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QT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1:19~30)

다이나마이트2 2007. 12. 18. 23:09

2007년 12월 18일 화요일

빌립보서 1:19~30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목표

 

바울같이 사생관(死生觀)이 분명한 자도 드물 것 같다.

군인들이 사생관이 분명하다고 느꼈었는데

바울은 특전사나 해병대 군인들 보다 사생관이 더 분명하다.

 

상황으로 볼때에는 매여있는 몸이요 갖혀있는 몸이다.

언제 로마의 법정에 끌려가서 매를 맞을 수도 죽을 수도 있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지 않다(20)고 고백하고 있고

온전히 담대하다(20)라고 고백하고 있다.

 

왜 그런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길(20) 원하기 때문이다.

생사를 초월해 버린 바울의 믿음을 본다.

살기위해 죽는 것인지 죽기위해 사는 것인지 분별이 안되는 시대에

바울의 사생관을 배우자. 아멘.

 

온누리교회에 오래된 표어 가운데

가르치든지 배우든지, 가든지 보내든지 라는 표어가 있는데

바울을 통해서 배우는 표어는

살든지 죽든지(20), 떠나든지(23) 거하든지(24) 라는 표어를 보게 된다.

 

바울에게는 살고 죽는것, 머무는 것 떠나는 것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나에게는 죽는 것이 떠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죽을 준비도 잘~하자. 아멘.

언제든지 떠날 준비도 잘~하자. 아멘.

 

두번째 말씀을 통하여 명령으로 들려오는 음성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 명하신다.

 

2007년이 평양부흥 100주년이라고 기념행사도 많이하고

새로운 부흥의 AGAIN 1907을 기념하는 행사도 유난히 많았지만

내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당장 내일 있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최선을 없고 차선만 있다고들 한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향한 메세지가 있다고 본다.

  

어찌보면 한국교회가 AGAIN 1907을 부르짖었지만

그 내면의 핵심에 있었던 회개는 부족했지 않았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부흥만 부르짖었지

내면에서 부터 터져나오는 회개는 부족하지 않았는지...

결과에만 중요시 했지 과정과 절차는 무시하지 않았는지

한 장로님을 통하여 한국 교회 전체가 부끄럼을 당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뜻하심은 어디에 있는지 잠잠히 듣고 싶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일심으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다.(27) 아멘.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분열의 영은 묶임을 받고 떠나갈 지어다. 아멘.

2. 아무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28) 아멘.

    두려움을 주는 어둠의 영은 나의 생에서 묶임을 받고 사라질 지어다. 아멘.

3.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삶이다. (29) 아멘.

    일생동안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

4. 주를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 삶이다.(29) 아멘.

    내 잘못으로 인한 고난 말고 주를 위하여 오는 고난은 기쁨으로 받자.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아멘.

 

아버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길 원합니다.

떠나든지 거하든지 믿음의 진보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나의 자랑이길 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의 능력이길 소망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의 힘이길 원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 가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하나되는 것에 힘쓰게 하옵소서.

세상에 대하여 두려워 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고난에도 동참하는 삶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