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QT

그리스도 예수의 믿는 도를 듣거늘(행24:24~25:5)

다이나마이트2 2009. 8. 8. 22:59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사도행전 24:24~25:5  불의에 앞장서는 지도자들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을 체포한 유대인들은

공회에서도 죄를 찾지 못했고(23:9) 

천부장도 바울을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고(23:29)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는 40명의 결사대를

피해서(23:21) 천부장은 470명의 호위 병사를 동원해서(23:23)

예루살렘에서 로마군 사령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바울을 이송해 버렸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호사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 앞에서 (25:1)

바울을 고소했고 바울이 고소 내용에 대해서 무죄임을 변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변증을 했고 벨릭스는 판결을 연기했다.

 

수일 후에 벨릭스 총독이 그 아내 유대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다.(24)

 

벨릭스는 복음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나 보다.

유대 여자인 아내까지 데리고 와서 복음을 들었다.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감금을 했었으니 얼마나 많은 복음을 들었을까?

일대일로 제자 양육을 받았을 것 같은데 벨릭스는 안 변했다.

 

벨릭스 총독의 아내였던 유대여자 드루실라는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의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예수가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는 바로 그 사실을 바울을 통해서 믿었어야 했는데

두 부부가 믿었다는 기록이 없다. 너무 아쉽다.

 

바울이 이들을 만나서 전한 복음은 무엇이였나?

1. 의에 대해서 전했다.(25)

2. 절제에 대해서 전했다.(25)

3.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서 전했다.(25)

 

바울을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은 일대일에 참으로 달인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일대일이란? 그 사람에 맞춤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벨릭스 총독에게 부족했던 부분이 의,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불의했던 총독 벨릭스가 의에 대하여 강론을 들을 때 양심이 찔렸을 것이다.

성욕과 물욕과 소유욕에 대한 절제를 들었을 때 마음의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부도덕과 불의에 의한 심판을 들을 때에 통회하며 회개를 했었어야 했는데

총독 벨릭스는 그렇지를 못한 것 같다.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은 벨릭스의 반응이 안타깝다.

1. 벨릭스가 두려워 했다.(25)

복음은 두려워 하라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아멘.

두려워 한다고 의와 절제와 심판의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해결 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의와 죄악이 드러날 때에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며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와야 한다. 아멘.

 

2.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자주 불렀다.(26)

말씀을 듣기 위해서 바울을 자주 부른 것이 아니라 뇌물을 받기 위해서 자주 불렀다.

이것은 불법이였지만 흔히 행해지던 관습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돈을 받을까하고 부를 때에는 아내인 드루실라는 없었을 것 같다.

생명의 말씀보다 더러운 뇌물을 사랑하는 부패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벨릭스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이 바울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였는데

불행하게도 벨릭스는 죄에서 바울은 감옥에서 해방이 되지 못했다. 

 

3.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27)

복음을 들은 벨릭스가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석방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심판에 대한 복음을 들은 벨릭스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2년이 넘도록 구류상태로 감금을 하고 있었다.

유대인과 바울에게서 이중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방법이였던 것이다.

정치인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방법인지 모르겠다.

 

하나님 아버지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에 대해서

의와 절제와 오는 심판에 대한 바울의 강론을 듣고

분명히 양심에 찔림이 있고 마음에 감동이 있음에도

회개하고 주님을 믿기보다 두려워하는 벨릭스의 모습을 봅니다.

돈을 받을까 하는 마음으로 더 자주 바울을 부르는 총독을 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보다 유대인의 마음을 얻기위해서

애쓰는 불행한 총독을 봅니다.

오랫동안 복음을 듣고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은 아닌지요

이 땅의 것보다 영원한 것들을 더욱 사모하게 하옵소서.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며 행하는 자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