등이다.

 

욥의 삶의 기준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이다. 할렐루야 아멘.

말씀의 기준대로 산다면 죽는 것도 은혜요 사는 것도 은혜요.

살아서도 말씀대로 죽어서도 말씀대로 이렇게만 산다면

욥 처럼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한다고 고백하지 않을까?

 

하나님 아버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욥을 봅니다.

친구에게 위로받지 못하지만 더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고

오히려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욥

내 삶이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생활 되게 하옵소서.

욥의 삶의 태도를 봅니다.

재물이나 자식이나, 건강에 목표를 두는 인생이 아니라

거룩하신 이의 말씀에 인생을 건 욥의 모습을 봅니다.

거룩하신 이의 말씀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요.

거룩하신 당신의 말씀이 내 삶의 네비게이션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