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40일 특새[32] 제자 삼으라 (마28:16~20) 말씀: 김상수, 최재윤 목사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셔서, 세상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예루살렘]이 아니고,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에는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고, 또 약속도 하시고, 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제자들은 그 말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갈릴리]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곡창지대이고, 연약한 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라, 유대인들이 “혼혈아가 사는 곳이라.”고 비난을 받고,
소외당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멸시와 조롱의 대명사로 불리던 지역입니다.
여러분, 이사야서 9장 2절에, “어둠 속에서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 위에 빛이 비쳤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 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췄도다.
자막을 잠깐만 그대로 두시고 계속해서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고 있죠.
여기에 [어두움, 고통, 죽음]이라는 단어는 “갈릴리의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힘과 능력에는 현실적인 논리가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늘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약자였고, 그런 굴레에서 벗어날 힘이 없던 지역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큰 빛으로 오시기 전까지는, “낙후된 지역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도시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역에서 생활하셨고,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영원히 하나님과의 멀어질 수밖에 없던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셔서, 우리에게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은 “갈릴리로, 나사렛 예수라” 칭함을 받고, 이 땅 가운데 낮아지게 오셨고, 또 죄인들을 섬겨주셨고, 또 예루살렘에서 배척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고, 부활 이후에 다시 [갈릴리]로 가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갈릴리]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 만나기 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 자신]이 [갈릴리]인 셈이죠.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부활 이후에 [갈릴리]로 가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물]과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려면,
우리는 더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서, “나사렛 예수, [갈릴리]”로 이 땅 가운데 오셨다면,
우리는 더 겸손히 주 앞에 낮아져야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는 [내가] 낮음을 알고, [하나님]이 높으심을 아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①[나]의 “영적 무가치함”을 알고,
②“겸손한 자세”로 나가는 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무대였던 것입니다.
거기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어두웠던 제자들은 두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①제자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처럼 보였지만,
②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힘을 흠모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 이후에도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던 [연약한 자]가 되었던 것이죠.
저는 예수님께서 “왜, 부활 이후에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라고 했을까?”를 묵상하는 한 주간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다시 [신앙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섬세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자.“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섬겨준 그 모습대로, [갈릴리의 사역]과 같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나님은 [머스크] 같은 돈 많은 재벌을, 한 사람 회심시켜서, 온 세상에 [세계 선교]를 완수하면 될 텐데,
▶왜, 못난 제자들을 갈릴리와도 같은 볼품없는 시골에서, ”그렇게 끝까지 참으시고, 섬겨주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워렌 버핏] 같은 사람, 한 사람만 회심하면, [세계 선교]는 다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십자가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세우시기 원하세요.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이 무엇인지?”를 우리도 알게 하시려고,
그래서 보잘 것 없는 [갈릴리]로, 찾아가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오늘날도 [갈릴리]와 같은 현실이, 우리 가운데 놓여 있어요.
많은 성도님들이 힘들고 어려울 텐데, 그러나 [부활의 영적인 의미]를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조건을 보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것을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이런 영적인 싸움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네가 [큐티]도 안 하는데, 네가 성도냐? 네가 기도도 안 하면서 직분을 내세우느냐?
나는 너의 과거도 알고 있어, 너의 이중적인 모습을 알고 있어.”라고 나를 유혹하고,
때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어요.
여러분,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어린 양을 따르고, 선포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한 줄로 요약하면,
그것은 “I Still Love You”(아이 스틸 러브 유)
“[나], 여전히 [너]를 사랑해”이고, “나 너를 포기하지 않아”입니다.
우리는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부활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함께 나아 가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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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삼으라 (마28:16~20) 말씀: 최재윤 목사
앞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9- 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28:19-20)
이제,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 [말씀]을 ”우리는 [지상 명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1)첫 번째로/ 바로 제자들에게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은 바로 제자들을 위해서, 그런 명령을 하셨습니다.
요즘 시대는 “우리는 명령을 따르고, 명령대로 행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명령]에는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이니까, ”반드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의무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위해서, 올바른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떠나시고, 제자들은 남겨집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붙들고 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 상황”을 맞이하면,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살아 갑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를 고민합니다.
이제 곧 승천하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길]을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명확한 명령]을 주심으로,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명령]은 신기하게도 의무감과 부담처럼 느껴지지만,
우리가 그것에 순종했을 때는 [자유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할까요? 그것은 ①세상의 다양한 소리, ②가치관 사라지는 것들과
③우리가 추구하는 [허망한 것]으로부터 자유해지는 것이죠.
주님께선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명확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지상 명령]이고, 그 [명령]은 바로 “우리를 위해 주신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명령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할 수 있는 제자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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