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QT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마27:11~26)

다이나마이트2 2007. 3. 16. 23:46

2007년 3월 16일 금요일

마태복음 27:11~26  왕을 버린 백성

 

예수님을 불법으로 체포하고 불법으로 재판했던 가야바

대제사장을 회장으로 하는 산헤드린 법정은

사형을 언도 할 수는 있었지만 집행을 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침을 깨우는 새벽 닭이 우는 꼭두 새벽에 로마 황제의 영에 의해서

유대지역에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자 빌라도에게로 끌고 왔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1)

예수님이 그렇다 라고 대답하시고(1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소하는 말에는 일체 대답을 아니하신다.(12)

빌라도가 답답해서 저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고 물어도(13)

한 마디의 대답도 아니하심을 기이히 여긴다.(14)

 

사람은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다른가 보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종교적인 문제로 즉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질문 했었고(26:64)

예수님이 그렇다, 앞으로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은 것과

구름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26:64)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율법(레24:16)에 걸리는

그래서 신성모독죄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판단을 했었다.

 

그러나 로마의 총독으로 있는 빌라도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이해를 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1) 라고 묻는다.

현재 유대인의 왕은 헤롯이다. 그런데 너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고있다.

정복지의 치안을 담당해야 할 입장에 있는 자로서는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로마법상으로 범죄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냥 방면하면 끝인데

예수를 석방하지 않고 특별사면권을 가지고 협상을 하려고 한다.

 

유월절에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고.(15)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을  알기 때문에(18)

내가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예수냐?(17)하고 묻는다.

그러나 군중은 바라바를 놓아 주기를 원하고(21)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23)

 

총독 빌라도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요18:38)

실제로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도 힘썻지만(요19:12)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24)

무리 앞에서 무죄하다는 표시로 손을 씻었지만(24)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 주어버린(26) 인간

그래서 사도신경을 고백 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하는 불명예를 영원토록 지고 가는 인간이다.

 

빌라도의 아내

총독이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19)에게 아무 상관도 말라고 전갈을 보낸다.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썻다고 한다.(19)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님을 믿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령님은 꿈속에서라도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시고 계시는 구나.

받아들이고 안받아 들이고는 나의 책임이구나!

아마 하나님을 경외했던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빌라도 보다는 훨씬 나은 여인이다.

 

예수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총독의 질문에는 대답했지만

장로들과 대제사장의 고소에는 일체 침묵하신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방어하고 변호하길 원하는데

예수님을 그렇지를 않다. 놀랍다.

목적과 목표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3차원의 세계에서 4차원을 이해 못하는 것과 같으리라.

때때로는 침묵이 큰 웅변일 수도 있다. 아멘.

 

불과 몇 시간 전인 가야바 법정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며

주먹으로 맞으시고 손바닥으로 맞으셨었다.(67)

지금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다.

 

그런데 내 마음에 왜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가?

왜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가?

만약에 육신의 내 아버지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하자

내가 정말 지금 감정처럼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힘으로 안되면 칼이라도 들고 달려 들지 않겠는가?

 

이 채찍은 그냥 가죽 끈 정도가 아니다.

가죽끈 끝에 납덩이를 달았다고 한다.

몸에 치면 살에 감길 뿐만이 아니라 살을 파고 들어서 살갗이 찢어지고

살점이 뜬겨져 나오는 채찍이라고 한다.

내 아버님이 이런 채찍에 맞으실 때

나의 감정이 이렇게 매말라 버릴 수가 있는가?

 

조금 전 오늘 순 예배에서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경배합니다. 예수님 채워주소서 . 당신의 사랑으로

하고 경배했다.

 

불과 일주일도 되기 전인 지난 주일날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하던 그 무리들이

지금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이 무리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아버지

당신이 채찍에 맞고 십자가를 지신다고 하는데도

내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처럼 채찍에 맞아 피흘리심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고

당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가 죄 사함을 얻었고

당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가 생명을 얻었는데도

나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나의 감정이 매말랐습니다.

성령님 오셔서 도와 주옵소서.

어느 사이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하던 입술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외치는 입술이 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빌라도의 아내 처럼 옳은 사람을 볼수 있는

안목을 주옵시고 영적인 감각을 주옵소서.

세상의 소리와 군중의 소리에 귀 귀울이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움직이고 행동하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